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구조주의 / 라캉과 푸코 (1)

자크라캉 2007. 7. 25. 14:34

 

 

조주의 / 라캉과 푸코 (1)

출처 블로그 > Eternity, And a day
원문 http://blog.naver.com/chsuscamp/90016262683

1. 소쉬르와 구조주의 언어학

 

 앞장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1950년대 후반과 1960대에 프랑스 철학은 그 성격과 스타일에서 가히 '혁명'이라 불릴 만한 과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혁명은 일반적으로 '구조주의'라고 일컬어지는데, 모든 철학적인 명칭이 그러하듯이 여기에도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구조주의라는 명칭 자체는 특정한 인문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에서 구조주의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면서 함께 발달한 엄격한 의미의 철학은 훨씬 정의 내리기 어려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철학적 발달은 구조주의라는 용어가 유행되기 이전에, 앞장에서 다루었던 철학자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그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문과학에서의 구조주의와 철학의 방향 전환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구조주의 철학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구조주의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이 순서라 생각된다.

 언어의 유추를 통해 이해 가능한 인간 삶의 다양한 분야에 모두 적용해서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참된 의미에서 구조주의는 언어에 대한 이론의 하나이다.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고전적 텍스트는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저서 《일반 언어학 강의》인데, 이것은 두 명의 제자가 제네바에서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했던 노트를 모아서 스승의 사후 3년(1916)에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언어학자는 특정한 언어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탐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구조를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그의 관점은 《논리철학 논고》에 표명된 비트겐슈타인의 관점과 유사하다. 여기서 그는 실제 언어의 다양한 형태의 근저에 깔려 있는 언어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탐구가 문장을 참이나 거짓으로 만드는 기준으로서 문장의 선험적이거나 필수적인 특징을 찾으려는 논리학자의 태도를 반영한다면, 소쉬르는 실제 다양한 언어들의 특징에 정통해 있는 경험적 언어학자로서 언어의 문제에 접근하였다는 점이다. 앞으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차이는 이 20세기의 위대한 두 인물이 철학에 기여한 '언어학적 전회(linguistic turn)'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언어의 지속적인(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구조는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공시적으로(synchronically)', 다시 말해 일종의 영원한 현재(이것은 소쉬르가 반대하는 연구 태도인 언어를 변천단계별로 탐구하는 '통시적(diachronic)', 즉 역사적인 연구에 대립된다)에 공존하고 있는 대상으로서 연구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공존이 서로 아무런 실질적인 관계도 없는데 단순히 한꺼번에 나란히 놓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하나의 체계 속에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언어는 체계를 가진다. 그것은 사회적 제도, 즉 사회 내에서 필수적으로 작동하는 일련의 규칙들이다. 또 언어는 단절된 개인에게 속하는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소유물이다. 물론 언어는 개인에 의해 사용된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인 사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동적인 소유물로서 언어가 미리 존재하고 있어야만 한다. 소쉬르는 이렇게 공동적으로 소유된 체계로서의 언어를 랑그(langue)라고 지칭한다. 랑그와 대립되는 파롤(parole)이란,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특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언어 사용을 말한다. (소쉬르가 사용하는 이러한 용어들은 쉽게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용어처럼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체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소쉬르는 체계가 '기호'(거칠게 말하면 '어휘'와 상응하는 의미를 가진다)로 이루어진다고 대답한다. 기호는 한편으로는 일련의 소리(sounds, 소쉬르는 글보다는 말을 우선한다)를,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meaning)를 가지는데, 기호의 이런 두 측면은 생각 속에서라면 몰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호란 의미('기의(signified)')를 가진 일련의 소리('기표(signifer)')라고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의'가 '지시 대상(referent)'이라는 용어와 혼동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기의는 프레게가 표현의 '의미(sense)'라 불렀던 것, 다시 말해서 기호에 의해 표현된 개념과 같은 뜻을 가진다. 소쉬르가 직접 들었던 예를 사용하자면, '양(sheep)'이라는 영어 어휘의 기의는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진짜 동물이 아니거니와 프랑스 어휘 '양, 양고기(mouton)'가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양이라는 동물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이 양의 기의가 된다.

 기호와 지시 대상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기호는 '자의적'이다. 똑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상이한 언어체계는 서로 다른 기호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영어의 'sheep'과 프랑스어의 'mouton'은 똑같은 개념이 아니다. 언어는 하나의 체계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 내의 한 어휘가 의미하는 내용은 바로 그 언어 내의 다른 어휘가 의미하는 내용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소쉬르는 흔히 의미의 '전체론적(holistic)' 이론이라 불리는 이론을 내놓았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어휘도 고립되어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 전체의 맥락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참고로 말하면, 이것은 전체론적 지시관계 이론도 당연히 수반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개별적인 어휘가 아니라 언어 전체 안에서만 대상은 지시될 수 있다. 따라서 전체론적 의미 이론과 전체론적 시시관계 이론과 더불어서 언어의 자의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언어는 세계를 다양하게 나누는 하나의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전체론적 의미 이론에 따르면, 어떤 개별적인 어휘는 다른 어휘와의 차이(difference)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양'이라는 어휘는 대립의 체계, 가령 '양', '말', '돼지', '사람' 등과 같이 서로 대립되는 어휘의 체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영어 어휘 'sheep'은 프랑스어 'mouton'과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영어에서 살아 있는 동물의 한 종류를 뜻하는 'sheep'이라는 어휘는 양의 고기를 뜻하는 'mutton'이라는 어휘와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어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로서의 양과 양고기가 모두 'mouton'이라는 한 어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언어란 '차이의 체계'이다. 또 특정한 언어가 구현하는 차이의 종류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가 실재를 절단하는 방법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2. 구조주의와 인류학

 

 이와 같이 규정된 구조주의가, 일례로 문화인류학에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사회와 그 문화가 소쉬르적인 의미에서 체계로 이해될 수 있는 언어의 하나라면,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간파하였듯이 그것은 문화와 문화 사이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이해하기에 참으로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언어학이든 인류학이든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언어와 사유가 객관적 실재를 투명하게 재현한다는 언어관을 파기한다. 세계의 특징 자체가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을 결정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정반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언어의 구조를 통해야만 우리는 여러 대상을 구별할 수 있으며, 사물을 범주로 나누어서 사유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실재론자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우리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없거니와, 칸트가 생각하였듯이 일련의 선험적 범주에 입각해서 세계를 볼 수도 없다는 구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절대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모든 형이상학적 이론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설령 모든 인간이 동일한 사유의 범주를 사용한다고 해도(실제로 레비 스트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전통적 철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그러한 범주는 인간 이성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한갓 언어의 우연한 구조에서 비롯되는 결과일 따름이다. 또 범주의 보편성이라는 것도, 예를 들어 인간 두뇌 기능의 양태와 같이 우발적인 요인에 비추어서 설명될 따름이다.

 둘째, 개인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유의 범주가 이성적인 존재로서 그 개인에게 자명한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사유 유형을 연구함으로써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라면, 데카르트 이후로 유럽 철학의 핵심이었던 초월적 주체라는 개념도 의문에 부쳐지게 된다. 회의의 방법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면서 데카르트는 개별적인 인간에게서 순수한 이성적 핵심을 분리 추출해 냈는데, 그는 그것이 인간의 순전히 개인적인 요소들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모든 외적인 것들의 존재를 의심에 부치면서 우리 인간이 육체적 존재라는 사실도 부인했던 데카르트는, 사유는 두뇌의 구조와도 무관하다고 생각하였다. 회의를 끝까지 견뎌냈던 유일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 입각해서 그는 가장 순수하게 이성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것, 어떤 특정한 개인의 생각이 아닌 순수사유가 곧 인간이라고 규정하였다.

 언어가 없이는 사유조차 할 수 없다면, 또 언어란 단순히 인간의 경험적 특질에 불과하다면, 사유의 유형을 탐구하는 과제는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경험론적 인류학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더불어 '자아'나 '주체'라는 개념도 시간과 공간, 역사를 초월하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절대가 아니라 언어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아란 우리의 경험에 자명하게 '주어진' 무엇이 아니라 언어구조의 일부로서 생겨난 것일 따름이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망을 쌓아가는 과정에 언어의 구조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유의 투명성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며, 이성의 선험적 구조를 인정치 않고, 초월적 근거로서의 '주체'의 위치를 경험적 구성물의 자리로 떨어뜨리는 태도는 모두 구조주의적 방법을 채택하면서 반드시 껴안아야만 하는 기본 전제들이다. 구조주의는 철학의 분야에서도 혁명으로 간주된다. 구조주의를 채택한 철학자들은 과거에 그러하였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철학의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철학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경험의 조건들을 무시하거나 당위성만을 추론하면서 저 높은 선험적인 길을 고집할 수 없다. 세계 내에서 살아가는 경험적 개인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구조주의자는, 개인이 생각하는 내용이 스스로에게마저 불분명할 수 있으며, 그러한 개인의 행동과 반응이 어떤 강제적인 무의식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러한 구조주의적 태도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도 데카르트적 주체 개념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인간 존재 양태가 '세계 내의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사상에 따른다면, 인간 주체는 자신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절대로 초월할 수가 없다. 전술하였듯이 자아가 '무'라는 사르트르의 자아 개념은, '세계 내의 존재' 개념보다 데카르트적 자아 개념에 더욱 가깝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자아의 육체적 성격을 강조한 메를로 퐁티의 사상은, 구조주의에 영향 받은 여타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자아가 완전한 '현존'이라는 데카르트적 자아 개념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더욱이 메를로 퐁티는 합리성의 보편적 원리가 인간 모두에게 자명하다는 관점도 물리친다. 인간 존재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입각해서만 우리는 그러한 원리에 시험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앞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후기의 저서에서 메를로 퐁티는 구조주의자들과 비슷한 '언어학적 전회'의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메를로 퐁티는, 비록 역사적으로 제한된 관점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합리성의 필수적 원리가 있다고 주장한 듯이 보인다. 이 점에서 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은 철학자들은 메를로 퐁티를 훨씬 앞질러간다. 인간 이성의 필연적 원리라는 관념 자체를 완전히 폐기처분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입장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는 구조주의 철학자 한두 명을 살펴보고, 그러한 필연성의 포기가 그들의 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논의한 다음에야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이다.

 

 

3. 자크 라캉 : 철학과 정신분석

 

 의식적인 사유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구조를 배경에 놓고 보아야만 이해될 수 있다는 구조주의자들의 주장과, 무의식적 정신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프로이트의 이론 사이에는 유사성이 많아 보인다. 구조주의와 정신분석은 모든 정신적 활동이 완전히 의식될 수 있다는 데카르트적 관점을 거부한다. 주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주어진 투명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힘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구조주의적 관념은, 자아가 유아의 발전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된다고 보는 프로이트의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이나 기계론적인 용어에 파묻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른 정신분석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싶어하는 사상가에게, 그러한 구조주의적 개념들이 커다란 호소력을 지닐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프로이트와 구조주의를 그런 식으로 종합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자크 라캉이다.

 라캉은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정통파의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마친 그는, 1932년 <편집증 환자와 인격의 관계>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후로 그의 사유는 점차 정신분석학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논문들을 발표하고 정신분석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들 논문 가운데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라캉의 프로이트 해석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논문이 1936년에 발표된 <'나'의 기능 형성으로서의 거울기>이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 정신분석학의 문제를 놓고 그가 파리에서 정규적으로 가졌던 세미나에는 광범한 지식인 계층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로 이들 세미나의 많은 내용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저서가 라캉이 단순히 《작품집》이라 이름하였던 책이다. 그러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 라캉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길을 마련해 나갔다. 그의 해석은 정통파 프로이트 이론과 현저하게 다른 점이 많았지만(부분적으로는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제명되었다), 라캉 자신은 그것이 프로이트 본래의 의도와 정신에 보다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무튼 그러한 프로이트 해석을 따르는 학자들이 프랑스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나타났으며, 그는 프랑스 정신분석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새로운 정통성을 자랑하는 교황과 같은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래서 이리가라이와 크리스테바 같은 몇몇 급진적인 정신분석학자들은 그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좁은 의미의 정신분석학계뿐만 아니라 문학을 비롯해서 심지어 정치 - 일례로 그의 사상이 프랑스의 5월 사건(1968)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문화 전반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었다. 그는 1981년에 사망했다.

 원래는 후설의 현상학에 영향을 받았던 라캉의 프로이트 해석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점차 '구조주의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또 그러한 라캉의 방향 전환이 구조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라캉은 '언어학적 전회', 좀더 자세히 말해서 내적이며 사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사유가 아니라, 언어와 사회적인 요소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연구 태도에 충실하였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자이다. 프로이트가 생물학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무의식'을 원시적이며 동물적인 '충동'의 저장고로서 이해하였다면,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의식적 자아'도 물론 똑같이 언어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라캉에 따르면, 언어를 벗어난 인간 주관성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휘가 다른 어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듯이, 개인도 다른 주체와의 관계를 떠나 홀로 주체로서 존립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체의 형성마저 사회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공유하는 언어의 한 요소이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용례를 습득하는 '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은 비로소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라캉의 1936년 논문과 관련해서 이미 설명했던 개념인 '거울기'가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라캉에 따르면, 6개월째부터 시작되는 아이의 발달의 가장 초기단계에서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알아본다. (이러한 발달단계를 설명하면서 라캉은 아이를 남성 대명사로 받는다. 부분적으로는 바로 이 점이 원인이 되어 페미니스트들이 라캉을 공격하기도 했다.) 침팬지도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침팬지와 아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라캉은 설명한다.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무엇인지 식별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짜 원숭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거울 보는 일에 흥미를 잃고 만다. 그러나 아이는 더욱 많은 흥미를 느끼면서 온갖 몸짓을 다 해보인다. 그렇게 장난하면서 아이는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와 주위 환경 사이의 관계, 거울에 비친 복잡한 영상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해서 아이 자신의 몸과 그것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경험한다.

 

 이 인용문에는 철학적으로 중요한 라캉 사상의 몇몇 중심 주제가 담겨 있다. 첫째로, 주체는 자신의 밖에 있는 것(거울 속의 이미지)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경우에서처럼 주체는 외부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스스로에게 자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후기의 저서에서 라캉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는, "그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함으로써만 그러한 생각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가 망각했던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둘째로, 언어의 습득과정에서 상상력이 한 역할을 차지한다. 자아에 대한 의식과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능력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진짜 자기 자신 사이의 관계를 장난하는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습득이 된다. 셋째로, 아이의 자아에 대한 의식은 아이 자신의 몸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다.

 라캉의 사상에서 상상력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이 거울에 비친 이미지이건, 허구적인 형태로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상(像)이건, 자신에 대한 환상이건 우리는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에 대한 의식의 습득, 즉 '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능력은 그러한 이미지를 통해서 외부로부터 자신을 바라다볼 수 있는 능력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자아'가 된다는 것,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사회화된다는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아는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소외된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그런 욕망이 본질적으로 자신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위협당할 자아가 없다면 자신의 욕망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단순한 동물적 욕망과 비교할 �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자아와의 관계 속에 놓인다는 특징, 따라서 욕망은 본질적으로 언어적 형태를 띤다는 특징을 가진다.

 정신분석이 취급하는 문제들의 근원은, 욕망에 위협당하는 아이의 자아가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어려움에 놓여 있다.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향한 오이디푸스적 욕망에 시달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거세'의 공포, 아버지가 자신의 남근을 제거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경험한다. 그러나 라캉에 의하면 그러한 위협, 특히 오이디푸스적 상황에서 오는 위협과 나름대로 대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자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목적은 어떤 '이익'을 획득한다는 부르주아적인 의미에서의 인간 행복의 성취에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윤리적인 목적을 가지는데, 여기서 윤리란 "이른바 비극적 삶의 인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차원"을 뜻한다. 라캉은 비극적 영웅이 '공익을 위한 봉사'를 포기하고 '자신의 욕망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과정을 예시하기 위해 《오이디푸스왕》이나 《리어왕》 같은 몇몇 유명한 비극을 인용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최후의 심판과도 같이'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윤리적 판단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과연 그대는 마음속에 있는 욕망에 따라서 행동하였는가?"

 정신분석이 그러한 목적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라캉의 언어관을 살펴보아야 한다. 라캉의 글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아무튼 그의 언어관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만약 기호의 의미는 지시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관계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구조주의자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언어는 근본적으로 비유적이라는 결론, 아니면 적어도 '자구적'인 언어와 '비유적'인 언어 사이에 확연한 구별을 짓기가 어렵다는 결론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구별이 가능하기 위해서 '비유적' 언어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윤색하지만, '자구적' 언어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하는 가설을 진리로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이러한 가설을 이미 폐기처분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은유가 자구적 언어에 이미 깊숙히 침임해 있듯이 억압된 욕망도 이미 밖으로 표출되었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인으로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사용해야 하는 언어이다.

 언어는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사회화된 '자아'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기 위해서 억압되었던 욕망은 언제나 간접적인 표현의 탈출구를 발견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이나 말의 실수 등의 형태로 그러한 욕망이 표현된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자의 임무는 그러한 비유적 표현을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도록 도와 주고, 나아가 미완으로 남은 자기 형성이 완료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유명한 말 "이드(id)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어야 한다"를 인용하고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새로운 말을 건네기 위해 주체에게 말을 건다. 여기 꿈의 세계 속에 당신의 고향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

 따라서 정신분석은 라캉이 '상징적 질서'라 명명하는 바의 교류,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언어적 교류로서 이해될 수 있다. 프로이트 자신도 정신분석이 '담화 치료(talking cure)'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수련의로서 당시의 생물학적 선입관에 물들어 있었으며, 정신분석학을 19세기적 의미에서의 '과학'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프로이트 자신과 그의 추종자들 모두 정신분석을 의학적 치료로서 보는 것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라캉의 언어학적 해석의 결과, 정신분석을 실증주의적 과학철학자들이 이해하는 것으로서의 신체적 의학이나 과학적 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과학'이라는 개념도 실증주의자들이 생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개념이며, "과학의 나무가 단 하나의 가지만을 가지라는 법도 없다." 라캉은 초연한 지식 추구로서의 과학이라는 서양의 중심적 이념을 의문시한다. 지식을 향한 욕망도 따지고 보면 서양 문화에서 억압되었던 다른 여타의 욕망들이 승화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역사적 과정에 걸쳐서 인간의 욕망은 도덕주의자들에 의해서 마취되고 잠재워졌으며, 교육자들에 의해서 길들여졌고, 학자들에 의해서 그 정체가 폭로되었는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그 욕망은 지식을 향한 정열, 이 가장 미묘하면서도 가장 맹목적인 정열 속에 자리를 잡거나 억압되었다."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라캉의 프로이트 해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몇몇 철학적인 논제들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프랑스 철학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심각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첫째로, 자아의 구성과정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라캉은 정신분석학도 철학의 한 분야에 마땅히 속할 수 있다는 의견을 뒷받침해 주었다. 철학자들 자신도 선험적 추론의 결과 초월적 자아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정을 배척한다면,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경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지당하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다다를 것이다. 그러나 특히 라캉처럼 정신분석학적인 개념을 빌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욕망이나 유아적 관계와 같은 개념을 이용하면서 그러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프랑스 철학의 한 특징이 되었다. '주체'는 구성된 것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비합리적인 인간의 욕망 위에서 형성된 구성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라캉의 언어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말해지거나 쓰여진 말의 의미를 어휘와 '객관적 세계' 사이의 관계의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화자나 작가의 무의식적 생각이나 동기의 기능으로 설명함으로써 언어를 자구적인 지시 대상이나 의미로부터 떼어 놓은 구조주의적 태도를 완성하였다. 원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정신분석 이론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은유적이라는 생각은 정신분석의 영역을 넘어서 모든 언어 사용에도 적용되었다. 그러한 생각이 허구적인 문학에 적용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그것은 보다 진지한 언어로 이루어진 철학적 텍스트에도 적용되었다.

 마지막으로 '과학'이 초연하다는 주장에 대한 라캉의 냉소적인 태도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가 최근의 프랑스 사상가들에게 미친 영향의 한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니체는 공평무사한 지식의 탐구라는 이념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니체는 진리에의 열정의 배후에는 그것보다 훨씬 조야한 많은 열정이 숨어 있으며, 이 모든 열정은 '권력에의 의지'의 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라캉은 니체의 사상을 다른 후배 사상가들에게도 전달하는 채널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니체적인 사유의 유형을 직접 실행한 예로서 중요하다. 최근의 사상가들이 라캉의 영향을 통해서가 아니라, 니체의 저서를 읽으면서 직접적으로 그러한 사유의 유형을 본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을 접목한 라캉의 공적은 최근 프랑스 철학의 향방에 한몫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하였던 라캉 사상의 세 요소 사이에는 물론 내적인 일관성이 있다. 만약 사유와 지식의 주체가 개인적인 경험의 토대 위에 형성된 주체(정신분석이 묘사하고자 하는 의미의 주체)와 동일하다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주체가 사용하는 개념도 그러한 형성과정의 관점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사용하는 개념과 언어는 어린 시절의 특정한 경험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그의 개념과 언어는 그의 주관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특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유아 시절에 가졌던 필요와 욕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성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욕망의 요청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로 사물을 기술한다는 점에서 언어는 '은유적'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초연한 시각에서 세계를 기술한다고 장담하면서 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이라는 것도 니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한갓 신화에 불과하다.

 분석철학적인 전통의 세례를 받은 철학자가 볼 때 이 모든 라캉의 이론에는 출발점에서조차도, 사유의 주체가 정신분석의 대상으로서 자아와 동일하다는 이론적 출발점에서조차도 아무런 논증적 뒷받침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초월적 주체'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세계 안의 존재'로서 주체를 이해한다고 해도, 다시 말해 주체는 시간과 공간 및 역사의 관점에 입각해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채택한다고 해도, 그 주체의 사유구조가 프로이트가 설명한 바와 같이 바로 그러한 개인이 성장과정에서 겪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이 저절로 유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라캉은 아무런 경험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서 그러한 결론을 채택한다. 경험적인 설명처럼 보이는 이론에 아무런 경험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 라캉의 태도는, 객관적 과학이라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는 니체의 영향과 라캉 자신의 언어관의 결과인 듯이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라캉의 언어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계보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떤 진술을 옳은 것으로, 다른 진술은 그릇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무의식적 규칙을 파헤칠 뿐 아니라, 그러한 규칙이 수용되는 사회적 제도가 형성되는 미묘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까지도 파헤친다. 무엇보다도 푸코의 관심을 강하게 끌었던 일련의 특정한 무의식적 규칙은 근대 사회 혹은 후기 계몽사회, 다시 말해서 '과학'과 '이성', '인본주의'에 기초한 사회의 담론적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한 담론적 실천의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재관이 객관적으로도 정확하며, 그것이 인간의 발전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다. 만약 푸코가 이러한 담론적 실천의 역사적 기원과 관련해서, 그것이 다른 담론적 실천에 비해 더욱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추정된 객관적 관점에 대한 자신의 의심이 정당성을 얻게 되는 셈이다. 나아가서 그것을 근거로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다양한 본성을 자유롭게 탐구하도록 인간을 해방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푸코는 《광기와 문명》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역사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17세기 이전에 평소에는 방치되다가 필요시에 국가 권력이 개입해서 규제하는 인간 행위가 있었다. 그러다 17세기와 18세기의 '고전' 시대 이후 근세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인간 행위는 '과학'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문가'의 규제를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정신병'으로 재규정된 광기는 의학적인 차원에서 정신병으로서 취급받고 감시되어야 했다. 또 많은 범죄형태가 '병적인 인격'의 표현으로서 재분류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과학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가의 관리 하에 놓여야 했다. 마찬가지로 육체적 질병도 전문가의 소관 사항이 되었으며, 심지어 과학은 우리의 성적 관심까지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성의 문제가 수많은 논의의 표면에 떠오르며 끊임없이 이론화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인간은 법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이고 건강하며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상으로부터의 일탈은 경찰이 아니라 과학적 관리의 규제를 받게 마련이다. 이 과학적 관리가 "쾌락과 지식의 형식을 파생하고 담론을 생산" 한다.

 어떤 중요한 맥락에서 보면, 푸코는 계몽주의라는 비판적 무기를 이 계몽주의에서 파생한 '인본주의적' 결과,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이라면 인간 모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한다는 인간적 선이나 행복, 건강, 합리성과 같은 개념들에 다시 적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된 논문에서 푸코는 이러한 갈등의 정체를 해부하였다. 이 논문은 같은 제목으로 1784년에 출판된 칸트의 유명한 논문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다. 여기서 칸트는 계몽주의가 인간성이 성년에 달하는 시기이며, 그것의 좌우명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용기(Sapere aude)"라고 진단하였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의 본질은 "스스로의 자율성 속에서 자신을 비판하며 영원히 창조하는" 데에 있다고 푸코는 해석한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이러한 비판적 측면은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 인본주의와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푸코는 자신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이용해서 "스스로의 자율성 속에서 자신을 비판하며 영원히 창조하는" 계몽주의적 작업을 끝까지 관철하고자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인본주의와 달리, 이 계보주의적 비판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을 넘어서서 우리가 행하거나 알기에 불가능한 것을 유추해 내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보주의적 비판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 계보주의적 비판은 우리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우연한 요소들로부터 우리를 지금의 우리가 아닌 다른 것으로 존재하거나, 행하거나, 생각하게 할 가능성을 떼어 놓는다. 이것은 형이상학이 과학으로 자리를 굳히도록 그 발판을 다지고자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직 규정되지 않은 자유에 될 수 있는 한 최대의 새로운 자극을 주고자 한다.

 

 객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푸코는 인본주의가 객관적인 진리라는 관념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와 행동, 사유의 가능성'의 전망을 열어 놓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성에 대한 그의 사회적 비판도 하나의 대안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일반 이론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한 이론 모두를 포기하고서,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안에 있는 욕망에 따라서 살아가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고자 하는 것이다.

 

 5. 결론과 비판

 

 라캉과 푸코는 여러 중요한 면에서 서로 다르다. 무엇보다 푸코에 비해 라캉의 이론에서는 철학이 차지하는 자리가 훨씬 주변적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정신분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두 사상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이 발견된다. 전술하였듯이, 대부분의 20세기 사상가들이 그러하듯이 라캉과 푸코도 전통적 서양 철학과 과학의 지나친 포부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러한 포부는 순수이성이라는 보편적 원리에 맞추어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기획에서 정점에 이른다고 이들은 보았다. 이러한 의심과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은 분명 현대 사회에 널리 퍼진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사상에 매료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들은 철학적 전통에 대해 일련의 탐색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던 명민한 사상가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라캉과 푸코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의심의 근거는 언어의 지시적 기능, 즉 세계에 관해 객관적으로 옳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능력에 관한 그들 나름의 특정한 관점에 입각해 있다. 의미에 대한 라캉의 관점에 따르면, 의미는 모든 지시 대상과의 관계에서 해방되며, 용어의 의미는 전적으로 다른 용어와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은유적 언어 사용과 축어적 언어 사용의 구별이 무너지고 마는 셈이다. '축어적' 의미라는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태와의 지시관계와 긴밀히 맺어져 있는 반면, '은유적' 의미는 간접적이며 비지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라캉은 모든 의미를 '은유적'(적어도 비축어적)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 된다. 푸코의 의미론은 진술의 진리조건, 즉 우리가 말하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는 조건에 대한 성찰에 근거해 있는데, 그는 이 진리조건이 '담론적 실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라캉의 의미론은 다음과 같은 반론에 직면한다. 그의 의미론에 따르면 가장 필수적인 구분, 예를 들어 벽난로 앞 융단 위에 엎드려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면서 내가 "그녀는 고양이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어떤 여자의 민첩성과 뛰어난 운동신경을 묘사하기 위해 똑같이 "그녀는 고양이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구분을 지을 수 없게 된다. 아마도 라캉을 두둔하는 혹자는 첫 번째 문장은 그 표준적인 용례를 특정한 서술적 목적에 적용해서 사용한 경우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첫번째 문장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동물의 한 종류를 지시하기 때문에 표준적인 용례로서 쓰인다면, 두번째 문장에서는 첫번째 문장의 고양이가 문자 그대로 그러한 동물을 지시한다는 점이 인정되어야만 비로소 인간의 민첩성에도 적용해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은유적 언어 사용은 축어적 언어 사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모든 언어가 은유적일 순 없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상식에 속한다. 라캉이 추구하는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사람들이 진짜로 느끼는 감정을 언어가 은폐한다고 주장하는데, 감정과 사유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사용이 가정되지 않으면, 무의식의 독특한 특징들을 어떻게 기술할 수가 있겠는가. 정신분석학자는 무의식을 번역할 수 있는 '의식의 언어'가 있어야만 무의식의 언어를 파헤칠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라캉의 경우에 문제는 그가 구사하는 언어가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에 그러한 반대 의견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코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라캉에 비해서 그의 언어는 훨씬 분명하며, 특히 진리조건에 관한 그의 관점은 매우 확연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의 핵심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의 주장에 대한 반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일반적인 이론에 관해 일반화된 비판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우리가 푸코를 이해한다면, 그는 그러한 시도에 응당 가해지게 마련인 반론, 즉 그의 시도가 자멸적이라는 반론을 피할 도리가 없는 듯이 보인다. 반론의 목소리에 잠깐 귀를 기울여 보자. 만약 진리와 거짓의 모든 속성이 담론적 실천에 따라서 달라진다면, 푸코의 이론의 진리치도 담론적 실천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푸코는 자신의 이론이 객관적으로 진리라거나,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푸코는 자신의 시도가 이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작업이 아니라고 응수하며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였다. 그의 작업은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보편적 이론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저 유해한 신념의 독기로부터 독자들을 해방시키려는 단편적인 비판작업이라는 것이다.

 푸코의 '인본주의' 비판에 대해서도 똑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인간에게 바람직한 생활은 건강한 '정상성'이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사상과 같은 하나의 이론, 즉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적 선에 관한 특정한 이론에 대해 우리는 푸코처럼 비판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훌륭하며 보다 정확한 이론적 대안, 이 새로운 이론적 관점에 입각해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대안이 가정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안의 필요성에 입각해서 푸코의 비판작업에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푸코는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인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성의 다양한 개념을 향해 자유롭게 열려 있는 삶이라고 푸코는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록 푸코의 기획이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의 기획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