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기억할 만한 어둠 / 조용미

자크라캉 2007. 11. 13. 11:16

사진<너와집 나그네>님의 블로그에서

 

억할 만한 어둠 / 조용미

 

그 어둠이

내게 도착했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둠을 맞이했다

 

새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도 새장에 들어가는

마술사처럼

그는 달빛을 밟고 서 있었다

 

발바닥에

달빛이 하얗게 묻어났다

 

나는 그의 발을 들어

하얀 그 냄새를 맡아보았다

 

찬란하면서도 혼이 없는

어둠은

 

어린 아이와 어른의 영혼을 합친 것처럼

검게검게 빛났다

 

시집『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문학과지성사

 

<감상>

조용미의 스승이었던 故 오규원은 그의 시를 가리켜 그리움과 삶

의 비의에 가닿는 도저한 욕망이 빚어낸 '도상미학'이라

고 명명하고 "그 세계란 얼마나 끔찍한가, 아니, 얼마나 끔찍한 아름

다움인가"라고 적은 바 있다. 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정곡을 찌르

는 표현인가

 

2007년 11월 13일(화) 경향신문 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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