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사물 A와 B / 송재학

자크라캉 2008. 7. 8. 20:21

 

사진<꿈하나 사랑하나>님의 케페에서

                                물 A와 B  / 송재학

  까마귀가 울지만 내가 울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의 날 것이 불평하며 오장육부를 이리저리 헤집다가 까마귀의 희로애락을 흉내내는 것이다 까마귀가 깃든 동백숲이 내 몸 속에 몇백 평쯤 널렸다 까마귀 무리가 바닷바람을 피해 은신처를 찾았다면 내 속의 동백숲에 먼저 바람이 불었을 게다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다 내 몸에도 한없이 개울이 있다 몸이라는 지상의 슬픔이 먼저 눈물 글썽이며 몸 밖의 물소리와 합쳐지면서, 끊어지기 위해 팽팽해진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내 안의 모든 개울과 함께 머리부터 으깨어지며 드잡이질을 나누다가 급기야 포말로 부서지는 것이 콸콸콸 개울물 소리이다 몸 속의 천 개 쯤 되는 개울의 경사가 급할수록 신열 같은 소리는 드높아지고 안개 사정거리는 좁아진다 개울 물소리를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개울은 필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 시집 『진흙얼굴』 중에서

 

 

* 그러나 이 즉물적인 세계의 이면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분주하게 제 빛깔을 내기 위해 몸부림하고 있는가. '경사가 급할수록' 나도 그렇지 않은가,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무엇보다 바빠지는 건 나를 달구는 알 수 없는 熱이다. 그 열이, 비열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의 우울수치나 세로토닌 분비량 따위 대신 나무가 받아내고 있는 빛의 각도라든가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의 차가운 온도를 재어보는 것이다. 그러고도 그러고도 남는 것이 나, 자신 뿐이라면 그건 명백하게 '헛 산' 것이다. '드잡이질', 격렬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싸우는 사람들 같다. 드잡이질, 나는 자꾸 나무처럼 접 붙고 싶어진다. 우리라는 말의 슬픈 불가능에 자꾸만 머리를 짖찧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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