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김기택 시인의 "소"

자크라캉 2008. 9. 9. 14:31

기택 시인의 "소"

 

 

김기택 시인의 시는 한마디로 재미있고 쉬운 시이다. 그의 시는 ‘도시의 소음에 묻힌 자연의 소리에

대한 관심’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소’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도시문명 즉 자본주의 폭력에 대한 복원을 희구하는 시인의 세계관과 독자에게 전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고 그 문제에 대한 현실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풍요로운 생명의 세계이며 그 세계의 연장이며 도시의 소음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찾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 도시의 소음은 아주 경박한 소리로 표현된다. 도시의 소음을 경박한 소리로 표현한 것은  문명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며 그 문명이 억누르거나 소멸시킨 자연적 가치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고 나아가 시인은 예민한 감각을 통하여, 회상을 통하여 오래된 과거의 소리를 기억해내고 그 기억을 통하여 자연의 소리를 복원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하여 그의 시적 표현 방법을 알아보고 그가 전하는 소리를 들어보고 느껴보자

 

 

<작품1. 90쪽 교동도에서>

 

  교동도에서

 

교동도,
멀리 눈 쌓인 너른 겨울 들판이 다 까맣게 보였다.
궁금한 내 승용차가 좀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았다. 햇볕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하나같이 꼿꼿하게 서 있는 수천 마리 철새들의
끝없이 넓은 부동자세를,
겹겹이 철새들을 둘러싸고
자세가 흐트러지기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추위 앞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부동자세를,
막힘없이 춤추는 물로 건축한
얼음의 결정체처럼
기하학적인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자세를.

 

아무것도 모르는 승용차는 경박한 소음으로
그 고요하고 경건한 의식을 깨뜨리고 말았다.
한 마리의 부동자세가 깨어지자
수천 마리의 철새들도 일제히 부동자세를 버리고
높이 솟구쳐 올라
겨울 하늘에 검은 점으로 촘촘하게 박혔다.
새떼는 한 마리 붕새처럼 거대한 날개가 되어 하늘을 덮더니
그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폈다 하더니
낮게 가라앉았다가 높이 솟아올랐다가 하더니
교동도 하늘을 한번 크게 선회하더니
더 먼, 더 많은 눈이 쌓인, 허허벌판으로 내려앉아
다시 햇볕을 받는 검은 들판이 되었다.

 

   이 시는 수천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얼어붙은 호수에서 필사적인 부동자세로 버티고 서 있는

자연의 엄숙한 상황에서 그 엄숙한 상황을 깨는 승용차 소음을 통하여 도시의 소음이 경박함을 표현

하였다. 즉 경박한 도시의 소음이 수천마리의 새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작품2. 71쪽 열대야>


  열대야

 

트럭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트럭은 굵고 짧고 느리다.
반경 수백 미터 이내의 허공에 가득 찬 소음이 몰려와
한없이 느린 트럭을 밀어내고 있다.
소음이 아무리 악쓰며 밀어도 트럭은 빨라지지 않는다.
더 많은 소음이 몰려오고 트럭은 더 느리게 올라간다
소음을 견디기 위해 아파트들은 모두 콘크리트이고 사각이다.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돛자리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거대한 아파는 언덕에 붙은 트럭 소리를
고목에 붙은 매미 울음 소리로 듣고 있다.
여름 밤은 깊어가고 잠은 오지 않고
트럭도 이 밤 내내 저 언덕을 다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
여름이 다 가고 나면
소음이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매미의 허물이 남게 될것 같다.


   트럭이 언덕을 올라가는 엔진소리와 그 소리를 피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짜증스런 여름밤의 열대야(지구의 오존층이 파괴어 발생하는 현상)를 대비시켜 사람들이 도시생활에 적응해가는 방법(트럭엔진소리를 매미소리로 듣는)을 터득해가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도시인들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귀를 적당히 마비시키고 익숙해져야하며 소음을 음악처럼 느껴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도시의 소음이 도시인들의 밤 시간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그 소음을 피하기 위해 콘크리트 건물을 짖고 피했지만 더위를 피해서 다시 고층건물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을 아이러니적 기법으로 표현하였음

 

[아쉬움 표명]
마지막 연 ‘소음이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매미의 허물이 남게 될 것 같다’ 를 ‘… 남게 될 것이다’로 표현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부연 설명]
  매미는 빛이 있으면 언제나 운다고 하는데 매미는 태어날 때부터 울 수 있는 총량을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즉 일주일여 동안 울다가 울음의 총량이 떨어지면 죽는데 도시로 날아든 매미는 도시의 불빛

때문에 밤에도 울게되며 결고 태어난지 3~4일만에 울음보가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작품3. 74쪽 기이한 은총>


   기이한 은총

 

소음 속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어느 거리에선가 시위대가 외치는 노래일는지 모른다.
고층 유리창에 부딪혀 흩어진 소음의 바람에다
내 마음이 멋대로 붙인 곡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폭풍이 되고 천둥이 될 만큼 거대해진 소음 속에서
어지럽게 쌓인 음과 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섞이다가
우연히 한 음을 얻어 지금 나에게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집중하여 들어보면 그 소리는
고속 엔진이나 바퀴 소리들이 내는 화음 같기도 같고
경적 소리와 급정거 소리, 비명이 서로 뒤엉켜 울다가
공기 속에서 정화되어 은은하게 퍼져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 진동으로 남아 한참을 지나도 그치지 않던 소음이
오늘은 음악으로도 들려오니
이 무슨 기이한 은총인가.
이 도시에서 하늘의 음악은 이미 깨어져 흩어진 지 오래.
귀는 자연의 음악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지도 오래.
그런데 이 폐허의 소음이 또 다른 음악이었다니!
그 폭력적인 소음을 견디기 위해
내 모든 감각이 송판처럼 두꺼워지고 딱딱해진 지금
소음이 음악이 되어 새삼스럽게 나를 찾아온 까닭은?

 

   도시속의 소음은 무차별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지만,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인간이 선택하여 창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도시에서 소음으로만 들려오던 소리가 음악이 되어 찾아왔다고 가정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시인은 이 글에서 “왜 그럴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아니지만 이미 그 질문 전에 답이 제시되어 있다. 즉, ‘도시의 삭막함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음을 음악처럼 들어야 한다’는 처절한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제목 ‘기이한 은총’은 불쌍한 도시인들의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연민의식이 기층에 깔려 있는, 강한 반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4. 19쪽 복잡한 거리의 소음속에서>

 

복잡한 거리의 소음 속에서

 

복잡한 거리의 소음 속에서
아빠를 부르는 아이 목소리가 들린 듯하였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릴 만큼 커져서
그 소리에 꼼지락거리는 발음이 달릴 만큼 커져서
바로 내 뒤까지 왔다는 느낌이 되어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달려오던 소리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작은 여자아이의 눈이 되어
놀라, 멈칫거리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휙 돌아서 더 크게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되어

 

멀어져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빠였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처음 보는 얼굴로 변해버리는 거리 속으로
멀어져갔다, 아빠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뒤돌아보는 순간 똑같은 얼굴이 되는 거리 속으로
멀어져갔다, 아이가 부른 아빠들이
무수한 소리와 섞여 하나의 소음이 되는 거리 속으로
멀어져갔다, 아이가 부른 모든 아빠를 삼키고
고요하게 묵상하고 있는 거대한 거리의 소음 속으로

 

  거리의 소음은 아빠를 찾는 아이의 절박한 소리마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참담한 상황, 즉, 아이의 소리까지 익명화 되는 도시인들의 비극적인 일상과 도시의 비정과 냉혹함을 리얼하게 표현하였음

 

 


<작품5. 14쪽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까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시인은 ‘문명의 이기가 가진 폭력성은 우리의 오감을 빨아들여 다른 것들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방해하는 반면, 작은 풀벌레 소리는 오감을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다"면서 ‘텔레비전이 인간의 감각을 마비

시킨다면 풀벌레는 인간의 감각을 깨워 교감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문명과 자연이

인간의 몸에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변화, 다시 말해 ‘몸의 반응’을 성찰하고 있다.

 

  [부연 설명]
  TV는 자본의 상징이며 상업적 목적을 가진 물질이다. 유행이라는 뜻은 ‘무의식적 또는 자연발생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갖게하여 보편화되는 현상’을 말하지만 실제는 그 배후에 유행을 조작하고 있다. 그 매체가 TV이며 그 TV의 폭력성을 실감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유행이란 말의 뜻도 사전에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작품6. 17쪽 소>


   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이 시는 시집 표제 시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였다.
소가 말하는 형식은 ‘눈’인데 시인은 소의 눈을 보고도 알아듣지 못한다. 즉, 자연의 소리인 소의 말을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이 듣지 못 하므로서 인간이 자연과 단절된 안타까운 현실을 절박하게 표현한

글이다.

 

 


 <작품7. 34쪽 빗방울 산책 / 작품8. 35쪽 맑은 공기에는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빗방울 길 산책

 

비 온 뒤
빗방울 무늬가 무수히 찍혀 있는 산길을
느릿느릿 올라갔다
물빗자루가 한나절 깨끗이 쓸어놓은 길
발자국으로
비질한 자리가 흐트러질세라
조심조심 디뎌 걸었다
그래도 발바닥 밑에서는
빗방울 무늬들 부서지는 소리가
나직하게 새어나왔다
빗물을 양껏 저장한 나무들이
기둥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 그친 뒤
더 푸르러지고 무성해진 잎사귀들 속에서
젖은 새 울음소리가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빗방울 길
돌아보니
눈길처럼 발자국이 따라오고 있었다

 

 


맑은 공기에는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겨울 아침, 창문을 여니 찬 산바람이 들어온다
맑은 공기에는 언제나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맑은 공기가 더 맑아지는 비린내
아침 냄새가 더 아침 냄새 같은 비린내
그 비린내를 마시니
폭포를 먹은 듯 머리가 세차게 헹구어진다

 

흙 속에 사이좋게 섞여 썩고 있는
무수한 눈과 귀, 손과 발의 냄새들
마른 풀과 낙엽에서 녹아나오는 푸른 냄새들
아직도 공기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투명한 심장과 미세한 허파와 안개 같은 핏줄들
희미한 냄새만 남은 웃음소리들 흐느낌들

 

덜 깬 잠을 때리는 이 냄새에는 귀신 냄새가 서려 있다
깊이 들이마시면 허파가 시리다
귀신들도 비린내처럼 맑은 곳에서만 산다
이 냄새들이 산 속으로 계곡으로 더 깊이
절과 굿당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른 아침이면 비린내는 이슬에 흠뻑 젖어 있다

 

 

  위 두 시는 인공적인 자극에 마비된 도시인들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글이다. ‘ 물이

부서지는 소리’, ‘맑은 공기의 비린내’ 등 물과 흙과 공기와 비린내로 표현한 자연의 신선한 감각을

찾아야 한다는 멧세지가 담겨있고 식물성과 동물성이 하나로 엮이는 자연에의 회귀 또는 동화를 갈구

하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작품9. 25쪽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답답할 줄 알았더니
일평생 꼼짝 못하고 한 자리에만 있어 외롭고 심심할 줄 알았더니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실뿌리에서 잔가지까지 네 몸 안에 나 있는 모든 길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 구불구불한 길은
뿌리나 가지나 잎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나가는 너의 길고 고단한 길은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번개의 뿌리처럼 전율하며 끝없이 갈라지는 길은
괴팍하고 모난 돌멩이들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는 너의 길은
길을 막고 버티는 바위를 휘감다가 끝내 바위가 되기도 하는 너의 길은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추위로 익힌 독한 향기를 몰고 꽃에게 달려가는 수액은
가지에 닿자마자 소리 지르며 하늘로 솟구치며 터지는 꽃들은
온몸에 제 정액을 묻힐 때까지 벌 나비 주둥이를 쥐고 놓아주지 않는 꽃들은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한 몸으로 꽃처럼 많이도 임신한 너의 자궁은
불룩한 배를 가지마다 매달아놓고 무겁게 흔들리는 너의 자궁은
이빨 가진 입들을 빌려 자궁을 부숴버려야 밖으로 나오는 너의 씨앗들은

 

땅에 붙박인 채 오도 가도 못하고 살아도 죽어 있는 것만 같더니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어느 다리보다 먼 길을 걸어온 네가 발산하는 침묵은
발 다리 달린 벌레며 짐승들이 매일 들으며 자라는 너의 침묵은
잎에서 잎으로 길로 허공으로 퍼져나가 산처럼 거대해지는 너의 침묵은

 

 

   이시는 나무가 생명을 살려가는 소리를 역동적으로 나타냈는데 그 소리를 ‘침묵’이라고 표현하였다.

시인은 그 침묵의 소리를 들으며 ‘우글우글한 침묵’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그 역동성을 확산시켰다.
   이 시에서 시인은 침묵하고 있는 나무에서도 그 내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감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즉, 이제 인간은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자연의 소리를, 몸으로 말하는 자연의 언어를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품10. 62쪽 수다 예찬>

 

  수다 예찬

 

말은 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가
이제 그의 몸은 악기가 되었고 그의 말은 음악이 되었다
그가 말을 연주할 때
혀와 이와 입술은 얼마나 정교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던지
피리 구멍 같은 코는 얼마나 정확하게 바람을 조절하던지
배는 큰북처럼 얼마나 탄력 있게 진동하던지
그 좁고 어두운 입 안에서도
발음과 억양은 지느러미처럼 날렵하고 경쾌하게 헤엄쳤다
혀가 얼마나 힘차게 꼬리를 차며 물을 튀기던지
연달아 내 얼굴에 침이 튀곤 하였다
숨 쉴 겨를도 없이 말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어느 발음도 이에 깨물리거나 혀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말이 말처럼 달리면 사방에서 숨이 막히도록
깔깔거리는 소리들이 바람과 흙먼지 되어 일어났고
그 웃음소리가 채찍이 되어 말의 가속도는 늘어났다
갈수룩 말은 제 흥에 겨워 점점 더 힘이 붙었고
말의 장단에 박자를 맞추느라 몸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즉흥환상곡 악보인 그의 표정에서는
매 순간 연주된 음악이 현재 진행형으로 그려졌고
음악에 심취한 두 팔은 지휘봉처럼 격렬하게 떨었으며
두 발은 피아노 페달을 밟듯 연신 바닥을 두드렸다
오줌이 마려워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그는
잠깐 말을 그치고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은 듯했으나
제 속도에 취한 말들은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갔다
어찌 하겠는가 이렇게 많은 말이 들어 있는
커다란 소리통을 몸으로 갖고 있으니
이미 말들은 소리통에서 뛰쳐나오기 시작했으니


  이시에서 사람의 몸은 악기이고 말은 음악이다. 여기에서 말은 자연의 일원이 된 몸의 언어이다. 몸이 가진 자연의 의미를 해체한, 자연과 동화된 말이 음악이 되었다. 결국 이 시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감각을 되찾았을 때 자연과 동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11. 92쪽 어떻게 기억해 냈을까>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방금 딴 사과가 가득한 상자를 들고
사과들이 데굴데굴 굴러나오는 커다란 웃음을 웃으며

그녀는 서류 뭉치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고층 빌딩 사무실 안에서
저 푸르면서도 발그레한 웃음의 빛깔을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그 많은 사과들을
사과 속에 핏줄처럼 뻗어 있는 하늘과 물과 바람을
스스로 넘치고 무거워져서 떨어지는 웃음을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사과를 나르던 발걸음을
발걸음에서 튀어오르는 공기를
공기에서 터져나오는 햇빛을
햇빛 과즙, 햇빛 향기를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지금 디딘 고층 빌딩이 땅이라는 것을
뿌리처럼 발바닥이 숨 쉬어온 흙이라는 것을
흙을 공기처럼 밀어올린 풀이라는 것을

나 몰래 엿보았네 외로운 추수꾼*의 웃음을
그녀의 내부에서 오랜 세월 홀로 자라다가
노래처럼 저절로 익어 흘러나온 웃음을

책상들 사이에서 안 보는 척 보았네
외로운 추수꾼의 걸음을
출렁거리며 하늘거리며 홀로 가는 걸음을
걷지 않아도 저절로 나아가는 걸음을

 

* 외로운 추수꾼 :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The Solitary Reaper」에서 인용.

 


   시인은 이 시에서 ‘웃음’을 자연과 동화된 인간의 소리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을 ‘기억’이라고 제시한다.  따라서 시인은 삭막한 도시인의 일상을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을 기억에서 찾아야 한다는 해결방법을 암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인의 사상, 시인의 세계가 이 시 한편에 녹아있다. 인간이 자연과 동화되기 위해서는

오래된 과거가 갖고 있는 생명성을 기억해 내야하며, 그 것을 기억해 낼때 자연과 동화될 수 있는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인의 마지막 외침은 ‘자연회복’이며 기억을 통해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시를 맨

마지막에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