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묘정(廟庭)의 노래 / 김수영

자크라캉 2007. 10. 5. 17:49

            

 

                    사진 <http://blog.daum.net/yeehai  奪魄劍魔 >님의 블로그에서

 

정(廟庭)의 노래 / 김수영

 

1.

 

남묘(南廟) 문고리 굳은 쇠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상(靑裳)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정(朱雀星)

깃들인 시전(矢箭)

붉은 주초(柱礎)에 꽂혀 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아 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星火)

서리 앉은 호궁(胡弓)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寒鴉)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2.

 

백화(白花)의 의장(意匠)

만화(萬華)의 거동이*

지금 고요히 잠드는 얼을 흔드며

관공(關公)의 색대(色帶)로 감도는

향로의 여연(餘烟)이 신비한데

 

어드메에 담기려고

칠흑의 벽판에(璧板) 위로

향연(香蓮)을 찍어

백련(白蓮)을 무늬 놓는

이 밤 화공의 소맷자랏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1945년)

 

*주(註) 5연 2행 초판에<만화의 거동이>이로 잘못된 것을 원고에 근거해<만화의 거동의>로

           바로 잡았다

 

출처 : 2005년 개정판 <김수영 전집> 민음사

 

 

[작가소개]
김수영(金洙暎,1921~1968). 서울 출생. 연희 전문 영문과 중퇴.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고
해방 후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 출발했으나,
4.19의거 이후에는 현실성.산문성을 중시하여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기반한 참여시로 나아갔다.
시집으로는 <달나라의 장난>(1945),<거대한 뿌리>(1974)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시여 침을 뱉어라>(197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