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병풍(屛風) / 김수영

자크라캉 2007. 9. 16. 00:27

 

 

                                     사진<들꽃여행>님의 플래닛에서

풍(屛風)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