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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계간 <시작> 신인상 당선작]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 이영옥
그는 침침한 백열등 밑에서 저녁을 먹는다
굳어버린 혓바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밥상이 곤두박질 칠 때마다
늙은 아내는 깨진 것들을 천천히 쓸어 모았다
그를 지탱하던 의식들은
이빨 나간 그릇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치욕은 아내의 손톱 밑에 파고든 양념찌꺼기 같았다
한바탕 울분 뒤에
몰아쳐오는 적요는 언제나 쓸쓸하다
그는 잘 씹히지 않는 명태를 우물거리며
바다 속의 깊은 적막을 우려낸다
하루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명태 한 마리의 온전한 고독이 필요할테지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끈 일어선다
내 영혼은 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잠들 수 있나
꿈에서조차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마른 명태처럼 딱딱해진 생각들
탕탕 두둘겨
북북 찢어 놓고 싶었다
환멸에서 생비린내가 났다
백양나무가 바람든 뼈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 왔다
누런 이파리들의 밭은 기침에서 튀어나오는
죽음의 파편들
그는 온몸에 어둠을 퍼담고 고즈넉하게 저물어 간다
처마 밑의 마른 명태는
먼지를 한겹 두른 후 하루 더 희망을 품기로 했다
<작가소개>
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방송대 문학상 시 당선2004년 계간지<시작> 신인상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소설 창작과 수료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중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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