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인피제본책(人皮製本冊) /차주일

자크라캉 2008. 1. 29. 19:50

 

                                                    사진<Daum신지식>에서

 

 

피제본책(人皮製本冊) / 차주일

 

 

어둠에 말뚝을 박는 소리 들린다

누가 죽음을 당겨다 제 生에 박는 중인가

마음의 무게로 내려치지 않으면 새겨지지 않는 어둠에

정을 쳐 유필을 새기는 이 누구인가

여명이 소쩍새와 뭇 울음을 쫓아낸 골짜기,

돌아가지 못한 어둠의 무게에 등고선 몇 가닥 휘었다

눈에 들었던 온 피사체의 무게에 버거운 눈주름처럼

낮이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어둠에 손 얹는다

어둠 한 장이 넘어간다

자전에도 없는 묵정(墨釘)의 문자들 빼곡히 음각되어 있는

맨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눈까풀 반쯤 당겨다가 속눈썹으로 박아둔

어머니의 눈을 쓸어 덮는다

관 속만큼 어두워진 내 눈이

땅 한 장을 양각하는 하얀 글자들을 읽는다

겉표지를 덮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은 한 권뿐이다       



  [2007년 「서정시학」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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