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

메르헨, 혹은 하이마트 / 김춘수

자크라캉 2008. 7. 23. 10:38

 

 

르헨, 혹은 하이마트 / 김춘수

 

 

하룻밤에 꿈을 세 번이나 꾼다.
첫 번째 꿈에 나는 소년이 된다
.
탱자나무 울이 있고

샛노란 죽도화가 핀 길을 간다
.
저만치 한 소녀가 간다
.
가도가도 우리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두 번째 꿈에서는

시집와서 일 년이 된 아내가

첫 아이를 낳고

하늘하늘 어디로 날아갈 듯

얼굴이 새로 피어난다
.
세 번째 꿈에 나는 또 길을 간다
.
탱자나무 울이 있고 샛노란 죽도화가 피어 있는

그 길이다. 그때처럼

저만치 가고 있는 한 소녀가

갑자기 얼굴을 돌린다. 육십 년 전

아내의 얼굴과 조용히 포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