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김민정 시인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자크라캉 2008. 9. 9. 14:27

 

민정 시인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시인은 이미 시집의 말머리에서 “내가 맘껏 뜯어먹을 수 있게 나를 구워준/나의 오븐이자 빵이며 우물거리는 입인”하며 그녀 스스로 그녀 자신을 얼마나 게걸스럽게 뜯어먹을 것인지를 예고했다. 끔찍한 자해의 풍경을 맘껏 그려내기 위한 저 노골적인 화법. 시인의 무분별한 상상력은 그러나 얼음나라 여왕처럼 차갑고 뾰족한 왕관을 쓰고 녹아내리지 않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 그녀의 계산을 한 번 풀어보자.


# 부정의 정신으로


  각 시대마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새로운 문화를 주도해 나가는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거대담론 시대에는 황지우, 이성복, 박남철, 유하, 함민복, 최승호, 김광규 등이 권력의 외곽에 머물면서 자본과 문명을 비판하는 부정의 정신을 설파했다. 그들이 노래한 시들은 이른바 도시시, 해체시, 일상시, 생태시, 등으로 불리며 새로운 미학적 인식을 추구하였다. 주로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비판한 시들로 갈수록 더해가는 기계문명의 발달과 남근중심주의, 생태계의 위협 양상을 해체하려는 정신이 두드러졌다.

  혼돈의 세기말이 지나고 바야흐로 21세기가 펼쳐지자, 새로운 인식이란 이젠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듯한, 새로운 인식 자체가 진부한 고민이 되어버린 양상들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상상의 나무들이 뿌리뿐만 아니라 그 가지마저도 밖으로 뻗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뻗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딜레마는 바로 소재의 고갈, 운율의 고갈, 표현의 고갈, 상상력의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서정의 형식으로 혹은 해체의 형식으로 뻗어나가던 가지와 그 끝에 매달린 이파리들마저 떨어져나간, 썩어 들어간, 부정의 정신은 누가 더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내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하다.

  특히 지난 2005년에 ‘새로’ ‘첫’ 시집을 내놓은 1970년대 생 시인들에게는 그로테스크 역시 새로움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전복을 꿈꾸고 있는 시인들. 자신의 내면화된 인식으로 열려있는 전복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파편화되고 잔혹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 메르헨과 검은 나나와 폴짝


  1976년생인 김민정은 메르헨에 푹 빠져 살았다. 동화나 우화를 듣고 자란 유년기에서 자아를 찾아나서 보니, 불에 타고 눈알이 빠지고 팔다리가 퍼즐조각처럼 찢어지고, 나는 더 이상 나를 안 닮고, 나를 닮은 나들만 천지다. 사방에 널려 있는 나나를 줄넘기로 폴짝 폴짝 뛰어넘어 시체랑 살 섞는 천 살 먹은 어린애로 그냥 살기로 한 것이다.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과 추악함, 그리고 경박스러움은 어린애적인 천진발랄함이 함께 쓰여 경쾌하게까지 읽힌다. 은폐된 가족이데올로기와 파괴된 신성, 무한 증식된 기괴스러운 상상력은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가볍게 비행하고 있다. 무겁고 신중한 관점과 태도로는 이러한 상상력의 전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민정의 시는 단편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우리 주체의 삶을 기이하게 연결하는 지점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폭로하기보다 주체의 내면에서 충돌하면서 삼투압되어 일으키는 과정에 주목한다. 주체란 과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회의에 빠져들어 현실적으로 독립적 주체란 존재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표현한다.


        줄이 돌아간다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허공을 휘가르며 양배추의 뻑뻑한 살결을 잘도 썰어댄다 나 혼자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두 살 먹은 내가  개똥 주워 먹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다섯 살 먹은 내가 아빠 밥그릇에다 보리차 같은 오줌 질질 싸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아홉 살 먹은 내가 팬티 벗긴 손모가지 꽉 물어 뜯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세 살 먹은 내가 빨아줘 빨아주라  제 자지 꺼내 흔드는 복순이 할아버지한테 침 퉤 뱉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여섯 살 먹은 내가 본드 빨고 토악질해대는 친구의 뜨끈뜨끈한 녹색 위액 교복 치마로 닦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아홉 살 먹은 내가 국어선생이 두 주먹에 날려버린 금 씌운 어금니 두 대 찾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두 살 먹은 내가 두 번째 애 떼러 간 동생 대신 산부인과에서 다리 벌리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네 살 먹은 내가 나를 걷어찬 애인과 그 애인의 애인과 셋이서 나란히 엘리베이터  타 오르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여덟 살 먹은 나 혼자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돌고 돌수록 썰면 썰수록 풍성해지는 양배추처럼 도마 위로 넘쳐나는 쭈글쭈글한 내 그림자들이 겹겹이 엉킨 발로 폴 짝 폴 짝 줄 넘어가며 입 속의 혀 쭉쭉 뽑아 길고 더 길게 줄을 잇대나간다


                                                             -「나는야 폴짝」전문


  줄넘기와 양배추의 적절한 은유가 보여주는 위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폭력을 통해 모욕하고 모욕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줄이 다가오면 ‘폴짝’ 뛰어 나가야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저절로 돌아가는 줄은 어김없이 돌아가는 세월과 보이지 않게 휘둘러지는 힘, 권력, 신적 존재, 사회를 존속시키는 시스템 등을 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욱 더 늘어나는 발밑 자신의 그림자를 뭉개거나 무시하는 시적 화자, 부정하면서도 끌려가는 인형 같은 존재, 결국에는 내 혀까지 뽑아서 더 길게 잇대나가는 나. 줄을 한 번 넘을 때마다 불행한 삶이 양배추처럼 썰려 풍성해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시적 화자는 무거울 수 없다, 다음 삶으로 또 건너뛰어야 하니까. 가볍게 넘기 위해선 의성어나 의태어의 장치가 필요하다.


        아이가 포도를 먹고 있어 껍질 안 벗긴 포도를 단번에 꿀꺽, 눈 딱 감은 채 삼키고 있어 포도알맹이는 코딱지 박힌 콧물덩어리 같아 포도알맹이는 황소개구리 알처럼 미끌미끌 미끄덩하단 말야 근데 넌 왜 포도를 먹니? 쉬잇! 이건 비밀인데 엄마, 포도알맹이 안에 엄마들이 살고 있어 엄마들이? 응, 내가 잠들면 나는 한 그루의 포도나무로 팔 벌리고 섰는데 내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마다 포도껍질을 찢고 엄마들이 뛰어내려 그래, 뭘 하며 노는데? 그냥 연습, 이렇게 엄지손가락을 물고 빨면서 데굴데굴 알이 되는 연습, 그러면서 엄마, 엄마, 불러보는 연습 엄마, 엄마, 엄마라…… 나도 따라 나직이 읊조려보는데 아이가 드러누운 걸리버처럼 끝 간 데 없이 커져버린 몸으로 출렁출렁 떠밀려오고 있어 올려다볼 수도 내려다볼 수도 없이 작아진 나는 아이의 위아랫입술 새에 삽괭이를 끼워 벌리고는 나선형으로 뱅뱅 휘감겨 있는 미끄럼을 타고 안으로 쭉쭉 미끄러져갔어 가슴을 턱 하니 가로막는 보라색 애드벌룬은 부풀대로 부풀어 그 큰 눈을 끔벅이며 내게 암호를 대라 하는데 나는 언제나 도망다니는 난자, 엄마 나를 꼭 껴안아주세요 엎지른 우유의 말라가는 흔적처럼 투명한 막을 뚫고 어떤 손 하나가 내게 악수를 청하는데 나는 손이 뭉텅 잘려나간 빈 장갑의 난자, 엄마 나 좀 놓치지 말라니까 뻣속 깊이 살균시킨 혀로 몸을 감싼 붕대의 터닝은 점점 빨라지는데 나는 믹서에 갈린 양파처럼 흐물흐물 즙이 된 풀통 속의 난자, 이런 씨발 엄마, 엄마, 엄마라매…… 내가 하이힐 벗어 죽어라 망치질을 해대자 너덜너덜 짓이겨진 보라색 콘택트렌즈가 검푸른 눈물로 끓어오르더니 내 살 위로 뜨겁게 끼얹어졌어 청동반점을 덧입고 푸르뎅뎅하게 살쪄 가는데 이미 나는 죽어버린 난자, 끊어진 실핏줄을 심지 삼아 불 켠 나는 거기 뼈만 남은 엄마와 가시만 남은 엄마가 공기놀이 하는 걸 보았어 포도송이만한 공기알 속에는 엄마의 엄마들이 산달의 아기처럼 숨차하며 엄마들의 빈주먹 안에 감겼다 풀리길 반복하고 있었어 기다리렴, 죽은 네 엄마가 반드시 죽은 널 찾아올 테니 엄마들이 공기알 속에 하나하나 들어차자 곧바로 나는 공기놀이를 시작했어 그리고 다음엔 너야!

  

                                                 - 「포도 씨앗 속에 엄마 찾기」전문


  모성의 전복을 그리고 있는 위의 시는 그만큼 보편적 상식을 거부하고 있다. 모성 결핍의 시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기존의 엄마 이미지가 자본주의 메카니즘 안에서 굴절되어 가는 사회. 거대한 포도나무는 이제 엄마가 아니라 자식들이다. 엄마는 겨우 포도씨앗 속에서나 찾아야 한다. 그렇게 작아진 엄마를 찾아나서야 하는 나는 또 얼마나 작아진 존재인가. 여기서 시인의 앞선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자본의 폭력 자체를 거부하며 몸과 정신의 견고한 성채를 만들어 놓은 남성중심의 사회를 해체하려는 순간, 얼핏 기대고 싶었던 엄마와 자신의 끈조차 끊어져버린 걸 알아채고는 그 분노를 표현하는 자아가 있다. 기댈 곳이 없어진 시적 자아는 자본주의와 부권사회의 완전해체를 위해 자해로 그 의지를 실행한다.


       청동기마상에 올라탄 갑옷이 두구둑 두구둑 입으로 말을 달려와 끝간 데 없이 긴 말라깽이 창으로 세탁기를 찔러댔다 드럼통 안에 웅크려 있던 여자는 입 발굽 소리에 맞춰 완자처럼 땡글땡글 온몸을 말아갔다 애야 이리 온 내가 그네를 태워줄게 어둠 저 깊숙한 현을 빨아들였다 내뱉길 반복하는 늘어진 줄넘기는 잠든 여자를 타고 맘껏 넘나들었다 쫙 다 펼친 부채꼴로 다리를 안 벌리면 구렁이처럼 배알 굵은 고무 테가 여자의 허벅지를 휘갑쳤다 독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여자는 도톰하게 살 오른 자신의 음부 위에 뱀이 곧 새끼들을 낳을 거란 전보를 읽어댔다 오십 원짜리 동전처럼 작아지게 해주세요 여자는 빨간 돼지저금통 속에서 똑 소리 나게 섞이고 싶었다 다 갈아 먹고 난 커피봉지처럼 향으로만 남게 해주세요 여자는 수세미로 빡빡 닦아내도 가시지 않는 제 살 냄새를 어떻게든 태워버리고 싶었다 여자는 그러나 자꾸자꾸 자라났다 자꾸자꾸 자라나 접어봤자 물에 불린 오리털 점퍼만 해져 갔다 세탁기를 찔러대는 갑옷의 창 끝에 달궈 이은 칼날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자는 포르말린 속을 떠돌며 피칠 두른 살 껍질들을 불려났다 포크에 찍힌 먹음직한 프랑크 소시지처럼 칼집 내지지 않도록 네모진 황금색 생강덩어리처럼 대패질당하지 않도록 여자는 밤마다 세탁중이었다


                  -「고통에 찬 빨래 빨기- 나는 안 닮고 나를 닮은 검은 나나들 1」전문


        낮에도 여자는 늘 세탁중이네 피칠 두른 살에 지져진 얼룩들이 남아 영 지워지지 않네 회전하는 드럼통 안에도 흉터처럼 얼룩들 남아 닦고 또 닦아도 아이 참 씨부럴 놈의 얼룩들 지워지질 않고 도돌이표 도돌이표로 다시 밤마다:ll


                -「고통에 찬 빨래 빨기- 나는 안 닮고 나를 닮은 검은 나나들 5」전문


  더러움과 순수함의 경계가 해체될 수밖에 없는 지경을 담고 있는 인용시들은 내가 세탁하는 것 같지만 나 또한 세탁이 되는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닦고 닦아도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은 얼룩이 없던 부분마저도 세탁 중에 그 얼룩을 스며들게 하여 결국은 삶이 다 얼룩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세탁은 그 과정의 반복으로 인한 비극성과 또 다른 얼룩의 예비과정이 되어버리는 의미를 나타낸다. 청동기마상에 올라탄 갑옷과 뱀이 보여주는 남성의 권위가 만들어내는 얼룩이란, 얼룩의 번짐이란 세탁기의 드럼통 안에서 아무리 여자끼리 돌고 돌아도 씻겨지지 않는 것이다. 여자의 세탁기는 이미 더러워진, 앞으로 더러워질 감옥과 마찬 가지다.


       소금을 듬뿍 두른 변기솔로 내가 날 구석구석 닦는다 한 입에 한 배꼽에 한 음핵에,  두 눈에 두 귀에 두 콧구멍에 두 젖꼭지에 두 난소에, 꽃삽을 쑤셔박아 내가 날 데코레이션한다 늑막이 터지도록 허리를 졸라매고 고기걸이용 쇠걸이에 목을 찍어 내가 날 옷걸이에 건다 터진 수도관에 입이 물린 고무장갑처럼 살이 불 때까지 내가 날 꼬집어 뜯는다 하키스틱만 한 낫을 갈아 뒤통수부터 엉덩이까지 내가 날 자로 댄 일자로 찍어내린다 폐 한가운데에 식칼을 대고 살 껍질을 훌러덩 뒤집어 내가 날 까버린다 서둘러 군불을 지피고 그 위에 석쇠를 달궈 내가 날 통째로 얹는다 지글지글 내가 날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자 해골들과 부위 모를 뼈다귀들이 앞다투어 모여든다 석쇠 위에 고여 있던 핏물이 선지로 돌돌 말아 빚은 완자처럼 지져져 더욱 쫀쫀해진 내가 날 엿가위로 한 입 두 입 잘라 굽는다 따각따각 아귀 터지게 턱 벌리는 해골들에게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바싹 태워 먹여준다 오일 바른 상아 같이 매끈매끈한 뼈다귀들이 몸에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파스처럼 붙여준다 불가에 모여 앉은 해골들과 뼈다귀들이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먹고 입고 점점 나로 살쪄간다 일곱의, 스물의, 스물일곱의 제각각의 내가 날 쳐다보며 나야 나야 손을 흔든다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들을 다 트림하고 나로 자란 그대들이 방방마다 걸린 액자 속으로 걸어들어가 찰칵찰칵 기념촬영을 한다 내가 날 잘라 구워 먹고 난 달궈진 석쇠 위에는 열세 개의 꽃삽만이 꽃게처럼 익어가고 있다


                                           -「내가 날 잘라 굽고 있는 밤 풍경」부분


  시적 자아는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심지어 빨아도 봤지만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 남근시스템의 전복을 위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엽기적 자해를 사용한다. 내가 나를 잘라 구워 먹어치우고 남는 것은 자해의 도구로 쓰인 꽃삽이다. 깡그리 먹어 버렸지만 나야 나야 하며 손을 흔들어대는 일곱의 스물의 스물일곱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나를 위해 그 도구는 남겨두어야 하는 운명이다. 제 3의 자아, 잉여의 존재이면서 부정의 존재인 열세 개의 꽃삽으로.


  #뾰족뾰족 고슴도치 아가씨는 어디로?


  도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현대의 부정적 양상들을 폭로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주로 음성상징과 먹히는 편에 속해 있으면서 죽은 몸에서도 살아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많이 차용했다. 극적인 실험정신을 구사하면서도 전적으로 새로운 인식이라거나 분명하게 길을 찾은 부정의 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에 시인에게 좀 더 극단으로 몰고 나가는 변모를 보고 싶은 것이다. 원근법의 해체라든가 가부장제 비판, 문명의 그늘이 자아내는 피폐함 등은 이미 식상한지 오래되었다. 일상으로 침투해 우리를 억압하는 또 다른 인식과 개념의 틀을 해체하는 유동적인 시선을 보여주기 바란다.

 

 

몇편의 시를 더 소개한다

 


나비 중독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젖소를 떠메고 가는 여자를 보았지

누군가 또 우유를 먹고 싶다 그랬구나

버선발로 목장에 뛰어갔다 오니
너는 없고
혼자 빨기에 남은 젖소의 젖퉁이들
너무 많아
칼질과 포크질로 피의 테이블보 폭신할 때

남 몰래 지리고 간 나비의 꿀 같은 오줌

죽어가는 물고기의
마지막 한 모금의 뻐끔처럼
늘 그런 도돌이표

빨랫줄 위 젖소 가죽 펄럭거리고
떨리는 혀끝으로 등허리를 핥는
내 혓바닥의 충전지가 바닥날 때까지

데칼코마니, 마르지 않는


오빠라는 이름의 오바


서울역 계단에서 다다다다 굴렀던 날 일으켜 준다더니 그 손으로 자빠뜨리는 오빠를 만났다. 안 그러면 뼈가 상한단다,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세 번째 앰뷸런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 막히는 오빠, 오빠는 붕대 대신 두루마리 휴지로 깁스를 해준다고 풀럭거리는데 비가 와 퉁퉁 분 휴지들이 고름처럼 내 몸에서 솟아나잖아요. 안 그러면 뼈가 상했을 거야,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다섯 번째 앰뷸런스, 달이 뜨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 막히는 오빠, 오빠는 식염수 대신 정액으로 소독을 해준다고 싸대고 앉았는데 빨아들이지 말아요 그날의 둘째 날이라 창자가 내 피로 흥건하잖아요. 안 그러면 뼈가 상해버렸을 거야,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일곱 번째 앰뷸런스, 수만 별이 떴다 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 막히는 오빠, 오빠는 목발 대신 제 허벅다리로 내 다리가 되어준다고 도끼를 들고 설쳐대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더니 아이쿠 무거워라, 지게 같은 내 등뼈가 휘고 포대기 같은 내 자궁이 터지려 하잖아요. 안 그러면 뼈마저 상해버리고 없을 걸, 이 오빠만...... 에그 철딱서니야 믿긴 뭘 자꾸 믿으라는 거야. 아무도 찍어먹지 않아 배달시킨 그대로의 춘장처럼 시꺼먼 살점의 오빠가 왕따당해서는 안 돼 절뚝거리며 사막 너머 아프리카로 향해 가는 길 위의 나는 벌써부터 극성스런 엄마라는 무한대.



복수와 악수


니 보지에 털 났냐? 쓰다듬는 손이 있었고 털보만 봐도 코딱지 박힌 재채기를 쏟아내던 그녀는 면도날 모으는 취미를 가졌다. 2소라헤어샵이 어디에요? 길을 가리키는 손이 있었고 그날 밤 칼끝 같은 손끝에 찔려 외눈박이 된 그녀는 각종 도마 전시장의 안내자였다. 이 비곗덩어리 역겹지도 않니? 엉덩이를 물어뜯는 손이 있었고 꼭 낀 코르셋 밖으로 삐져나온 살 때문에 그녀는 공업용 전기 대패를 때밀이 삼은 지 오래였다. 내미는 손은 싹둑, 정원용 가위로 잘라야 할 손...... 암호인데 암내로 착각한 애인의 면장갑은 울퉁불퉁 열두 개의 손가락, 그러니까 나 죄 없어요 잘근잘근 자른 두 손가락을 털 뽑힌 브러시로 색색의 아이 섀도를 칠해보지만 메이크업이 다 끝나갈 때까지 마네킹은 눈뜰 줄 몰랐다. 불합격을 위한 테스트의 하루는 계속되었고 마네킹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사치였구나, 마네킹 공장의 여공으로 조립을 연마하기 시작한 그녀는 머리 몸통 팔 다리를 들고 뛰는 나날 속에 34-24-35 실루엣 하나 제 창가에 세워놓을 수 있었다. 그대 윤곽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달빛의 탄탄한 지방층이 얼마나 탄력적인지 매일 밤 그녀는 마네킹을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이제 더는 필요 없는 전화번호 책장을 뜯어 더덕더덕 그대에게 넘버링 이불을 풀칠해주고 난 새벽, 따르릉 전화를 거는 손이 있었고 창 밖으로 전화기를 내던지는 손이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현관 앞에 누군가 똥 한 무더기를 싸놨고 그건 다시 오겠다는 도둑의 예의 바른 알림장이었으므로 다음날 아침 삽으로 똥을 퍼 똥통 속에 내버리며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귀찮아, 귀찮아 그녀의 삼각 팬티로 깜찍이니 끔찍이니 모자를 쓰고 그녀의 브래지어로 잘 보이니 안 보이니 안경을 낀 그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내미는 손은 바나나 다발, 죄다 까먹어버려야 할 움켜쥔 손......



나비 중독자, 프롤로그


누군가 퉤 하고 내뱉은 가래침이 찍 하고 창문에 달라붙는 순간
그러니까 어떤 최초의 발설이듯
팔팔 끓는 사골 국물이 내 각막 위로 끼얹어지는 순간,

설사한 아기의 기저귀는 반쯤 접혀 있었는데
땋아 내린 아이의 갈래머리 끝에서
팔랑이는 나비의 발길질은 시작되었는데
이미 나는 나방이 타전하고 간 얼굴 하나
스티커처럼 창문에 새겨놓은 뒤였다

바라보면 0.1디옵터씩 시력을 훔치고
만지면 0.1킬로그램씩 그림자를 먹어치우는
아-만두피같이 썩은 이빨을 감춘
눈먼 아가리의 뻥튀기 맛이라니!

너와 나를 번갈아 타며 교성을 질러대던 그가
까짓 것 찾아주지 뭐, 붓끝에 검은 헤나를 찍어
죽어도 까기 싫어, 내 엉덩이에 대고 그렸다 지웠다
몽타주를 뭉개는 동안 나는 뒤집개 잃어버린 프라이팬,
그 위에서 고아가 된 계란 흰자처럼 부들부들 떨었는데
떽-떼-구-르-르 굴러 떨어지는 쥐눈이콩 두 알

날마다 유리병 속 쥐눈이콩은 쌓여가고 틈틈이
펜촉처럼 뾰족한 입매로 벽을 긁는 더듬이가 자랐으니
아침이면 뚜껑을 꿰뚫고 괄약근을 찢으며
트림하는 코 막힌 트럼펫들, 바야흐로 詩!



귀 막힌 나날들


학익동이요 했는데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끽동 길 한복판이었다. 쉽게 불러요 쉽게 부르지 그렇게 불려온 40여 년 동안 어둠 깜깜할수록 더 빨강으로 환해지던 옐로우 하우스의 안마당, 입대 전날 아빠의 동정도 머뭇거리다 여기 와 묻혔다는데 지금이라도 캐갈 수 있을까요? 돌아봤다 돌이 된 엄마가 돌아보지 마 신신 당부했거늘 떨어뜨린 문학개론 주우려다 눈이 마주친 끽동 언니는 하이힐 끝으로 책장 위에 올라선 채 이렇게 말했다. 뭘 째려 이 쌍년아, 너도 인하대 나가요지? 길 하나를 맞각으로 캠퍼스 저 푸른 잔디를 담요 삼아 끽동 언니들은 짝짝 껌을 씹어가며 딱딱 화투장을 쳐댔고 그러다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면 뒷물세숫대야를 들고 나와 지나가던 여대생들만 골라 뿌려대곤 하였다. 쟤들이 젤로 재수 없어 퉤, 침 뱉었지만 물 마르기 전에 물 뿌리기 바쁜 끽동 언니들의 목마름이란 그 가래도 아까워라 자갈처럼 나날이 입 다물어야했는데, 세라복을 입은 채 놀다 가! 웬 사람의 팔을 잡아끌 때 그 땀방울도 아껴라 잠시도 장독대처럼 일어날 줄 몰랐는데, 어느 날 끽동이요 했는데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학익동 아파트 단지였다. 신호등 좀 건너다녔을 뿐인데 말이다.



일요일은 참으세요


1.

서른, 좆도 아닌 나이라지만 그 좆이야말로 슬픔의 심로라 시방 그녀의 등뼈는 불붙은 심지처럼 타고 있는 거다. 청첩장이거나 부고장이거나 일요일, 化粧하거나 火葬하거나 일요일, 섹스하거나 미사 보거나 일요일의 우리들은 용각산 같은 그녀의 뼛가루로 시방 목을 풀거나 목이 메는 거다. 앙코르! 앙코르! 야 이 놈의 까-까-마귀들아, 시방 니들의 그 주둥이는 웃자고 씨불대는 거니 울자고 씨부렁대는 거니.

2.

내 안에서 나를 쪼는 까-까-마귀들의 입냄새에 나는 눈을 뜬다. 꿈이야 뭐야. 청담웨딩플라자에서 신부의 들러리로 나는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영정 사진 앞 그녀의 흰 국화와 들꽃사랑 내 부케가 뒤엉켜 썩고 있는 거다. 향수의 절반이 시취인 꽃들이여...... 꿈이 아니라면 또 뭔데. 결혼식장에서 스테이크를 써는 하객들이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퍼먹는 조문객들로 양복이 반반 재단되어 있는 거다. 몸의 절반이 검은 반점인 사람들이여...... 까꿍.

3.

알아들을 수 없는 화교들의 말 속에 알아들을 수 있는 내 말은 저 혼자 맴맴 원을 그렸고 아지랑이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쇠창살을 물어뜯으며 까-까-마귀들이 날아오른다. 그녀의 봉분을 등에 짊어진 채 다시금 하강하는 순간의 바싹, 오름처럼 폭신폭신한 곡선을 베개로 받쳐주며 편안한 잠 되셨나요? 되묻는 니들의 그 앙큼한 앙코르! 앙코르!

죽거나 자거나 일요일은 그래서 틀려도 맞는 거다



새로운 나여, 안녕*


혁대로 내 목을 조이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그는 떠났다

한 시인이 닭에게 그러했듯
나를 먹을 수는 있었으나
나를 잡을 수는 없었던
예민한 그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오늘,
그의 뒷주머니에 선물로 찔러 넣었던
오른손이 되돌아왔다

왼손보다 양 옆으로 약 3센티미터 가량
손바닥이 자라 있었다 손톱 또한
오렌지를 살찌우는 뜨거운 태양 아래
즙을 내기 좋은 고깔처럼 다듬어진 뒤였다

닭살을 긁은 뒤 울긋불긋 솟은
살찐 여드름을 짜기에 더없이 좋았으므로
나는 내 안의 작디작은 죽음을 잊었다

그렇게 흔들흔들, 안녕 새로운 나여

* 앨리스 워커의 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