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이민하 시인의 "환상수족"

자크라캉 2008. 9. 9. 14:25

 

민하 시인의 "환상수족"

3. 환상수족

              이민하

1. 이민하 시의 전제적인 특징

 

⃙ 언어의 신뢰성(주술성) 파괴, 상실

후기 산업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복제, 대량생산이다. - 문명의 논리, 복제의 논리

⃙ 이민하의 환상수족은 처음과 끝이 없는 무한이 반복되는 순환적인 세계, 사방 연속 형태의 시이다. - 순환적 구조(처음과 끝이 반복)

⃙ 탈 중심적 세계관 - 인간의 고정적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주체에 중심을 두지 않음.


2. 사방연속물결무늬(60쪽)


제단 위에서 내려온 여자가 유리구두를 벗고

바다 끝으로 달려간다. 바람을 찢고

되돌아오는 발굽 소리, 축제는

자정에 시작한다.

이빨이 자라는 손가락 위에 노란 장갑을 씌우고

노란 리본으로 얼크러진 갈기를 동여매던 여자는

바다 끝으로 달려간다. 바다 끝에는

동그란 창이 세 개 나있다. 여자는

집시들의 공장에서 사온 기탓줄로 배를 가르던 청어를 끌고

바다 끝으로 달려간다. 달려가

첫 번째 창을 오른쪽 눈에다 끼운다.

남자를 꽂은 틈새에서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뻗쳐오를 때도 여자는

바다 끝으로 달려간다. 달려가

두 번째 창을 왼쪽 눈에다 끼운다.

여자는 손가락을 뾰족하게 깎아 물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계절은 바뀌지 않는다.

다섯 달 동안 날이 가물어도 안개조차 스미지 않는다.

한낮의 늪지와 밤의 불기둥을 지나 여자는

바다 끝으로 자꾸 달려간다.

세 번째 창은 유일하게 하늘을 향해 있다.

여자는 또 그림 한 장을 세 번째 창 너머로 던진다.

석양처럼 소각되는 물의 정거장.

그림을 빠져나온 물이 쏟아져 내린다.

주룩주룩 풍경을 지우며 화살을 박는 빗줄기.

온몸을 뒤집는 바다.

여자는 청어와 남자는 무화과나무를 싣고 수평선을 끌고서

또 다른 오늘로 넘어간다.

축제는 시작되지 않는다. 끝나지도 않는다.

자정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 첫 번째 창을 오른쪽 눈에다 끼운다는 것은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수평적 저차원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반면, 세 번째는 수직적으로 총체적 회복의 창을 열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 축제는 시작되지 않는다 / 끝나지도 않는다

- 처음도 끝도 없는 반복적이고 파편적인 단상을 의미한다.

- 축제가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기 때문에 사방연속적이고 어는 곳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세계를 의미 하는 것이다.

 

3. 세상에서 하나뿐인 수리공 K의 죽음(36쪽)

-8요일, 빛


태초에 삼라만상이 있기 전 지중해만한 작업실을 가진 난쟁이 K가 있었습니다


제1요일에 K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대지를 둘러보고 바람의 세기를 측정했습니다 46억 년 전의 일입니다

(황금색 태양의 기록과 달리 그의 후계자인 시인의 주장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천 년쯤 후로 추정되기도 함)


제2요일에 K는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도면 위로 구르는 순간 그의 눈알은 부화하였고

그의 식탁은 야위어 갔지만 달빛 넝쿨로 출렁거렸습니다


제3요일에 K는 거대한 손수레을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도면의 배를 가르고

산과 바다를 꺼내고 바퀴 달린 책을 꺼내고 화살과 모자를 꺼내고 거울을 꺼냈습니다

수백 종류의 꽃과 수천 마리의 짐승들도 손수레에 실었습니다


제4요일에 K는 아직 무게가 없는 손수레을 끌고 다니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황금색 태양의 길이 처음 만들어졌고

그가 땀을 흘릴 때 태양은 그의 모자 뒤에 숨었습니다

 

제5요일에 K는 길들 위에 고운 모래알로 집들을 지었습니다

산의 집 바다의 집 바퀴 달린 책의 집 화살의 집 모자의 집 거울의 집...

집과 집 사이에도 허공의 집을 세웠습니다


제6요일에 K는 무척 바빴습니다

간혹 빈 집이 눈에 띄었으므로 그 집에 들어갈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마다 새로운 이름이 적힌 문패을 달아야 했습니다

제 집에서 살을 찌우고 있는 짐승들을 불러모았고

그는 아주 많은 그를 복제해야 했습니다


제7요일에 K는 수리공이 되었습니다

길이 수시로 바뀌었으며 집들은 스스로 이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K의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녹슨 바람 소리가 났지만

떨어져나간 바다 한 귀퉁이를 눈물로 뽑아 메꾸는 일이나

가파른 비탈길을 갈비뼈 꺾어 망치질하는 일이나

빗물이 새는 지붕들을 살가죽을 떼어 꿰메는 일 따위

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8요에도 무언가를 만들어 집집마다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K는 팔이 아홉 개 달린 짐승의 돌담집에 이르렀을 때

무더기로 핀 맨드라미에 선홍빛 피를 쏟고는 그만 고꾸라졌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서로 할퀴는 짐승들을 만난 게 화근이었습니다

살을 찌운 짐승들은 집들을 통째로 삼켰고

서로의 담장 너머로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장을 모두 꺼내 빚은 반죽을 고르게 분배해야 했습니다


K가 죽자 그의 몸 속을 빠져나온 어둠은 삽시간에 전염병처럼 퍼졌고

짐승들은 피 묻은 손톱으로 만든 건 시간의 생식기였습니다


⃙ 언어의 신뢰성과 동일성을 믿지 않는다.

 난쟁이 K가 세상을 수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침.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세계. 도착적인 세계가 영원히 반복될 수 없다.

 성경의 원전을 뒤집는 해체적인 형상의 방법.

 총체성 회복이 유보된 사회

⃙ 8요일 - 문제의 발생 근원

⃙ 난쟁이 - 신의 위치로 격상, 주체 중심에 대한 반격(탈 중심적 세계관)

⃙ 시간의 생식기 - 끊임없이 반복되는 양식.

                 도착적인 세계의 영원성을 의미


4. 계단을 오르는 사과나무(115쪽)


계단을 올라가네

한 계단 한 계단 흰색으로 칠하며 올라가네

첨벙첨벙 계단을 올라가네 미끌미끌 계단을 올라가네

갈기를 늘어뜨리고 밤늦게 약국을 다녀오는 계단

잠든 이빨로 질겅질겅 껌을 씹는 계단

난간에 앉아 계단을 쑥쑥 순산하는 계단

계단을 밟는 순간 지워야 하는 것이네

흰색 페인트는 어머니가 주고 간 유일한 유산

계단 틈에 웅크린 저것, 아

자기야 왜 그러고 있어 왜 발목을 붙잡는 거야

사랑하는 자기야 뿌리가 썩고 있어

나를 관통해줘, 자긴

내가 십 년 전에 잉태한 사과나무야

불룩한 뱃속에서 사과즙이 출렁거리네

발목 아래로 흰색 바다가 출렁거리네

백태 낀 혀를 갈가리 찢어 만든 붓으로

계단을 칠하며 올라가네

층마다 단칼에 잘려나간 하늘이 모서리 끝에서 덩렁거리네

무거운 몸뚱어리를 바다에 끌러 놓고

구름이 핑 도는 실핏줄만 남아

계단을 지워가네

한 계단 한 계단 흰색으로 칠하며 지워가네

첨벙첨벙 계단을 지워가네 미끌미끌 계단을 지워가네

나뭇결 머리에서 다시 계단이 생겨나네

계단 틈에서 다시 사과나무가 뿌리를 뻗네


⃙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계단을 지워나가는 것 - 반복적이기 때문에 곧 하나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계단과 사과나무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사과나무는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이 만난 세계를 의미하고 그래서 일그러진 형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선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워 놓은 관념들을 깨버리는 해체적인 시이다.


5. 이야기(131쪽)


  천년의 하늘을 떠받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촘촘한 가지 사이로 노란 버스가 걸려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물로 짜여진 길 위로 노란 버스가  내려왔는데, 나는 노란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부리가 푸른 새가 핸들을 돌리고 있었는데, 버스는 불룩해진 배를 끌고 엉금엉금 허공을 건넜는데,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목이 긴 여자를 접어 트렁크에 넣고 의자에 천천히 몸을 풀었는데, 새의 날개에 그려진 노선표를 들여다보았는데, 개구리알 같은 눈알들만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잠깐씩 문은 열렸고 사람들이 울라타 트렁크를 하나씩 안겨 주었는데, 그때마다 창밖으로 너무 멀리 고개를 내민 가장 긴 목을 꺾어 트렁크에 넣었는데, 은행나무 가지마다 목을 매단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웃고 있었는데, 장난감 가게들은 귀를 막고 있었는데, 부리가 푸른 새는 핸들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차창으로 트렁크를 하나씩 내던지며 내릴 곳을 찾는 데 십 년을 써 버렸는데, 길을 얽은 무수한 그물코는 올이 풀려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노란 버스는 색도 바래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끝도 없는데,


⃙ 허구가 지배한 세계 - 천상의 이미지

 하나님이 물질화 되어서 지상에 내려왔다.

 버스가 지나가는 길이 내가 지나가는 길.   

⃙ 트렁크 - 사람의 목을 꺾어 집어넣는다는 것은 인간을 사물화 물질화 구조화 시키는 것임.

⃙ 은행나무와 노란버스 - 화려함과 경고의 이중성을 가짐.

⃙ 버스가 지나가는 길 = 내가 지나가는 길

(사회 관습, 통념 = ‘나’의 의식 구조)

탈중심적인 세계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