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시인

정식(正式) / 이상

자크라캉 2007. 7. 2. 20:26

 

사진<달팽이자연학교>님의 카페에서

 

식(正式) /  이상

정식·1

 

해저에 가라앉는 한 개 닻처럼 소도(小刀)가 그 구간(軀幹) 속에 멸형(滅形)하여 버리더라 완전히 닳아 없어졌을 때 완전히 사망한 한 개 소도(小刀)가 위치에 유기(遺棄)되어 있더라

 

정식·2

 

나와 그 알지 못할 험상궂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 뒤를 보고 있으면 기상(氣象)은 몰수되어 없고 선조가 느끼던 시사(時事)의 증거가 최후의 철의 성질로 두 사람의 교제를 금하고 있고 가졌던 농담의 마지막 순서를 내어 버리는 이 정돈(停頓)한 암흑 가운데의 분발은 참 비밀이다 그러나 오직 그 알지 못할 험상궂은 사람은 나의 이런 노력의 기색을 어떻게 살펴 알았는지 그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 하여도 나는 또 그 때문에 억지로 근심하여야 하고 지상 맨 끝 정리(整理)인데도 깨끗이 마음 놓기 참 어렵다

 

정식·3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표본 두개골에 근육이 없다
 
정식·4
 
너는 누구냐 그러나 문 밖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외치니 나를 찾는 일심(一心)이 아니고 또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한들 나는 차마 그대로 내어버려 둘 수는 없어서 문을 열어주려 하나 문은 안으로만 고리가 걸린 것이 아니라 밖으로도 너는 모르게 잠겨 있으니 안에서만 열어주면 무엇을 하느냐 너는 누구기에 구태여 닫힌 문 앞에 탄생하였느냐
 
정식·5
 
키가 크고 유쾌한 수목이 키 작은 자식을 낳았다 궤조(軌條)가 평편한 곳에 풍매(風媒)식물의 종자가 떨어지지만 냉담한 배척이 한결같아 관목은 초엽(草葉)으로 쇄약하고 초엽은 하향하고 그 밑에서 청사(靑蛇)는 점점 수척하여 가고 땀이 흐르고 머지 않은 곳에서 수은(水銀)이 흔들리고 숨어 흐르는 수맥(水脈)에 말뚝 박는 소리가 들렸다
 
정식·6
 
시계가 뻐꾸기처럼 뻐꾹거리길래 쳐다 보니 목조 뻐꾸기 하나가 와서 모으로 앉는다 그럼 저게 울었을 리도 없고 제법 울까 싶지도 못하고 그럼 아까 운 뻐꾸기는 날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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