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추억의 복분자>님의 블로그에서
구부러진 것들 / 박해람
오후가 되면 저녁이 내쪽으로 휘어져 온다
바람이 펴지듯 내게 불어오고
나무들은 빈 길을 흔들어 구부리고 있다
가령.
차 열쇠를 하수구에 빠트리고 주변의 구부러진 것들을 찾을 때가 있다
녹슨 철사를 들고 몸을 구부리는 일
차 열쇠를 어느 틈에 빠트리듯
한 때를 어느 틈에 끼워 놓고 찾을 때가 있다
휘어진 내가 다만 낭창 펴진 것분이라고
점점 구부러지는 동안
처음의 길이 곧 뒤돌아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구부러진 음파를 반 듯 펴는 첨탑의 역할이 다시
구부러진 말들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어느 지점까지 따라오다
등뒤에 풍경이 되는 것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울음이 다 휘어져 있는 것처럼
어설프게 구부러진 그 끝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날들
끝과 끝이 닳아 있는 것은 되짚는 것밖에는 달리 없다는 것.
점점 무뎌진다는 것.
저 먼 곳까지
위태하게 뻗어나갔다가 다시 내게 구부러져 돌아오는 생.
그 안온한 끝이 다시 처음이라는 끝과 만나서
서로 터지고야 말 접점.
마중의 날도 歸老의 날도 서로 닿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
결국 끝과 끝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
저 구부러진 길 위에서 구부러진 지팡이를 짚고
다 구부러진 할머니가
마지막 쓸모를 쓸쓸히 견디고 있는 중.
모든 마지막은 중간쯤이라는 것이지
2006년 <시와세계> 겨울호
'문예지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동거울 / 윤동주 (0) | 2007.09.11 |
---|---|
토르소 / 이수명 (0) | 2007.09.05 |
저녁의 동화 / 김경주 (0) | 2007.09.05 |
죽음의 식사 / 이수명 (0) | 2007.09.05 |
늘어나는 반복, 꿈의 여운에 쫓기듯 / 박상순 (0) | 2007.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