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넥타이 / 최정란

자크라캉 2007. 5. 15. 15:18

 

                                  사진<뽀글펭수니>님의 카페에서

 

 

타이 / 최정란

 

고치 속의 누에처럼 웅크리고 잠든 그 남자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생의 중심에 묶인 넥타이 푼 적 없다
벼랑 끝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목을 조이는 목줄 끝
날개와 맞바꾼 계약의 화살표는 아래로 향한다
참을 수 없이 팽창된 날카로운 한 순간이
뜨거운 절망을 쏘아내고 곤두박질 치면
순한 짐승처럼 늘어지던 넥타이
날아오르려는 순간 번번이
추의 무게에 발목 잡혀

절벽 아래로 수직 강하한다
그는 가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자랑스런 기호 풀고 싶었던 적 없었을까
올가미처럼 조여드는 넥타이 대신
비린 달빛에 입덧하는 늪으로 누워서
한 달에 한 번, 뜨거운 가시연꽃 같은 것
생의 외곽으로 은근히 밀어내고 싶지 않았을까
중심을 가장 가파른 벼랑에 묶어 둔 블랙유머
누구의 매듭을 풀고 나온 넥타이일까
물뱀 한 마리, 수면 위를 미끄러진다

 

 

시집 <여우장갑> 2007년 문학의전당

 

 

 

 

                                 최정란 시인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시집 <여우장갑>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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