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um신지식>에서
인피제본책(人皮製本冊) / 차주일
어둠에 말뚝을 박는 소리 들린다
누가 죽음을 당겨다 제 生에 박는 중인가
마음의 무게로 내려치지 않으면 새겨지지 않는 어둠에
정을 쳐 유필을 새기는 이 누구인가
여명이 소쩍새와 뭇 울음을 쫓아낸 골짜기,
돌아가지 못한 어둠의 무게에 등고선 몇 가닥 휘었다
눈에 들었던 온 피사체의 무게에 버거운 눈주름처럼
낮이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어둠에 손 얹는다
어둠 한 장이 넘어간다
자전에도 없는 묵정(墨釘)의 문자들 빼곡히 음각되어 있는
맨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눈까풀 반쯤 당겨다가 속눈썹으로 박아둔
어머니의 눈을 쓸어 덮는다
관 속만큼 어두워진 내 눈이
땅 한 장을 양각하는 하얀 글자들을 읽는다
겉표지를 덮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은 한 권뿐이다
[2007년 「서정시학」겨울호]
'문예지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하철 농법 / 손택수 (0) | 2008.01.31 |
---|---|
꽃 진 자리 / 朴후기 (0) | 2008.01.31 |
다시 애월에 와서 / 이정환 (0) | 2008.01.24 |
애월의 바다 / 이정환 (0) | 2008.01.24 |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0) | 2008.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