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에비”가 지배하는 文化 /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

자크라캉 2007. 9. 16. 00:36

 

수영과 이어령의 논쟁

옮긴글 2007/09/06 16:22

 

“에비”가 지배하는 文化
        ―韓國文化의 反文化性


 李御寧


  “에비"란 말은 幼兒言語에 속한다. 애들이 울 때 어른들은 “에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추는 애들도, “에비"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다. 즉 “에비"란 말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다.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의미는 막연한 두려움이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리고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을 총칭한다.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복면을 쓴 공포, 분위기로만 전달되는 그 위협의 금제적 감정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67년도의 문화계,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문화적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편리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그 “에비”라는 유아언어가 아닐까 싶다.
  지금 한국의 문화계에는 “에비”가 오고 있으며 또 각자가 그 “에비”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며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위기와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 속에서 문화활동을 해왔던 한해다. 말을 바꾸면 역사의 그 예언자적 기능으로서의 창조력이 극도로 위축된 시기의 문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현상은 문화를 바라보는 위정자들의 시선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힘은 고속도로를 놓고, 공장을 만들고 은행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 막중한 정치적 권력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토인들의 미분화된 사회에도 추장의 권력과 기도사나 제사장의 권한은 별개의 논리를 갖고 있었다. 수년전만 해도 위정자들은 문화에 대하여 어수룩한 편이었다. 이 어수룩하다는 점이 실은 하나의 장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무관심은 때로 정치적인 차원과 좀더 다른 문화적 차원의 그 이원성을 인정해주는 문화의식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원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정치권력이 점차 문화의 독자적 기능과 그 차원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 자신들의 소심증에 더 많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린애들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막연한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스스로 창조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정신의 근대화 보다도 산업의 근대화만 강조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빵과 관계없는 여타의 순수한 문화가 일종의 사치품으로 오해되어가는 시대풍조의 분위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둘째의 현상은 문화 스폰서들의 노골화한 상업주의 경향이다. 교육이나, 출판, 그리고 모든 문화업체를 조종하는 문화의 기업가들이 요즈음처럼 그 순수성을 상실한 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문화도 일종의 기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업은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의 기업이다. 탐욕한 畵商들은 미술계의 암이라기 보다 도리어 미술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패트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패트런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기업들은 마이더스왕처럼 문화의 생명을 죽여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팔고 있다.
  사냥꾼들도 남획을 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동물을 더 많이 잡기 위해서 그들은 보호와 사육에도 힘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밀렵자”들 보다도 더욱 한심한 것은 상업주의 문화에 스스로 백기를 드는 문화인 자신의 타락일 것이다. 문화기업자에게 이용만 당했지 거꾸로 이용을 하는 슬기와 능동적인 힘이 부족하다.

  셋째는 문화를 수용하는 대중들의 태도가 변해가고 있다. 일종의 반문화적 반지성적인 것이 도리어 문화적이요, 지성적이라는 퇴행현상이다. 천박한 유행어나 대중가요의 가요만을 분석해봐도 그러한 경향을 推斷할 수 있다.
  그윽하고 심각하고 장중하며 사색적이라는 것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다. 지적 수준은 조금도 향상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그 태도만은 소피스트케이트해진 대중들이 출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거나, 난해한 현대시나 추상화를 감상한다는 것이 오늘날엔 시골성스럽고 속물의 취미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문화를 대하는 순수성마저 상실되어가는 풍토이다.
  이런 현상과 야합해서 생겨난 것이 뻔뻔스런 말과 상말을 써서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몇가지 베스트셀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힘 역시 “에비”로 보고 겁을 집어먹고 있다. “정치권력의 에비”, “문화기업가들의 지나친 상업주의 에비”, “소피스트케이트해진 대중의 에비” 이것이 오늘날 문화계의 압력인 모든 반문화적 “에비”의 무드이다. 이러한 반문화성이 대두되고 있는 풍토속에서 한국의 문화인들이 창조의 그림자를 미래의 벌판을 향해 던지기 위해서는 그 에비의 가면을 벗기고 伏字 뒤의 의미를 명백하게 인식해 두는 길이다.

  어떤 외국의 작가가 “오늘날엔 갓뎀이란 말만 알면 식당에서든 거리에서든 만사형통”이라고 풍자한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도 반문화적이고 반교양적인 것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러한 풍토에서 우리는 그 치졸한 유아언어의 “에비”라는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다시 성인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朝鮮日報』, 67.12.28>



  지식인의 사회참여
                           - 일간신문의 최근 논설을 중심으로 -


金洙暎


  외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항용하는 말이 우리 나라에는 논설이나 회화(會話)에 있어서 '주장'만이 있지 '설득'이 없는 것이 탈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불평을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고, 또한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점은 유별나게 내 자신을 지목해서 말하는 것 같고, 그런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의 주변에도 적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경우에 '주장'이란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명령으로 화하는 성질의 것이고, 이런 현상은 으레 문화의 기반이 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노상 독재의 위협에 떨고 있는 사회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현상의 정치형태와의 관계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식의 선후의 순열을 가릴 수 없는 악순환의 수수께끼를 낳는다. '주장'은 독재를 보고 욕을 하고, 독재는 '주장'을 보고 욕을 한다. 그러다가 힘이 약한 '주장'이 명령을 넘어서서 어쩌다가 행동으로 나올 때, 독재가 어떠한 수단을 쓰는가에 대한 최근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누구나 다 아는 6.8 총선거의 뒷처리 같은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힘과 힘의 대결이다. '설득'이 허용되지 않기는 커녕 '주장'이 지하로 그의 발언을 매장시키기 시작한다.

  지식인이 그의 의중의 가장 참다운 말을 못하게 되고, 대소의 언론기관의 편집자들이 실질적인 검열관의 기능을 발휘하고 대학교의 강당을 '폭동참모본부'로 인정하게 되고, 월수 50만원을 올리는 유행가수가 최고의 예술가의 행세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사회의 상식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것을 근대화를 위한 '건전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의 코메디안까지도 '명랑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게 되고, 신문사의 편집자는 「민비(민족주의비교연구회)」사건을 피고같은 것을 두둔하는 투서나 앙케트의 답장을 모조리 휴지통에 쓸어 넣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설득'이 미덕이 아니라 범죄로 화한다.

  '설득'에는 자유의 조건이 필요하고 방향의 제시를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각신문의 세모와 신춘의 특집 논설중의 몇몇개의 비교적 씨있는 문화시론이나 좌담같은 것만 보더라도 여전히 할 말을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이(齒) 빠진 소리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신문다운 신문이 없다는 것과, 잡지다운 잡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주장'이고 '설득'이고 간에 지면이 없다. 민주의 광장에는 말뚝이 박혀 있고, 쇠사슬이 둘려져있고, 연설과 데모를 막기 위해 고급승용차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인 여론을 계몽하는 기골있는 신문과, 열렬한 문학작품을 환영하는 전형적 종합잡지를 만들어 내야 할 용지는 없어도, 고급차의 뒷자리의 두꺼운 유리창 밑에서는 하얀 두루마리 휴지가 정액의 봉사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0신문은 대학교수들의 환담을 통해 70년대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우리의 경우는 중소기업이 몰락위기에 있다든지 혹은 농촌에 미쳐 손이 모자라 자원의 분배가 안된다든지, 이러한 피치 못할 중대한 요인들이 있는데, 이것을 중심으로 뭉쳐지는, 조직되지 않은 어떤 폭발적인 요소가 70년대에 가면 표면화하지 않겠느냐…'고 사뭇 점잖게 말하고 있지만, 공정한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당신네 신문이 지난 1년을 통해서 언론의 자유의 긴급한 과제를 얼마나 주장하고 얼마나 실천했느냐를 먼저 반문하고 싶고 그런 불같이 시급한 관점에서 볼 때 위기는 70년대가 아니라 바로 현재 이 순간이며, '조직되지 않은 어떤 폭발적인 요소가 70년대에 가면 표면화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방관적인 논평은 너무나 한가한 잠꼬대 같이 밖에 안들린다.

  언론의 자유는 언제나 정치의 기상지수(氣象指數)와 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고,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정치의 기상지수의 상한선을 상회할 때에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민비」사건의 피고들의, '이 재판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이라든가 '우리들은 6.8 부정선거의 제물이 되고 있다'는 말 같은 것이 예를 들자면 그것인데 이런 정동의 주장을 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논설을 우리들은 하나도 구경해 본 일이 없다.

  D신문이 정월 초하룻날에 실린 J.D 듸로젤 교수의 '민족주의의 장래'라는 논설은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들의 '적극적 중립주의'의 당위성을 논한, 우리나라의 필자라면 좀처럼 쓸 수도 없고 실려지기도 힘들 만한 내용의 것인데, 이것을 비롯한 10편 가량의 해외 필자의 건전한 논단시리지를 꾸민데 대해서는 경하의 뜻을 표하면서도 어쩐지 한쪽으로는 365일의 지나친 보수주의의 고집에 대한 속죄 같은 인상을 금할 길이 없다.

  금년 들어서 C신문의 사설란에 '우리문화의 방향'이란 문화론이 실린 것을 읽은 일이 있는데, 이런 논조가 바로 보수적인 신문이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는 가장 전형적인 안이한 태도다. 그것은 서두에서 '경제성장을 서두르는 단계에서는 문화가 허술하게 다루어지기 쉬운 것도 어쩔 수 없는 경향인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생활을 도외시하고 문화발전을 생각할 수 없듯이 문화를 무시한 경제적 안정이나 정치적 안정이 우자의 낙원을 만들어 그 사회가 지니는 취약성이 끝내는 그 사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동서의 흥망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발전의 템포를 빨리해야 하는 우리 사회는 경제건설 다음에 문화발전을 이룩한다는 서열을 매기지 말고 발전의 표리로서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를 내세우고 나서, 다음과 같은 알쏭달쏭한 암시로 문제의 초점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몽롱하게 얼버무려 넘어가고 있다.

  즉 그것은 본론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화의) 방향의 문제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동백림공작단사건」이다. 그것이 비극적인 것은 문화인이 관련된 사건이면서 그 학문이나 작품이 문제되지 않고 간첩행위가 치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점이지만, 상당수 문화인이 그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자체는 간첩행위 이상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행위의 밑에 만의 하나라도 인터내셔널한 생각이 깔린 소치였다면 관련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일반문화인의 성향과 관련시켜 심각히 생각해 볼 일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문화인이 우리의 현실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관건으로서 문화의 주체성 확립과 밀접히 관련지어지는 것이다. …'

  우리는 여기서 우선 '인터내셔널'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것이 '일반문화인의 성향'과 어떻게 '관련시켜 심각히 생각해'봐야 할 지 알 도리가 없다. 또한 따라서 그 다음의 '문화의 주체성확립'과 어떻게 '밀접히 관련지어져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추측해서 이 '인터내셔날'이란 말을 세계주의나 인류주의로서 생각하고, 문화를 정치에서 독립된(혹은 우월한) 가치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되면 '문화인이 관련된 사건'이라고 해서 그 학문이나 작품이 문제되어야 한다는 동사의 사설의 그 전날의 '지적'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한 말인가.

  문화와 예술의 자유의 원칙을 인정한다면, 학문이나 작품의 독립성은 여하한 권력의 심판에도 굴할 수도 없고 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학문이나 작품이 문제'되어야 한다는 지적부터가 자가당착에 빠진 너무나 어수룩한 모독적인 발언이다. 학자나 예술가의 저서나 작품의 내용을 문제삼고 간섭하고 규정하는 국가가 피고에 유리한 경우에만 그들의 저서나 작품의 내용을 문제삼고, 그들에게 불리한 경우에는 그것들을 문제삼지 않았다는 실례를 우리들은 일찍이 어떠한 독재국가의 판례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는 오히려 백이면 백이 번번히 그와는 정반대였던 것이 통례이다.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땜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는다.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한다. 그리고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문화의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방향'의 필자는 '문화를 무시한 경제적 안정이나 정치적 안정'이 나쁘다고 했지만, 나는 논법으로는 오히려 문화를 무시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고료 과세나 화료 과세를 포함한 문화의 무시보다도 더 나쁜 것이 문화의 간섭이고 문화의 탄압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간섭과 위협과 탄압이 바로 독재적인 국가의 본질과 존재 그 자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문화의 문제는 언론의 자유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고 언론의 자유는 국가의 정치의 유무와 직통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이치를 몰각하고 무시하는 버릇이 신문 뿐 아니라, 문화인 자체 안에도 매우 농후하게 만연되어 있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서글픈 일이다.
  지난 연말에 '우리문화의 방향'이 실려진 같은 신문에 게재된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이어령)'라는 시론은 우리 나라의 문화인의 이러한 무지각과 타성을 매우 다끔하게 꼬집어 준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은, 어느 편인가 하면, 창조의 자유가 억압되는 원인을 지나치게 문화인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 같은 감을 주는 것이 불쾌하다. 물론 우리 나라의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으로 근대화해가는 자본주의의 고도한 위협의 복잡하고 거대하고 민첩하고 조용한 파괴작업을 이글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날의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과 무능에서보다도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리고 그 괴수 앞에서는 개개인으로서의 문화인은 커녕 매스미디어의 거대한 집단들도 감히 이것을 대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정이다. 이글에서도 '막중한 정치권력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라고 하면서, '학문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정치권력이 점차 문화의 독자적 기능과 그 차원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더 큰 원인'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면 오늘날의 문화계의 실정이 월간잡지의 기자들의 머리의 세포속까지 검열관의 '금제(禁制)적 감정'이 파고 들어가 있다는 것 쯤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필자는 (에비)라는 말의 비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에비)라는 말은 유아언어에 속한다. 애들이 울 때 어른들은 (에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추는 애들도, (에비)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다. 즉 (에비)란 말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기리키는 명사가 아니다.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의미는 막연한 두려움이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을 총칭한다.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가면을 쓴 공포, 분위기로만 전달되는 그 위협의 금제감정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는 (에비)를 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의 (에비)는 결코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닌'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다. 8.15 직후의 2~3년과 4.19 후의 1년 동안을 회상해 보면 누구나 다 당장에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 필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점이 우리 나라의 문화인들의 실제 이상의 과대한 공포병과 비지성적인 퇴영성을 나무라고 독려하려는데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필자의 말대로 '이러한 반문화성이 대두되고 있는 풍토 속에서 한국의 문화인들이 창조의 그림자를 미래의 벌판을 향해 던지기 위해서,' '그 에비의 가면을 벗기고 복자(伏字) 뒤의 의미'를 아무리 '명백하게 인식해' 보았대야 역시 거기에는 복자의 필요가 있고 벽이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의 복자와 벽을 문화인도 매스미디어도 뒤엎지 못하기 때문에,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이 필자는 끝머리에 가서 '우리는 그 치졸한 유아언어의 (에비)라는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다시 성인들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설이나 시의 '예언의 소리'는 반드시 냉철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 볼 때 필연적으로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은 '유아언어'이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오늘날의 이곳과 같은 '주장'도 '설득'도 용납되지 않는 지대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써 놓기만 하고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생각하며 고무를 받고 있다. 또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의 응모작품 속에 끼어있던 '불온한' 내용의 시도 생각이 난다. 나의 상식으로는 내 작품이나 '불온한' 그 응모작품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머지 않아 올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신문사의 응모에도 응해 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불온한'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이 나의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볼 때는 땅을 덮고 하늘을 덮을 만큼 많다. 그리고 그 안에 대문호(大文豪)와 대시인의 씨앗이 숨어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위기는 아득한 미래의 70년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있다. 이런, 어찌보면 병적인 위기의식이 나로 하여금 또한 뜻하지 않은, 엄청나게 투박한 이 글을 쓰게 했다. 역시 비평은 나에게는 영원히 분에 겨운 남의 글이다.


『 思想界 』 1968년 1월



누가 그 弔鍾을 울리는가?
―오늘의 韓國文化를 위협하는 것


李御寧


  文化의 植物學


  성서의 백합화는 신의 은총과 사랑 속에서 아무런 근심없이 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들판에서 자라는 진짜 백합화는 감미로운 이슬보다는 폭풍이라든가 가뭄이라든가 해충이라든가 하는 자연의 위협을 더 많이 받고 피어난다. 그러므로 백합화의 순결한 꽃잎과 그 향기는 외부로부터 받은 선물이 아니라, 자신이 싸워서 얻은 창조품이라는 데 그것의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어떠한 역사, 어떠한 사회에서도 문예적 창조가 할렐루야의 은총속에서만 피어난 예란 드물다. 중세의 화가들은 아담의 배꼽조차도 그리지 못하게 하는 극성스러운 승려들과 싸우면서 聖畵를 그렸고, 가까운 예로 우리들의 불행했던 선배들은 사전보다도 일본 관헌의 까만 수첩을 더 근심하며 문장의 어휘들을 창조해갔다. 그 당대의 집권자나 대중들에겐 한낱 미치광이나 범법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런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인류문화의 대부분이 창조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기존질서의 순응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창조하는 운명을 선택한 이상 그 시대와 사회가 안락의자와 비단옷을 갖다 주지 않는데서 불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이다. 창조란 말 속에는 이미 필연적으로 외로움이라든가 수난이라든가 싸움이란 말이 내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위기는 단순한 외부로부터 받는 위협과 그 구속력보다는 자체내의 응전력과 창조력의 고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예의 弔鍾은 언제나 문예인 스스로가 울려왔다는 사실에 좀더 주목해 둘 필요가 있다.


  政治權力이 配給하는 創造의 自由


  지금까지 한국문화의 위기의식은 정치적 기상도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한국의 작가들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원고지의 백지를 대할 때마다 총검을 든 검열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껴야 했다. 창조의 자유가 작가의 서랍속에 있지 않고 官의 캐비닛 속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배급받은 자유의 양만으로 창조의 기갈이 채워질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참된 문화의 위협은 구속보다도 자유를 부여받고 누리는 그 순간에 더욱 증대된다는 역설이다.
  실상 자유란 것은 천지 개벽 초하룻날부터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들이 축복해주기 위해서 자신에게 선사하는 “버스데이 케이크”와 같은 것은 더구나 아니다. 때로는 속박이 예술창조에 있어서는 轉毒爲藥의 필요악일 수도 있다. 이솝의 우화는 권력자의 비위를 직접적으로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정치의 이야기를 “늑대”와 “양”의 이야기로 바꿔 썼다. 그러나 그 우화의 형식은 비단 문화검열자의 눈을 속이기 위한 불편한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풍부한 문학적 心傷의 창조가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무한한 자유가 허락되어 직접적 서술로 하나하나의 폭력자를 고발해 왔다면, (적어도 문학에 관한한) 그것은 고전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읽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폭력자가 죽을 때 동시에 그의 고발의 언어도 죽는다. 폭력자의 한 얼굴을 늑대의 얼굴로 상징시켰을 때만이 그 이야기는 동양의 진시황일 수도, 20세기의 히틀러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정권도 문화의 생명력 보다 더 영구할 수 없는 한, 그리고 자유의 결핍을 느끼고 있는 한 이미 닫혀진 구속과 함께 구제의 길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官의 검열자들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문화의 병균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문화의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병균을 알고 있는 한 치유의 방법은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숨어있는 檢閱者


  문화의 위기는 자유 속에 내던져지는 순간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그때 문화인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자각조차 할 수 없는 “숨어있는 또 다른 검열자”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자진해서 죽음의 바다로 뛰어드는 뱃사공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증거로 우리는 어느 진보적인 중견시인 한 분이 해방 직후와 4.19직후를 한국문예의 황금기였다고 고백한 그 미신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思想界』 68.1月號 「知識人의 社會參與」)
  비단 이 시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견은 이 땅의 문화인들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통념이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의 문화인이 그때처럼 비굴하고 추악하고, 또 그토록 무비판적이며 창조적인 기능을 송두리째 거세당했던 적도 별로 없었다. 그것을 문화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울안에 갇힌 창경원의 사자를 쏘아죽인 사람을 용감한 명포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야생의 사자를 쏠 때만이 엽사는 정말 엽사일 수가 있다.
  일본관청이나 경무대의 경찰들이 울안에 갇힌 사자가 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녹슨 언어의 총을 들고 나와 사자사냥에 나섰다. 일본의 식민정책이 끝나고 이승만씨의 독재정치가 끝났을 때 그들의 저항은 시작되었다. 문화인들이 자유당 정권의 비호를 받아가며 晩松 예찬을 했던 것이 참으로 쉽고 편하고 수지맞는 일이었듯이, 대중들의 박수를 받아가면서 무너진 구 정권을 욕하고 좌경적인 발언을 하여 그들의 구미에 맞추는 일, 또한 그렇게 쉽고 편하고 수지맞는 일일 것이다. “미국의 서부활극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승리하려는 찰나에 기병대의 나팔소리가 울리고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서 끝난다”고 어느 외국기자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 문화의 서부활극은 언제나 전투가 끝나버리고 시체만이 널려 있는 폐허의 전쟁터에 용감히 나팔을 불고 나타나는 그런 기병대였다. 이러한 문예의 사회참여론자들은 기병대라기보다도 까마귀떼와 매우 흡사한 점이 많다. 적어도 창조의 언어와 참여의 언어는 시체에 던지는 돌은 아니다. 해방직후와 4.19직후는 이 땅의 작가들이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리던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예의 황금기라는 동의어로 쓰일 수 있었는가! 그들이 이양받은 그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다. “용감한 동물원의 사냥꾼”들은 맹목적인 대중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번엔 숨어 있는 “대중의 검열자”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일제의 관헌이 탄압을 하고 경무대 경찰이 큰 기침을 하던, 말하자면 창조적 자유의 喪服期에서도, 후기의 문학사가들은 아마 몇 개의 고전적 작품들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무한대였다는 해방직후와 4.19 직후의 두 시기에선 아이러니컬하게도 몇 개의 격문과 몇 장의 비라같은 어휘밖에는 추려낼 것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官의 검열자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의 검열자가 몇배나 더 문화인의 주체성과 그 창조적 상상력을 구속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탓이다. 대중의 검열자 앞에서는 구속감이나 그 위기의식마저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탓이다. 맹목화한 대중들은 때로 도둑과 예수를 같은 언덕의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돌질을 할 수도 있는 과오를 범한다. 맹목의 대중들이 손가락질하는 것과 반대쪽의 언어를 선택할 만한 용기와 성실성을 가지고 있을 때, 문화는 비로소 역사의 앞바퀴 노릇을 할 수 있는데 그 때의 참여론자들은 그 뒤를 따라 다니는 뒷바퀴 노릇만 했다.


  長子의 권리를 판 “에서”의 悲劇


  해방직후와 4.19직후의 문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한국의 문화는 官보다도 대중의 검열자에게 더 약했다는 증거였으며, 갑작스러운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도리어 문화를 정치활동의 예속물로 팔아넘겼다는 증거였다. 후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미약하나마 官權과 투쟁해온 전통은 깊어도 자유를 행사할 줄 아는 경험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해방직후의 혼란중에 월북한 작가 가운데는 평소의 글이나 그 기질로 보아 마르크시스트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의외의 인물들이 많이 끼여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4.19직후엔 진보나 혁신의 정치적 구호를 간판처럼 내밀고 다닌 작가나 비평가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時流에 맞는 일이고 부여받은 그 아까운 자유를 향락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결국 문화는 他殺되는 경우보다도, 해방직후나 4.19직후처럼 自殺하는 경우에 더 심각한 위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문화인들이 그 자유의 벌판에 꽂은 깃발은 문화창조가 아니라 정치의 깃발이었다.
  그 당시의 모든 작가나 시인들은 작든 크든 비종교적 속세주의에 몰입하여 문화를 자진해서 정치의 예속물로 장사지냈다. 얻은 것은 자유였지만 잃은 것은 순수한 詩요, 소설이요, 예술이었다. 정치적 자유를 참된 문화적인 창조로 전환시킬 줄 모른다는데 다름아닌 한국문화의 약점과 그 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자유의 영역이 확보될수록 한국문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化하여 쇠멸해가는 이상한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韓國文學史에선 정치적 자유가 가장 결핍되었던 1930년대에 도리어 가장 본질적인 문학적 유산을 남긴 슬픈 아이러니가 생겨나고 있다. 사회나 현실에의 통로가 막혔을 때, 타의적일망정 순수한 문학적인 내면의 창조력과 만나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무엇을 암시하는가를 작가들은 좀더 겸허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한국의 시조문학 가운데 정치와 관련이 없었던 기생들에게서(黃眞伊) 도리어 가장 높은 향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상통하는 현상이다.
  문화를 정치수단의 일부로 생각하고 문학적 가치를 곧 정치사회적인 이데올로기로 평가하는 오늘의 誤導된 사회참여론자들이야말로 스스로 예술 본래의 창조적 생명에 弔鍾을 울리는 사람들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팥죽 한 그릇이 아쉬워 長子의 기업을 야곱에게 팔아버린 “에서”와 같이 지금 우리는 일시적인 사회의 효용성을 추구하려다가, 영원한 문예의 상속권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팔아 넘기는 어리석음을 경계하여야 된다. 문화를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문화인 자신의 문예관이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 받고 있는 그 문화의 위협보다도 몇 배나 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朝鮮日報』, 68. 2.20>



實驗的인 文學과 政治的 自由
―文藝時評, 「오늘의 韓國文化를 위협하는 것」을 읽고


金洙暎


  지난 20일字의 本紙(『조선일보』, 68.2.20. 편자주)의 「文藝時評」난에 게재된 李御寧씨의 「오늘의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을 읽고, 그가 근래에 주장하는 기성질서의 테두리 안에서의 「순수한 문학적인 내면의 창조력」이 어떠한 것인지 새삼스레 의아심을 자아내게 하는, 문학과 자유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우선 그에 대한 주요한 몇 가지점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가 지난 연말에 역시 本紙의 「文化時論」난의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 이래로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를 참된 문화적인 창조로 전환시킬 줄 모르는”“한국문화의 약점과 그 위기”에 대한 힐난은 그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의 무능과 무력을 진심으로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선 현대에 있어서의 문학의 前衛性과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얼마나 밀착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것인가 하는 좀더 이해 있는 전제나 규정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모든 진정한 새로운 문학은 그것이 내향적인 것이 될 때는 ―즉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우에는―기존의 문화형식에 대한 위협이 되고, 외향적인 것이 될 때에는 기성사회의 질서에 대한 불가피한 위협이 된다는,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철칙을 소홀히 하고 있거나 혹은 일방으로 적용하러 들고 있다.
  얼마전에 내한한 프랑스의 앙띠 로망의 작가인 뷔또르도 말했듯이 모든 실험적인 문학은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에서 필자는, 문학의 형식면에서만은 실험적인 것은 좋지만 정치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평가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후자의 경우의 예로 해방직후와 4.19직후를 들면서, 정치적 자유의 폭이 비교적 넓었던 이 시기의 문화현상을 “자유의 영역이 확보될수록 韓國文藝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화하여 衰滅해가는 이상한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무모한 일방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지극히 위험한 피상적인 판단이다.
  8.15후도, 4.19직후도 실정은 복잡한 것이었다. 「文藝時評」者의 말마따나 그 당시의 문학이 정치비리의 남발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해서, 그 책임이 그 당시의 정치적 자유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일부의 “文化를 政治社會의 이데올로기와 同一視하는 문화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하고 그 弊害를 과대하게 망상하는 것은 지극히 소아병적인 단견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하물며 이러한 폐해를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 받고 있는……문화의 위협보다도 몇 배나 더 위험한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독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현대에 있어서의 정치적 자유를 문화를 오도하는 일부의 사회참여론들의 폐단과 동일한 비중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그가 말하는 誤導된 참여론자들은 8.15와 4.19직후의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일시적인, 교정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일단 상실된 정치적 자유는 그렇게 쉽사리 회복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오도된 사회참여론자”의 주장이 정치적 자유를 실제에 있어서 구속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자유의 신장의 주장이 「文藝時評」者가 아쉬워하는 “응전력과 창조력의 고갈”을 탈피하는 길과 어디에서 어떻게 모순되는 것인지 지극히 석연치 않다.
  선진국의 자유사회의 문학풍토의 예를 보더라도 무서운 것은 문화를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의 문화의 위협의 所在도 다름아닌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치스가 뭉크의 회화까지도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그 前衛性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하나의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文藝時評」者가 역설하는 응전력과 창조력―나는 이것을 문학과 예술의 전위성 내지 실험성이라고 부르고 싶다―은 제대로 정당한 순환작용을 갖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두려워해야 할 “숨어있는 검열자”는 그가 말하는 「大衆의 檢閱者」라기보다도 획일주의가 강요하는 대제도의 유형무형의 문화기관의 “에이전트”들의 검열인 것이다.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대행하는 것이 이들이고, 이들의 검열제도가 바로 “대중의 검열자”를 자극하는 거대한 테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검열자”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자각조차 할 수 없는 숨어있는” 검열자라고 「文藝時評」자는 말하고 있지만, 대제도의 검열관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각조차 할 수 없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들의 대명사가 바로 질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획일주의의 검열의 범죄와 “대중의 검열자”의 범죄의 비중을 가리자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두 개의 범죄를 동시에 공존시킴으로써 여기에서 취해지는 밸런스를 현대문학의 창조적 출발점으로 인정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공존을 모색하는 길이 우리의 오늘날의 참여문학의 발전의 실질적인 긴요한 계기가 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文藝時評」자의 판단은 지나치게 과거의 사례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두 개의 범죄를 다같이 인정하는 듯한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사실은 한쪽의 범죄만을 두둔하는 “弔鍾”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의 조종의 종지기는 유령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학에서는 “大衆의 檢閱者”가 종을 칠 만한 힘이 없다. 그런 종지기를 떠받들어 놓고 누구를 장송하는 종을 쳤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 있는 질서이니까.
  “질서는 위대한 예술이다”―이것은 정치권력의 施政口號로서는 알맞지만 문학백년의 대계를 세워야할 前衛的인 평론가가 내세울 만한 기발한 示唆는 못된다.



<『朝鮮日報』,68. 2. 27>


文學은 勸力이나 政治理念의 侍女가 아니다
―「오늘의 韓國文化를 위협하는 것」의 解明


李御寧


  本紙 2월 27('68)일자에 게재된 金洙暎씨의 「實驗的인 文學과 政治的 自由」는 나의 文藝時評에 대한 하나의 反論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글을 反論이라기 보다도, 내 文藝時評의 立論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有力한 證據資料로 보고 있다. “한국의 문학예술을 위협하는 것은 정치권력자뿐 아니라, 도리어 문학인 자신일 수도 있다”는 나의 주장이 결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그는 입증해 주었다.

  문학작품을 문학작품으로 읽으려 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문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현상이다. 관의 문화검열자들은 관조적인 태도로 문학작품을 감상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정치적 입장과 그 목적 밑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그 의도를 캐내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좋은 작품이란 그들의 정치권력에 도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가치가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있다.
  문학적 차원을 이렇게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데서 작품의 본래적 의미를 저버리는 誤讀現象이 생겨난다. 그 결과로 정치권력이 때때로 문학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구속하게 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꼭같은 현상이 문학계의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그 위험성엔 별로 조심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문학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저울질하고 있는 오늘의 “誤解된 社會參與論者”들이 그런 것이다. 문학작품을 문학작품 자체로 감상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관의 문화검열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최근 1, 2년 동안 金洙暎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문학비평가들은 참여라는 이름 밑에 문학 자체의 그 창조적 의미를 제거해 버렸다. 그 대신 문학의 그 빈자리에 진보적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라는 “푸로크라테스의 寢臺”를 들어 앉히려 했던 것이다.

  “모든 前衛文學은 不穩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文化는 本質的으로 불온한 것이다”라고 표현한 김수영씨의 용어법 하나만을 분석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관의 검열자”와 닮은 데가 많은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김수영씨는 정치권력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과 동일한 도마위에서 문학을 칼질하고 있는 사람이다.
  불온하니까 그 작품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불온하니까 그 작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만 그 주장과 판단이 다를 뿐 문학작품을 문학작품으로 읽지 않으려는 태도에 있어선 서로 일치한다. 실상 이런 논평으로 따져가면 가장 우수한 문학비평가는 가장 유능한 정부의 기관원이라는 이상한 모순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작품의 불온성 유무를 누구보다도 잘 민감하게 식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관의 그 검열원”들이기 때문이다.
  不穩性을 작품의 가치기준으로 삼고 있는 金洙暎씨 같은 詩人에게는, 문학비평가의 월평보다 기관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명을 훔쳐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한 일일 것이다.
  불온한 작품에도 좋은 작품이 있고 나쁜 작품이 있다. 온건한 작품에도 또한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문학의 가치는 정치적 불온성 유무의 상대성 원리로 재판할 수 없는 다른 일면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셰익스피어와 엘리오트는 한국의 정치적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읽힐 수 있는 문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 불가능한 다른 不穩詩 보다 그것이 實驗性이나 前衛性이 없다고 평가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적 자유가 없어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가 있어도 명작이 생겨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좀더 냉철히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다. 오늘날 일본 관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해서 식민지 치하의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이 곧 명작이 되어 나타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문학인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와지려는 갈망은 실질적으로 동전의 안팎과도 같은 관계이다.
  “왜 하필 당신은 하고 많은 꽃 가운데 불온해 보이는 “붉은꽃”을 그렸읍니까?”라고 어느 무지한 관헌이 질문을 할 때 예술가는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거꾸로 어느 진보적인 비평가가 “당신이 그린 붉은 꽃은 불온해 보여서 전위성이 있읍니다”라고 칭찬을 한다면 그 예술가는 또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들은 이미 꽃을 꽃으로 바라볼 것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에 씌운 이데올로기라는 그림자의 편견이다. 하나의 꽃을 꽃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보수라고도 생각지 않으며 진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문화의 창조적 자유와 진정한 전위성은 역사의 진보성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생과 역사 그것을 보수와 진보의 두 토막으로 칼질해 놓는 고정관념과 도식화된 이데올로기의 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사람만이 또한 정치 사회에 대하여 참된 참여를 할 수 있는 작가의 자격이 있다.  

  김수영씨의 그 글은 “진보”가 곧 “불온”이고, “불온”은 곧 “전위적”이고, “전위적”인 것은 곧 훌륭한 “예술”이라는 산술적인 이데올로기의 편견에 가득차 있다. 이러한 편견은 그 자신이 스스로 말했듯이 예술가에게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증거로 김수영씨의 추종자이기도 한 60년대의 젊은 비평가들이 “오로지 문학은 진보 편에 서야 한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모든 문학작품에 강요하고 있는 현상이다.
  오늘의 한국 위정자들은 다행히도 뚜렷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만 하라”고 예술가에게 강요하지 않고 있다. 퇴폐적이든, 외설이든, 달을 그리든, 별을 그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것만 하라”가 아니라 “이것만 하지 말라”이다. 즉 정권유지에 직접적인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외의 것은 콩이든 팥이든 도리어 관심이 없는 소극적 검열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유식한 60년대의 비평가와 金洙暎씨는 “이것만 하지 말라”는 강요가 아니라 오직 “이것만 하라” “이것만이 문학의 길이다”라고 강요하려 든다.
  오늘날 “뭉크”의 그림을 퇴폐적이라 해서 그 가치를 말살하려 드는 것은 위정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내면적인 고민을 그린 작품까지도 프티 부르조아의 사치스러운 퇴폐요, 역사의 방향을 흐리게 하는 “보수반동”이라고 올가미를 씌운다. 이것이 바로 金洙暎씨가 우려하는 “하나만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풍조이다. 그런 편견을 가지고 문학작품을 보니까 “기성질서에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 時評을 그는 “기성질서는 위대한 예술이다”는 말로 고쳐놓고, “문학을 정치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문학은 정치이데올로기를 평가하지 말라”는 엉뚱한 뜻으로 왜곡 해석하여 비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을 자기 편견의 색안경으로 오독해 버리는 위험성은 이렇게 官에도 있고 문학계 자체내에도 있다.
  결국 김수영씨와 같은 그런 思人方式과 그런 글이 문학 스스로의 손으로 문화의 弔鍾을 울리고 있다는 내 「文藝時評」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이 오늘날 그런 이데올로기의 노예나 다름없는 문인들에 의해서 왜곡 평가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가? 자기 이데올로기의 자[尺]에 맞으면 삐라같은 글도 명작이라고 추어 세우고, 그 경향에서 조금이라도 일탈되면 어떤 작품이라도 반동의 낙인을 찍고 있다. 나치 치하에서 학대받은 과거의 예는 곧잘 들면서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무수한 詩人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목전의 현실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지성이다. “대중의 검열자”가 행여 그들을 어용시인이라고 부를까 두려운 잠재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관에도 독자에게도 다같이 약하기만 한 문화인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작가는 작가로서의 순수한 입장에서 참여를 할 때만이 강하다.  

  지금까지 문학의 순수성이 정치로부터 도망치는데 이용되었다 해서 순수성 그 자체를 부정해선 안된다. 오늘의 과제와 우리의 사명은 문학의 순수성을 파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수성을 여하히 이 역사에 참여시키는가에 있다. 정치화되고 공리화된 사회에서 꽃을 꽃으로 볼 줄 아는 유일한, 그리고 최종의 증인들이 바로 그 예술가이다. 그 순수성이 있으니 비로소 그 왜곡된 역사를 향한 발언과 참여의 길이 값이 있는 것이다. 또한 강력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학인으로서 참여하기 보다 하나의 정치가나 경제가 그리고 사회과학자가 되어 역사와 사회의 제도를 뜯어 고치는 편이 훨씬 더 능률적일 것이다. “제도적 활동”과 “창조적 활동”을 혼동 못하는 문인이 많을수록 그 문화의 위협, 역시 증대된다. 이러한 내 주장에 이의가 있다면 그것을 김수영씨는 좀더 논리와 문맥에 맞는 글로 답변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朝鮮日報,』,68.3.10>



不穩性에 대한 非科學的인 억측


김수영


  지난 2월 27일자의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라는 졸론(拙論)에서, 본인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서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을 밝혀두었는 데도 불구하고, 이어령 씨는 불온성을 정치적 불온성으로만 고의적으로 좁혀 규정하면서 본인의 지론을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전체주의의 동조자 정도의 것으로 몰아 버리고 있다.

  전위적인 문화가 불온하다고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재즈음악, 비트족, 그리고 60년대의 무수한 안티 예술들이다. 우리들은 재즈음악이 소련에 도입된 초기에 얼마나 불온시당했던가를 알고 있고, 추상미술에 대한 후루시초프의 유명한 발언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한 암스트롱이나 베니 굿맨을 비롯한 전위적인 재즈맨들이 모던재즈의 초창기에 자유국가라는 미국에서 얼마나 이단자 취급을 받고 구박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즈의 전위적 불온성이 새로운 음악의 꿈의 추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예는 재즈에만 한한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베토밴이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세잔이 그랬고, 고흐가 그랬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이젠하워가 해석하는 사르트르가 그랬고 , 에디슨이 그랬다.

  이러한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에 바로 이 불온의 수난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문화의 이치를 이어령 씨 같은 평론가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오해를 고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의 글에 답변을 하려고 붓을 든 주요한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신변방어에 있지 않다. 그의 중상 속에는 나의 개인적인 것이 아닌, 어떤 섹트적인 위험한 의도까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고, 그러한, 실제로 있지도 않은 위험세력의 설정이 일반독자에게 주는 영향은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다.

  그는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이념의 시녀가 아니다>의 서두부터 <문학작품을 문학작품으로 읽으려 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문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형편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런 비난은 누구의 어떤 발언이나 작품이나 태도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중대한 말을 실제적인 예시도 없이 마구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는 내가 말한 나의 발표할 수 없는 시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발표할 수 없다고 한 나의 작품은 나로서는 조금도 불온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것은, 불온하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지 때문에 발표를 꺼리고 있는 것이지, 나의 문학적 이성으로는 추호도 불온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어령씨는, 내가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어서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불온하다>고 낙인을 찍으려면, 우선 그 작품을 보고 나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의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을 보지도 않고 <불온하다>로 비약을 해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법은 문학자의 논법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기관원(機關員)>의 논법이다. 아니, 요즘에는 기관원도 똑똑한 기관원은 이런 비과학적인 억측은 하지 않는다.

  이어령 씨의 이번의 나에 대한 반론은 거의 전부가 이런 식의 모함으로 충만되어 있고 이것을 일일이 가려낼 만한 의미를 나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의 창작의 자유의 고발의 실제적인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설명해 두고자 한다. 비근한 예가, 지금 말한 이어령 씨의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의 소위 <불온시>다.

  지금 말한 것처럼 이어령 씨는 내가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온한> 작품이라고 규정을 내리고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발표를 하면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서 발표는 못하고 있지만, 결코 불온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자유의 고발의 한계는, 이런 불온하지도 않은 작품을 불온하다고 오해를 받을까 보아 무서워서 발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어령 씨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작가나 시인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아니 이들에게만 -----이들의 역량이 부족해서-----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해세력이 우선 대제도의 에이전트들의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지적했다.

  그런데 이어령 씨는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을 기관원도 단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불온하다>고 단정을 내림으로써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불온하지 않게 통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자는 나의 설명을 거꾸로 되잡아서,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바로 <불온한 작품>이니 그런 문화풍토가 조성되면 문학이 말살된다고, 기관원이 무색할 정도의 망상을 하고 있다. 이런 망상은 문학이론으로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朝鮮日報』1968. 3>


  不穩性 여부로 文學을 評價할 수는 없다


李御寧


  金洙暎씨는 자신이 말한 不穩性이 재즈음악, 비트족, 그리고 60년대의 무수한 안티예술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정치적인 不穩性만으로 고의적으로 좁혀 규정했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고의였는지 필연이었는지를 밝히려면 음성을 한 옥타브씩 내리고 그 말이 쓰인 전후상황의 현장검증을 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학의 前衛性을 不穩性으로 限定한 말은 씨 자신이 나의 文藝時評을 반발하기 위해 쓴 화살촉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재즈나 비트족의 前衛性을 염두에 두고 한 소리라고 주장하려면 씨는 나의 시평을 공박한 사람이 아니라 내 의견에 찬성한 동조자였다고 근본적으로 그 입장을 바꿔야만 한다. 왜냐하면 2월20일자 그 시평에서 나는 “當代의 權力者나 大衆들에겐 한낱 미치광이나 犯法者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런 人間들의 손에 의해서 人類文化의 대부분이 創造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곧 이어 “旣存秩序의 순응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문화의 본질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씨가 不穩性을 광의로 말했다면 문화의 본질을 보는 눈이 나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음을 이제와서 고백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씨의 반론이 성립되려면 그가 사용한 “不穩性”이 좁은 뜻으로 한정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그 시평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정치적 자유와 문화 검열의 문제였으며 그 결론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문학관의 위험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논지에 대한 반론일 경우, 상식적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그 不穩性은 정치적인 협의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金洙暎씨가 쓴 2월 27일 자의 반론 서두에서도 역시 씨는 “현대에 있어서 문학의 전위성과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얼마나 유기적인 관련”이 있는가를 분명히 대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만약 베토벤이나 에디슨 같은 불온성이었다면 “현대에 있어서”란 한정을 굳이 붙일 필요가 어디 있었으며 “예술의 전위성”을 상상력이나 영감보다 정치적 자유와 직결시킨 의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씨는 정치적 자유와 문학의 전위성을 연결시키려 했기에 그 전위성을 진보성으로 그리고 다시 그 진보성을 불온성으로 점점 좁혀들어 가야만 했던 것이다.(2월 27일자 金洙暎씨의 詩評 14行~40行 參照)
  이렇게 한정된 문맥 위에 불온성이라는 말을 올려 놓고서도 정치적인 좁은 의미로 쓴 것이 아니라 말한다면,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넓은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로 보아야 한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렇게 씨의 “不穩性”이 좁은 의미로 해석되는 까닭은 씨가 주장하는 것같은“고의적” 편견이 아니라 바로 “문맥적” 필연성 때문이다. 왜냐하면 재즈와 비트의 그런 전위성의 불온이라면 문화검열이 운운되는 정치적 자유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정치적 자유는 구체적인 한국의 정치현상을 두고 한 소리며, 그것에 의해서 제약받는 전위성, 즉 그 불온성이었던 것은 뻔한 일이다. 말이란 자기가 했다 해도 자기멋대로 광의로 늘렸다, 협의로 줄였다하는 편리한 고무줄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문장의 문맥이나 상황적 의미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한정되게 마련이다. 특히 대화인 論爭文에선 더욱 그렇다. 씨는 문화가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을 추구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재즈나 비트족을 포함한 광의의 예술적 불온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말을 일러 “…그런데 필자(李御寧)의 논지는 문학의 형식면에서만은 실험적인 것이 좋지만 정치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평가는 안된다는 것이다”라고 나의 時評을 요약 비판했다. 결국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꿈과 불가능의 추구란 것도, 문학의 형식적인 실험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추구에 말뚝을 박아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아규먼트의 방법으로 봐서 그가 내세운 前衛性,(不穩性)은 A(재즈와 비트로 상징되는 예술적 실험의 불온성)가 아니라 B(정치사회 이데올로기로 평가되는 불온성)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결론이 나온다. 더구나 불온성을 어떻게 보든 3월 10일자에 발표된 내 졸문과는 별관계가 없다. 그 글은 정치적 불온성을 규명하려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학을 언제나 정치의 상대적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비주체적 발상법에의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시된 이유는 김수영씨가 내 글을 정반대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재반론한 김수영씨 글을 읽어보면 마치 내가 자기를 불온시인으로 몬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즉 자기의 시를 불온하다고 해서 규탄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온성 유무로 문학을 평가하지 말라고 주장한 글을 보고 어째서 거꾸로 정치적 불온성으로 자신을 규탄했다고 왜곡할 수 있는가?
  김수영씨의 문학이 정치적으로 불온하니까 규탄을 받아야 한다는 대목은 돋보기를 쓰고 봐도 없을 것이다. 김수영씨는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시가 있다고 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문학적 차원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불온성 유무의 색안경으로 따지러든다.

  나의 시평은 그러한 비문화적 분위기를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그러한 비문화적 분위기가 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인 안에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었다. 공리적인 문학관을 가진 문학인들, 그리고 정치이념의 도구로 문학을 이용하려는 오해된 사회참여론자, 어용문인 등이 모두 그러한 문화인들이다.
  그런데도 문학논쟁을 하다가, 난데없이 기관원 운운하는 사람과 더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는가? 김수영씨의 健筆을 빌 따름이다.


                                           <『朝鮮日報』, 68. 3. 26>



서랍속에 든 「불온시(不穩詩)」를 분석한다.
                        -김수영의「지식인의 사회참여」를 읽고-


                                           [이어령]
                                           문학평론가/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국문학과 석좌교수


  1. 문제의 발단


  나는 지금 한 편의 시를 놓고 비평을 해야 할 입장에 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그 명시들이 아직 시인의 서랍속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내용들이 매우 '불온한 것'들이란 점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지하의 이 보석들을 우리에게 귀뜸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시인 김수영 씨였다. 그는 사상계 1월호의 문화시평「지식인의 사회참여」에서 다음과 같은 고무적인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써 놓기만 하고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생각하며 고무를 받고 있다. 또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의 응모작품 속에 끼어있던 '불온한' 내용의 시도 생각이 난다. 나의 상식으로는 내 작품이나 '불온한' 그 응모작품이 아무 거리낌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머지 않아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는 '불온한 작품(시)들이 지금 땅을 덮고 하늘을 덮을 만큼 많으며, 그 안에 대문호(大文豪)와 대시인의 씨앗이 숨어 있다.' 는 데서 그 글의 종지부를 찍고 있다.

  김수영씨의 의견을 따른다면 오늘의 빛나는 그 한국시사(詩史)는 시인들의 서랍속에 갇쳐있고 미래의 그 희망 역시 활자화되지 않은 어느 퇴색한 원고지 위에서 동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고 보면 비평가들의 관심과 그 발언 역시, 발표된 시작(詩作)보다는, 자연이 서랍속에서 망명중인 그 시인들의 풍토에 더많은 악센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런 경우 우리가 김수영론을 쓴다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고무적인 시 한편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그의 서랍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시는, 비평가도 독자도 모르는 지하도시에 있다. 우리가 발표가능한 김수영 씨의 시만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다의 표면에 나타난 빙산의 일각만을 지적하는 경우가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만한 빙산이 실은 산덩이 보다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의 말마따나 서랍속에 든 그 불온한 시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고, 그런 현대사회에서만이 비평가나 문학사가(文學史家)는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영광된 사회와 불온시의 관계


  그러나 내가 지금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영영 햇볕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김수영 씨의 그 '서랍속의 시'가 아니다. 그 고무적인 명시보다도 몇 배나 더 알고 싶은 것은, 그리고 김수영 씨에게 더 묻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야 그 불온시들이 발표될 수 있는 현대사회가 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씨는 '그런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머지 않아 올 거'라고, 뜨거운 말투로 예언하고 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봄이 오듯이, 그리고 생일날이 돌아오듯이 혹은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처럼 '영광된 사회'는 저절로 우리 곁에 강림하는 것일까?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자는 것이며, 역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만들어 가려는데 있다. 그런데 김수영 씨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그 영광된 사회는 타인의 프레센트처럼 시인에게 갖다주는 것으로 그려져있다. 그것이 김수영 씨를 비롯하여 최근 젊은 비평가들이 내세우고 있는 참여문학의 현주소이다.

  만약에 불온한 시를 써서 책상서랍에 넣어두는 것이 시인의 사회참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골방속의 참여이며 베개위와 잉크병 속에서의 반란이다. 참여하지 않은 것이나 타의에 의해 못한 것이나 똑같은 일이다. 독심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가 참여를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분간할 길이 없다. 경우에 따라선 안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더욱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본질은 사회참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참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만약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러한 문학론이다. 그러나 문학을 참여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조금도 역사에 참여한 일이 없다면, 그는 남과 자기를 동시에 속이는 거짓말쟁이다. 특히 참여파의 비평가들은 자기는 뒷전에서 팔장을 끼고 시인이나 작가를 향해서만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고 있다.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해놓고 자기는 뒷전에서 꼬리를 감춘 이솝우화의 그 불쌍한 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비법자(卑法者)들이다.

  김수영 씨라고 핑계없는 무덤이 없으란 법은 업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변명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으로 근대화해가는 자본주의의 고도한 위협의 복잡하고 거대하고 민첩하고 조용한 파괴작업'이며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에비문화를 썼던 내 글에 대한 씨의 반론이 되는 골자이기도 하다.

  김수영 씨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란 글의 전반부에선 한국의 문화인들이 본질적인 말을 못하고 외곽에서 맴도는 시평태도를 마땅치 않게 그리고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글에서 내 글을 비판할 때는 '문화의 침묵'이 문화인 자신의 책임보다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와 위정자들에게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씨 자신은 일간신문의 문화논설을 비판했던가? 김수영 씨의 논법대로 하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와 정치탓이라고 했어야 마땅하다.

  결국 그 글에서 김수영 씨가 기대하고 있는 참여는 평화의 들판에서 꽃가지를 꺽자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위협이 복잡하고 거대하고 민첩하니까 비로소 문화인의 참여가 의미있는 것이며 비로소 강조되는 것이 아닐까? 우산은 비올 때 받으라고 있는 것이다. 탄압의 힘이 거대하고 민첩해서 옴짝달싹 못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한 옆에서는 그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하기야 외부의 선물처럼 늘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그것을 믿어 보자는 속셈인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무엇을 하자고 참여론을 내세우는지 궁금하다. 참여론자는 '영광된 사회'가 와서 서랍속에 보류된 자신의 불온한 시를 해방시켜줄 것을 원하고 있는, 예술이 아니라 거꾸로 그 불온한 시가 영광된 사회를 이루도록 행사시키는 데서 그 의미를 발견하는 일종의 전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된 사회가 왔을때는 이미 그러한 불온시는 발표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발표가 허락될 순간, 이미 발표할만한 가치를 상실해 버리는 것이 바로 '참여의 운명'이기도 하다. 참여의 시가 '시공을 초월한 영원성'을 부정하는 것도 바로 그 점에 있다.

  '땅을 덮고 하늘을 덮을 만큼' 많다는 그 지하의 시인들이 개선나팔을 불고 시의 대지에 군림할 수 있는 날, 그들은 과연 그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해방직후나 4.19 직후의 경우처럼 쓰러진 독재자의 동상이나 끌고다니던 그런 참여론자라면 몰라도 진정한 참여시인들은, 다시 외로움속에서 또다른 '불온시'를 마련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역사와 사회이든지 완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상서랍안에서만 불온시를 쓸 수 있는 참여시인들은 바로 해방이 되어야 일제를 규탄하는 참여시를 쓰고, 이승만씨의 독재가 쓸어지고 난 다음에야, 독재자의 빈 의자에 돌을 던지는 자들이다. 참여시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역사의 전리품을 가로 채가는 '동물원의 사냥꾼'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참여론자는 역사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의 입장에 서는 사람이다. 내가 신문에 「누가 그 조종을 울리는가」의 시평을 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3. 시의 가치관


  두 번째의 궁금증은 불온시가 과연 좋은 시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정부의 문화 검열자들만이 불온시를 경계한다고 생각해선 큰 잘못이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불온시를 경계하는 측면과 문화적 목적 때문에 그런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또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먼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탄압을 받고 있는 똑같은 피해자라 해도 불온시에 덮어놓고 월계관을 씌워줄 수는 없다. 정치적인 입장보다도 우리는 문화적 입장에서 더욱 그러한 불온시를 경계해야 될 경우가 많다. 이미 C지의 시평란에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시는 정치에 의해서 타살되는 것 못지 않게 시인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자살을 당하는 위기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는 벌써 우리의 시단(詩壇)과 평단(評壇)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경향이다.

  '불온시=명시'라는 도식적인 비평기준이 최근 1-2년 동안 한국평단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찬탈자들은 으레 사회참여의 군기를 앞세우고 있다. 신문지상에 발표된 시 월평란 중에는 그것이 사회의 가난을, 정치적 폭력을 그리고 민족주체성의 상실을 정면에서 고발했기 때문에 훌륭한 시라는 논법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반면에 그 시는 심미적이고 전원적이고 역사와 관계없는 것을 노래불렀기 때문에 단순한 언어의 희롱이며 이를테면 현실에 초월한 시라고 붉은 줄을 치고 있다. 이와 같이 참여론자의 횡포야말로 관의 검열자보다도 훨씬 시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경향이다.

  필요한 시가 곧 좋은 시는 아니다. 정부의 실정과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한 야당의원들의 발언은 적어도 김수영 씨나 사회참여파 시인들의 시보다는 훨씬 더 '불온하고' 정치권력의 독재를 막는데 '필요'한 언어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국회의 속기록을 시집이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부정과 부패를 향한 항거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리고 어용시인들이 팔뚝을 걷어부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선 용기있고 양심있는, 그 참여의 목소리가 그지없이 반갑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황이 생활의 운명처럼 되어버린 그러한 시대에서는 시의 천재적 재능보다도 우직한 용기가 더 절실히 요청된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시가 동원되고 있다는 면에선 어용시나 참여시는 핏줄이 같은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다같이 시를 시로서 보려하지 않고 정치사회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

  시의 가치가 사회개량의 효과면에서만 논의될 수는 없다.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건설'하는 것을 오해하고 있다고 김수영 씨는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무식한 위정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식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적인 시인과 비평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시를 마치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써먹는 것'이고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모대의 플랭카드에 씌어진 구호나 격문처럼 목적이 달성되면 시의 기능도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의 언어를 사회와 역사를 뜯어 고치고 개혁하는 무슨 망치나 무슨 불도우저나 무슨 다이너마이트 같은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좀더 어려운 말로 고쳐 말하자면 일부 참여파 시인들은 시적 진술을 산문의 진술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김수영 씨가 동경하고 있는 그 불온시들이 대체로 어떠한 성질과 어떠한 형식으로 쓰여진 시인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히려 지상에 발표된 상징적인 난해시보다는 서랍속에 숨겨진 불온시의 뜻을 추측하는 편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오늘의 이 상황속에서 직접 발표하기를 꺼리는 시라면, 즉 검열자의 눈치를 정면에서 살펴봐야만 하는 시라면 첫째, 그것은 산문적인 형식으로 쓰여진 시라는 것과 둘째, 시사성을 띠는 것이라는 것과 셋째, 오늘의 빤하기 짝이 없는 그 문화검열자의 마음을 뒤집어 놓은 내용이라는 점이다. 즉 정치사회 시평과 가장 유사한 서술방법을 택한 시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시의 어휘들은 신문사설이나, 학생들의 웅변대회 원고에 사용된 그런 언어처럼 음영이 없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일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은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이미 그 언어의 지형들은 우리 눈앞에 있다. 서랍속의 불온시를 알려면 오늘날의 정치사회의 현실이라는 그 지형을 들여다보면 된다. 단 지형의 글자는 도장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새겨진 문자이므로, 불온시를 알려면 그 글자를 뒤집어서 보면 된다. 그들의 시는 독자적인 자기문법 밑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황과 대면해 있기 때문에, 시의 지형 역시 정치와 사회문제의 그 외부에 보관되어 있다.

  정치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이 소설이라면 또 문제가 다르다. 그러나 시는 사회의 상황을 비추는 거울로서는 만족될 수 없는 예술이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시의 언어는 기록적인 것을 피한다. 근본적으로 메타포리컬한 것이며 그 의미 역시 복합성을 띄운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나 회화에 보다 더 가깝다.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개재하기 어려운 것이 시의 언어이며, 그 본질적애(愛)인 미학이 지니고 있는 특성인 것이다.

  한용운씨는 기미독립선언서를 쓰듯 시를 쓰지 않았다. 조국은 하나의 애인이며 상실된 조국은 이별이다. 그가 뜻하는 님은 여인이며 동시에 조국이며 조국이 동시에 생명인 그러한 '님'이다. 한용운의 '님'은 산문적 차원에서 부르는 플래트한 '님'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일본의 관헌들은 기미독립선언문의 언어를 체포할 수는 있지만, 한용운의 '님'은 감옥에 집어넣기 어려운 것이다. 시인들이 일부러 관헌들의 눈을 피할 목적으로 그런 복자(伏字)를 썼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그 증거로 만약, 한용운의 '님'을 조국이라는 직설적 표현으로 바꿔버린다면 시가 아니라 독립선언문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 말은 시의 언어보다 독립선언문의 언어들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가 아무리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시는 시의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와 사회개조를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목적이라면 시인이기를 거부해야 되고, 시의 예술성을 부정해야 된다. 그것은 각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시를 독립선언문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시의 가치관과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이다. 꾀꼬리나 금붕어도 급하면 잡아먹을 수 있다. 그러나 꾀꼬리의 가치는 우는 목소리에 있고 금붕어의 가치는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그 색깔에 있다.

  우리는 김수영 씨의 불온한 시를 좀더 분석하기 위해 이 상황을 일제식민지시대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나라를 잃은 그 상황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양심은 독립이었다. 그 이외의 것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식민지정책을 승인하고 돕는 행위처럼 오해될 수 있다. 정치가라면 망명을 하든가 감옥에 가야한다. 그런데 그가 시인이라면? 그리고 참여를 한다면? 독립정신을 고취해야 한다. 국민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그 시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애국심=명시' '독립정신=명시' '불온시=명시'의 등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김수영 씨는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직접적으로 독립을 노래부르지 않은 시들, 일본관헌 밑에서도 그대로 통과된 시들은 모두가 일제식민지역사의 옹호자라 하여 불합격의 도장들을 찍어야 하는가?

  김소월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상도, 정지용도, 김기림도, 김영량도 모두 부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평론가는 시를 검열하는 관헌이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 불온하게 보이는 시일수록 상대적으로 민중에게 독립심을 일깨우는 시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가 역사를 바꾸는 제일 강한 목소리를 가진 시이기 때문이다. 정치이데올로기로 예술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는 스스로 자명해 진다. 미국문학사엔 엉클 톰스 케이빈을 쓴 스토오부인이 왕위를 차지해야 된다는 논법과 같다.

  우리는 그런 시를 존경한다. 그러나 시로써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이며 한 시민의 발언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일수록 서랍속에 감춰졌을 때처럼 손해를 보는 것도 없으리라. 그러고 보면 서랍속의 시는 가장 무가치한 시라는 결론이 나온다. 고전이 되어 천세만세를 살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위해서 폭발할 것을 원하는 시인데도 그것이 서랍속에 들어 있다면 마치 겨울철에 다락속에 그냥 들어 있는 난로와도 같을 것이다. 시로 보나 효용면으로 보나, 다같은 낙제다. 시의 예술성이 없다해도 안도산의 창가가사(唱歌歌詞)처럼 그 시대에 불리워졌다면 그래도 존경이나 할 수 있다.


  4. 하나의 질문지


  끝으로 서랍속의 불온시론을 위하여 우리는 피차의 태도를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 있다. 기초적인 이론없이 사회참여이론의 논쟁이 너무나 오래 계속되었던 까닭이다.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는다. 간섭을 하고 탄압을 한다. 그리고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문화의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은 바로 김수영 씨의 「지식인의 사회참여」란 글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은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서정주 씨라면 몰라도 사회참여를 부르짓는 시인으로서는 이상한 발언이다. '우리는 달을 읊고 사랑을 말한다. 일시적인 정치, 사회의 제도가 아니라 영원한 인간의 비전을 노래한다. 우리 시인들의 공화국은 당신의 공화국과는 다른 차원에 깃발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정치가 문화를 간섭하는가? 당신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그리고 그 가치관이 다른데 왜 우리를 못살게 구는가?'라고 말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바로 숨쉬는 이 역사를, 사회를 정치나 그 제도를 개량하는 사람임은 자처하는 사회참여론자가 그냥 내버려 달라는 말은 무엇인가? 진정한 참여론자라면 내버려둔다 하더라도 싸움을 청해야만 된다.

  참여시인과 정치가는 역사를 같은 테이블 위에 얹어 놓고 나이프를 들고 있다. 한쪽은 권력 한쪽은 언어이다. 여기에서 상호의 불간섭을 기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씨는 간섭하는 편보다 무시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정치의 한복판, 사회와 역사의 한복판, 그 현실에 뛰어든 이상 가장 두려운 것은 간섭이 아니라 무시다. 그들이 무시하는 이상 어떻게 참여가 되는 것일까? 참여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간섭은 부당한 것이지만, 부당한 간섭과 탄압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참여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문학이 정치를 간섭하고 정치가 문학을 간섭하는 것이 참여의 앞마당이다. 그러므로 사회참여론자는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달리 위정자의 간섭을 탓하기 보다, 그 간섭에 굴하는 자기자신에게 매질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참여론자는 사회와 정치를 아내로 맞이한 사람, 자기 예술의 런닝매이트로 선택한 사람이다. 그에 비해 순수문학론자는 정치와 사회로부터 이혼을 하고 독립주의자임을 선언한 사람이다. 이 비유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무시라도 해달라는 말은 순수문학자가 할 이야기지 결코 사회참여론자가 할 소리는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기당착에 처해진 말인가를 참여시인들은 알아야 한다.

  둘째로, 참여시인들은 참여를 부르짖기 전에 먼저 그들이 언어를 선택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그것은 가장 소박한 물음이며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물음인 것이다. 즉 시인이 언어를 다루는 태도는 산문가가 다루고 있는 그것과 같은가? 싸르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산문가의 언어는 전달을 목적으로 한 도구로서의 언어이요, 시의 언어는 대상언어, 즉 사물로 화한 오브제, 랑가쥬라고 했다. 당신들은 어느쪽인가? 도구와 같은 언어라면 당신들은 왜 산문을 쓰지 않고 시를 쓰는가? 목적이 참여에 있다면 왜 소설을 통해서, 저널리즘을 통해서, 조직을 통해서 참여하지 않고 '시'라는 장르를 통해서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다른 수단을 사용한 참여와 어떻게 다른가?

셋째로, 문학의 독립성을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 하는 문제다. "정치나 경제의 제도 활동에는 학문이나 예술의 창조활동의 원천으로서의 고전에 해당할 만한 것이 없다. 기껏 있다면 '선례'나 '과거의 교훈'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정치, 경제의 제도활동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모순하는 것 같지만 래디컬한 정신적 귀족주의 문화가 래디컬한 민주주의와 내면적으로 결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정치화의 시대일수록 그와는 다른 문화적 입장으로서의 발언이 요청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참여는 문학이 정치로 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문학의 입장 위에서 정치사회제도를 향해 발언하는 것이다. 만약 이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참여하기 위해선 먼저 문학자의 입장을 가져야한다는 말이 된다.

  토마스 만은 '칼 마르크스가 헬다린을 읽는' 세계를 말한 적이 있고 또 예술가는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라 심미적인 성질의 인간이며, 그의 근본적 행동은 유희에 있지 미덕에 있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토마스 만은 문학적인 순수한 입장에서 사회참여를 한 사람이다. 당신들은 토마스 만이나 괴테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즉 정치사회의 제도활동과 문학의 창작활동의 이원성을 인정하는가? 동일시하는가?

  이 글은 김수영 씨의 '서랍속에 든 불온시'보다도, 그러한 시론에 대한 내 나름의 의문을 표명한 것이다. 우리는 결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통곡을 해도 시원찮은 어려운 상황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원고지를 대하지 않는 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난과 위협속에서도 왜 우리는 글을 쓰는가? 시와 그 예술의 순수한 의미를 상실한다면 우리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그 고통과 시험이 얼마나 부질없는 도로일까? 그리고 더한 입장을 상실할 때는 참여 조차도 불가능해진다.

  대대로 내려오는 보석상자를 도둑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도리어 그 보석을 팔아 창과 칼을 장만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우리는 오늘의 문학인은 관의 검열자와 문학을 정치도구로 착각하여 문학자체를 부정하는 사이비시인과 비평계들의 협공을 당하고 있다. 적은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나는 당분간 외전과 내전의 쓰라린 결전을 겪을 각오 밑에서 이 글을 김수영 씨에게 주는 것이다.


『 思想界 』1968년 3월


시여, 침을 뱉어라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


                                                              김수영


  나의 시에 대한 사유(思惟)는 아직도 그것을 공개할 만한 명확한 것이 못 된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이러한 나의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나의 정신구조의 상부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 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교회당의 뾰족탑을 생각해 볼 때, 시의 탐침(探針)은 그 끝에 달린 십자가의 십자의 상반부의 창끝이고, 십자가의 하반부에서부터 까마아득한 주춧돌 밑까지의 건축의 실체의 부분이 우리들의 의식에서 아무리 정연하게 정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작상(詩作上)으로는 그러한 명석(明晳)의 개진은 아무런 보탬이 못 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는 그는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우리들이 오늘의 세미나의 논제인, 시에 있어서의 형식의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 ----즉, 노래----이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 ----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 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시를 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나는 이미 <시를 쓴다>는 것이 시의 형식을 대표한다고 시사한 것만큼,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전제를 한 폭이 된다. 내가 시를 논하게 된 것은 ----속칭 <시평>이나 <시론>을 쓰게 된 것은 ----ㅡ극히 최근에 속하는 일이고, 이런 의미의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 <시를 논한다>는 본질적인 의미에 속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그것을 제1의적인 본질적인 의미 속에 포함시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논지의 진행상의 편의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말은 세계의 개진(開陳), 하이데거가 말한 <대지(大地)의 은폐> 의 반대되는 말이다. 엘리엇의 문맥 속에서는 그것은 의미 대 음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엘리엇도 그의 온건하고 주밀한 논문 「시이 음악」의 끝머리에서 <시는 언제나 끊임없는 모험 앞에 서 있다>라는 말로 <의미>의 토를 달고 있다. 나의 시론이나 시평이 전부가 모험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들을 통해서 상당한 부분에서 모험의 의미를 연습을 해보았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나는 시단의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참여시의 옹호자라는 달갑지 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이다. 이 말은 사랑의 유보(留保)로서의 <노래>의 매력만큼 매력적인 말이다. 시에 있어서의 산문의 확대작업은 <노래>의 유보성에 대해서는 침공적(侵攻的)이고 의식적이다. 우리들은 시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공간적으로 상상해서, 내용이 반, 형식이 반이라는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노래>의 유보성, 즉 예술성이 무의식적이고 은성적(隱性的)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반이 아니다. 예술성의 편에서는 하나의 시작품은 자기의 전부이고, 시의 본질은 이러한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의 예술성이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가 시의 기교에 정통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기교라는 것이 그것을 의식할 때는 진정한 기교가 못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자기의 시인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사람이 자기의 전신을 바라볼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는 것은 남들이고, 소재이고, 현실이고, 신문이다. 그것이 그의 의식이다. 현대시에 있어서는 이 의식이 더욱더 정예화(精銳化) ----때에 따라서는 신경질적으로까지----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이 없거나 혹은 지극히 우발적이거나 수면(睡眠) 중에 있는 시인이 우리들의 주변에는 허다하게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나는 현대적인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대에 있어서는 시뿐만이 아니라 소설까지도 모험의 발견으로서 자기 형성의 차원에서 그의 <새로움>을 제시하는 것이 문학자의 의무로 되어 있다. 지극히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산문을 도입하고 있고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가 없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도,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되지만,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말은 사실은 <내용>이 하는 말이 아니라 <형식>이 하는 혼잣말이다. 이 말은 밖에 대고 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다>는 <형식>을 정복할 수 있고, 그때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간신히 성립된다.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한다. 이 것을 계속해서 지껄이는 것이 이를테면 38선을 뚫는 길인 것이다. 낙숫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듯이, 이런 시인의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닐 때가 온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하고 외우다 보니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고 시의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그러한 시의 축적이 진정한 민족의 역사의 기점(起點)이 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참여시의 효용성을 신용하는 사람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까 서두에서 시에 대한 나의 사유가 아직도 명확한 것이 못되고, 그러한 모호성은 무한 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의 탐색이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의 주장에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태껏 없었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못 주고 있다. 이 시론은 아직도 시로서의 충격을 못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태까지의 자유의 서술이 자유의 서술로 그치고 자유의 이행을 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자유이 이행에는 전후좌우의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 원군(援軍)이다. 원군은 비겁하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성립이 사회조건의 중요성을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다음과 같은 평범한 말로 강조하고 있다. <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주밀하게 조직되어서 시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과격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그들의<보수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간극(間隙)이나 구멍을 사회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 설사 그 사람이 다만 기인(奇人)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인용문에 나오는 기인이나 집시나 바보 멍텅구리는 <내용>과 <형식>을 논한 나의 문맥 속에서는 물론 후자 즉, <형식>에 속한다. 그리고 나의 판단으로는,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기인이나 바보 얼간이들이 자유당 때하고만 비교해 보더라도 완전히 소탕되어 있다. 부산은 어떤지 모르지만 서울이 내가 다니는 주점은 문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이름난 집인데도 벌써 주정꾼다운 주정꾼 구경을 못한 지가 까마득하게 오래된다.  주정은 커녕 막걸리를 먹으로 나오는 글쓰는 친구들의 얼굴이 메콩 강변의 진주를 발견하기보다도 더 힘이 든다. 이러한 <근대화>의 해독은 문학주점에만 한한 일이 아니다.
  그레이브스는 오늘날의 <서방측의 자유세계>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없는 것을 개탄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서방측 자유세계의) 시민들의 대부분은 군거(群居)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싫어하고, 만약에 노예제도가 아직도 성행한다면 기꺼이 노예가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혹은 지적(知的) 일치를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의미에서,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이 인용문에서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유당때의 무기력과 무능을 누구보다도 저주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도 자유는 없었지만 <혼란>은 지금처럼 이렇게 철저하게 압제를 받지 않은 것이 신통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혼란>이 없는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의 건설은,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가 없는 혼란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의 향수가 문화의 세계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징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발효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인 것이다.

  시는 온몸으로 ,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는 아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에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1968.4>
*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