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요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
우~우~
귀뚜루르르 귀뚜루르르 보내는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으로 실려갈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 소리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
우~우~
귀뚜루르르 귀뚜루르르 보내는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으로 실려갈 수 있을까
-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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