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문혜진 시인의 "질나쁜 연애"

자크라캉 2008. 9. 9. 14:15

 

     혜진 시인의 "질나쁜 연애"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서 " 이 달콤한 환각에서 깨어나지 않게 반항의 기운을 다 소진해 버릴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 라고 그녀가 세상과의 소통에 있어 얼마나 냉소적 방식으로 접근 할 것인가를 미리 말해 주고 있다. 생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껌처럼 달라붙은 폭력의 세상에서 그녀는, 광기와 환멸을 넘나들며 신비의 환상 속을 유영하다 결국 도주라는 불온한 욕망에 사로잡혔으리라. 그녀의 색깔 있는 탈주 여정 속을 따라 들어가 보자.

 

   신세대 시인 문혜진(28)은 첫 시집인 <질 나쁜 연애>(민음사)를 등단 6년 만에 비로소 펴냈다. 그녀의 시는 통념을 깨는 시로서 '대중문화'와 '팝'의 감성을 끌어 들여오고, '러미라'나 '분홍약' 등 환각제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천연덕스레 등장시키는가 하면, 에코페미니즘적인 세계를 오르내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이나 예술은 삶의 보편적 조건에 대한 탐구인 동시에 한 시대의 삶의 초상이라고 한다. 요즘 일군의 젊음 시인들은 환상성에 기인한 주체 분열이라든가 '주체상실' 이라고 할 만한 시적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탈중심, 해체적인 시적 감수성을 촉발시킨 연대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동구권 몰락이후 구축된 1990년대적 상상력과 시대인식이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가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이념이 쇠퇴한 뒤, 황지우, 김광규, 이성복, 박남철, 유하, 함민복, 최승호 등은 탈이데올르기,탈계급주의, 탈사회주의, 탈남성주의적으로 이른 바 '도시시' 라는 쟝르를 개척했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문명을 비판하고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해체적 상상력으로 다양한 시적 분수령을 이끌어냈다.

   그 시적 분화에서 새롭게 줄기를 뻗은 21세기 젊은 시인들이 극심한 분기 현상과 대칭 파괴의 국면을 보여주며 등장한 것이다. 기존의 모든 문명적 질서, 사고, 인식등이 전면 해체되고, 부인된 자리에서 그들은 상상력의 내면을 가로지르는 환상과 엽기를 표현 양식으로 삼았다. 이들 젊은 시인들의 시적 성향은, 김민정은 파편화된 엽기적 상상력으로, 정재학은 환상적 접근으로, 조말선은 언어 해체 문제에 대한 천착으로, 함기석은 평면적 언어를 극복하기 위한 기하학적 언어 탐색으로, 유홍준은 탈계급적 리얼리즘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각기 다른 표현양식으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 전면적 공격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일군의 젊은 시인들과 견주어 문혜진은 첫 시집에서 하나의 틀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첫째 서정성이 깊이 착색된 도시적, 환상적 어법이다. 특히 앞에서 상기한 젊은 시인들의 시가 비판과 풍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 서정성이 약한 반면, 문혜진의 시는 서정시의 특장이라고 할 만한 내적 고백 양식을 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력이 있다. 그것은 그와 당신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쓸쓸하고 관능적인 서정을 묘사한 <수족관 환상>, <봄밤의 즉흥 연주>, 언밸런스한 당신과 나와의 관계를 묘사한 <시금치 편지>, <고장난 방>, 얼룩져 드러내 피학성과 가학성의 비극적 세계를 묘사한 <공장>, <도마 위의 사랑>, <분홍벽>, <3 센티미터의 우울>, <흡혈과도 같은 키스> 등 서정성을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해체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나와 당신과의 관계가

부재하니까, 내가 너무 외로워 만들어낸 환상 속의 당신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신비를 좇는다

 

밤새 얼굴 없는 바람이

방 앞까지 와서 울다가 갔다

나는 일어나서

바람이 얼굴에 무어라 부딪치고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중년의 심리 치료사 닥터 한은 말했다

당신 안의 깊은 우물을 바닥째 드러내 보이세요

 

15.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17. 확실히 내 팔자는 사납다.

23. 구역질이 나고 토해서 괴롭다.

27. 때로는 욕울 퍼붓고 싶을 때가 있다.

42. 우리 가족들은 내가 택한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50. 내 영혼이 가끔 내 육신을 떠난다.

 

인도에서 옆구리를 스치고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쓰러뜨리고 싶어요

버스에서 발을 내리기도 전에

삑삑거리며 문을 닫는 기사의 목을 따고 싶어

인파가 밀려드는 지하도에서

마네킹처럼 서 있는 전경의 방패를 걷어차고

구걸하는 거지의 동전 통을 빼앗아 달아날 거예요

 

닥터 한!

그런 눈빛을 원하는 게 아냐

하루 오만 원짜리 환자로 나를 보지말고

미친 년!

짜증나!

차라리 따귀를 치는 게 어때?

 

벌거벗은 달이

빌딩 외벽으로 뛰어내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신비에 속기 마련이다

 

이런  밤엔

분홍약*을 삼키고

구름 속에서

분홍색 잠을 자고 싶어

 

딱딱한 침대에 누워

나는 밤새

신비의 끝을 잡고 운다

 

                                                                                                                       -<심리 치료> 전문

 

*우울증 환자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가르키는 은어.

 

  시인은 신경증적 증세로 시적 화자의 제반 증상을 열거하며 "나처럼......추운 사람 있어?" (<푸른 완두콩의 오후> 일부) 라고 물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새 신비의 끝을 잡고 운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의 고아라 할지라도 그녀가 시인인 이상 신비의 끝을 잡고만 있을 수 없기에 " 언젠가 흘러가야 할/배반의 구름/이적해야 할 이교도의 구름" (<여름 구름> 일부) 이라는 불온한 탈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그녀가 마주한 세상과 저항하는 방식의 코드는 '냉소적 웃음'이다. 쓸쓸하고도 자기 파괴적인 냉소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살기 싫으면 죽으세요. 되도록 빨리 죽으세요. <불타는 사다리>일부

   - 나부랭이들은 이걸 두고 '몸시' 라고 하겠지. <문신> 일부

   - 전복 운동에 서서히 지켜 갈 것이다. 뭘 더 바라겠어?! <나이브비전> 일부

   - 엉망진창 스프링 산발 사방으로 치솟는  <엉망진창 물고기 인간의 모노드라마> 일부

 

  그러면 그녀가 주변 대상들에게 냉소적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얼까?

 

   자. 그럼 껌 요리를 시작해 볼까?

   재료: 어린아이 머리칼에 엉겨 붙은 껌. 지하도 바닥에 눌어붙었다가 도루코 칼에 인양된 껌. 걸인의 썩은 이빨에 눌러앉아 단물 빠진 껌 (그 외에 잡다한 껌딱지들과 풍선껌! )

 

    껌을 씹는다 분홍색 단물이 스며 이가 쑤시고 잇몸이 부어도 멈추지 않는다 단물이 빠지고 접착력이 강해지면 검지에 돌돌 말아 되도록 길게 길게 늘여본다 뗐다가 붙인다 사람과 개를, 똥과 밥을, 나물 망태기와 뱀을, 나르시시즘과 모멸감을, 사시와 벌어진 앞니를, 독재자의 군화와 적진에서 죽은 어린 병사의 눈동자를, 너의 크고 작은 뼈들과 나의 예민한 영혼을 마구마구 붙였다 떼어본다 세상은 모든 바닥을 걸레처럼 쓸고 다닌 늙은 도둑고양이의 앞발과 페타이어의 잔등에도 어느 한 순간 엉켜 붙어 떨어지지 않는 곤란한 치욕 있으라!

 

                                                                                                      -<껌요리> 전문

 

   시인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모멸감과 폭력에 내몰려 껌딱지 같은 것들이 마구마구 내 몸에 엉겨붙어 있어 가히 '악마의 축제' 를 방불케 하는 현실 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냉소적일 수 밖에 없음을 그녀는 넌즈시 말하고 있다.

   시적 대응 방식에 있어 풍자나 비판은 세계가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신념에 천착 되어 있다. 하지만 냉소적 반응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문을 닫고 빗장까지 걸어 잠그는 경우이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그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써버리겠어" ( <탕진> 일부) 라거나 "" 씨팔 나를 부셔줘! 난 존엄한 존재가 아니야""( <체셔 고양이도 눈물을 흘릴까>일부 ) 라고 하면서 자기 파괴적 욕망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시적 화자는 무엇인가를 믿음과 신념으로 생성시키는  그 반대편에 서서 이 폭력적이고 야비한 세상에서 자신을 빼낼 수 없다는 현존을 인식한 이후, 마침내 병들어 있는 자신을 파괴하기까지에 이르는 시적 여정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트레아몽이 <말도로르의 노래>를 쓸 때 나는 그의 애인이었어. 나는 그의 딸을 낳았고 우리는 사나운 동물의 무리를 찬양했으며 가끔 외출할 때 늑대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했지. 그 늑대가 지금 우리 아버지로 환생했어. 그때 우리는 이 세계에 모멸감을 느꼈고 사는 게 지루해서 빨리 죽어버렸지.

 그는 난폭한 시인이었지. 난 그 난폭함을 사랑했어. 이런 야비한 세상에서 다시 어떻게 죽어가야 할까? 독한 술과 얼린 나비 가루로도 치료 할 수 없는 병이 있어. 그것은 광기와 환멸 사이 어디쯤에서 겉도는 마음. 푸른 안개가 피어오르면 해로운 마음이 사나운 발톱을 세우고 일어나지. 오래고 오랜 피. 지금은 분열된 몸과 마음이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시간. 막막한 마음이 죽어가네.

                                                                                                          -<환생> 전문

 

   위의 시와 같이 시인의 자아는 광기와 환멸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광기와 환멸 사이에서 문득 떠 올릴 수 있는 것은 도주다. 폭압적이고도 핍진한 세계에서 자아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저항하거자 환멸을 느껴 세계를 버리는 방법 둘 중 하나이다. 현실이 부정과 파행으로 점철되어 새로운 세계가 도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인은 후자를 택해 탈주를 꿈꾸기에 이른다.

 

서울을 떠났다

빗속에서 스매싱 펌킨스*를 들으며

탄력 있는 암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어둠 속으로 말발굽 또각이며

뒤돌아보지 않으며

                                                                                                                    - <여름비> 일부

                                    

     *미국의 4인조 밴드로 약물중독으로 멤버가 죽고 지금은 해체되었다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

잠자리 선글라스를 쓰고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를 갈아 끼우고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

구름의 일요일을 베고

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 거야

 

어린 시절 왜 엄마는 나에게

바람도 안 통하는

긴 플레어스커트만 입혔을까?

난 다리가 못생긴 것도 아닌데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아 가는

불량한 남자가 좋아

머리 아픈 책을

지루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지껄이지도 않지

오토바이를 태워줘

바다가 펄럭이는

바람 부는 길로

태풍이 이곳을 버리기 전에

검은 구름을 몰고

나와 함께 떠나지 않겠어?

 

                                                                                                          -<질 나쁜 연애> 전문

 

   *27살에 요절한 여성 록가수.그녀는 날것의 음성으로 노래하는 최초의 여성 록커였다.

 

   <여름비>에서 암말의 엉덩이를 차고 도주하고  <질 나쁜 연애> 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속도감에 취해 현실을 벗어나려는 경쾌한 도주를 엿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주라는 몽상 이면에는 타나토스적 충동이 깊게 잠재해 있기도 하다. 자기파괴에 이르는 죽음, 자살이란 게 보편적 입장에서 분명 잘못 된 것이지만 파편적인 현실의 자살자 입장에서 보면 유토피아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이제/ 저 달빛 속의/ 거북이를 타고/ 천년 후의 생으로/ 떠날 겁니다 (<염소와 달> 일부)

   - 혈서라도 쓰고 싶은 오늘은/눈의 장례식/내 몸에 닿자 마자/自滅한다// 그것이 나의 복수다

 (<혈서> 일부)

 

   즉 자기 파괴적인 의식과 도주에 대한 욕망은 타나토스적일 수밖에 없다. 현실은 그대로 존재하고 자신은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심각한 자아분열의 결과로서, 영원한 안식을 간구하는 동시에 파괴라는 몽상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페미니즘적 시와 생태적인 시가 함께하는 이른 바 에코페미니즘 (생태여성주의) 형태의

시들을 살펴 볼 수 있다.시인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황폐하게 인식하고, 자연의 야생성을 여성의 몸에 어떻게 접목시켰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 기르던 개가 죽은 강아지를 낳았어요 (<이팝나무 아래서> 일부)

   - 남은 세번째 젖꼭지로 고양이에게 젖을 물린다 (<과부와 고양이> 일부)

   - 침대에 누워 가슴 가득 돼지를 품고 자장가를 불렀다 (<젖무덤> 일부)

   -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고 싶어 머리를 찧는 새 (<자동기술> 일부)

 

   " 죽은 강아지를 낳 " 는 '개'나 " 남은 세번째 젖꼭지로 고양이에게 젖을 물리 " 는 '과부'나

 " 가슴 가득 돼지를 품고 자장가를 부르 " 는 '나'는 모두 도살될 위기에 처한 야생성의 근원을

대변한다. 여기서 바로 자연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착취하면서 근대가 성장했다는 에코페미니즘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날은 몸에서 실지렁이가 부화할 건만 같아 수태하지 못한 우주를 씻어내는 월경의 피가

스멀스멀 배를 돌다 자궁을 할퀴고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신들의 강은 범람한 지 오래. 더 이상 생명을 길러낼 대지는 없지 강철과 시멘트로 철갑을 두르고 흙의 정조대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아스팔트 검은 융단 위로 미끄러지는 쇳덩이들

 

   쇳덩이 몸을 굴려, 사막을 삼키고 초원을 씹어, 달리는 암말의 허벅지를 베어 문다. 하여 너는 벌거벗은 이성!  악어의 피와 야생의 책으로 기름 낀 내장을 씻어내고 뇌수에 박힌 파편들을 뽑아냈지 외눈박이와 절름발이들의 대리모. 내 몸을 가져도 좋아! 인공 부화기처럼 컴컴한 자궁을 열어두고 언제나 같은 온도를 유지하지

 

   나는 부활한 메두사! 머리카락을 뚫고 나온 실지렁이가 이글거려. 먹어치운 참치 캔만큼의

방부제와 나를 키운 약에 절은 쌀알만큼의 독을 뿜어대며 거머리처럼 피를 빨지 폐는 금세

빈 비닐봉지처럼 쪼그라들고, 지구 다섯 바퀴 길이의 창자도 빨리 감기는 테이프처럼 휘리릭

사라졌어

 

   순식간에 내 몸은 식인 물고기가 지나간 아마존의 침몰선. 휭휭 구슬픈 바람소리가 뼈다귀를 핥아, 갈 데 없는 내 해골을 걷어차고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말아 사라졌어 바로 그때, 당신의 입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검고 비린 몸

                                                                                               -<날것에 몸을 내어 주다>전문

 

   시인은 "신들의 강은 범람한 지 오래, 더 이상 생명을 길러 낼 대지가 없다" 고 자본과 문명이 자연을 황폐화시켜 더 이상 우리는 불모의 땅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시인 강희안은 이런 자연성과 야생성이 처참하게 파괴된 여성의 몸과 도시의 감시, 처벌의 흔적 등은 자본과 문명의 횡포에 의한 폭력에 대해 시인은 냉소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혜진, 그녀의 시집에는 외로움에 배인 도시인의 초상이 첨착 되어 있고, 세계에 대한 저항 욕구보다 이 세계로부터의 도피? 도주하고자 하는 강한 의식의 궤적이 노정되어 있다. 이제,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여 온전한 총체성 회복에 대한 신념이 있던 시대는 갔다. 현대사회에서 예수나 석가가 강림을 한다해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공공의 사회가 아니라, 고아가 된 개체들이 숨막히게 살아가는 게 이미 현실로 되어 있다.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패러다임의 공소시효는 끝난 것이다. 그래서 시인 문혜진은 탈주 할 수 없는 곳에서 탈주를 꿈꾸는 우리의 존재 방식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몸부림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탄생 할 모태가 될 수 있도록 다음 시집을 기대해 본다. 그녀가 어디로 어떻게 도주할 것인가가 그녀가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