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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칼럼> / 신춘문예를 빛낸시

자크라캉 2007. 1. 15. 14:11

 

                               사진 <미디어 다음>에서                                          

 

[도종환 칼럼]춘문예를 빛낸 시

경향신문 2007년 01월 04일 18:20:48



〈도종환·시인〉

올해도 많은 이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영예로운 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이들은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인가. 그 생각을 하면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강산 시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언젠가 당신이 나를 읽을 때까지 목소리를 감추고 시간을 밀어내는 정확한” 의미가 되기 위해 기다린 시간은 참으로 길었을 것이다. 올해 당선된 시 중에는 첫 문장이 읽는 이들을 사로잡는 시들이 여러 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낡은 한 문장은 아직 나를 기다린다.”(이강산 ‘연금술사의 수업시대’/ 서울신문)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김륭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문화일보)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신미나 ‘부레옥잠’/ 경향신문)



-당선자들레 아낌없는 박수를-

이런 시들은 이미 시작부터가 신선했다. 거기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전체를 꿰뚫고 있는 생각의 집약과 응축이 있고 자신감 있게 첫발을 내딛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적 사건이나 사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거기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눈이 있었다. 신미나의 ‘부레옥잠’도 그렇고, 한창석의 ‘소금쟁이를 맛보다’(경인일보), 정재영의 ‘몸의 저울눈’(광주일보)도 그렇다.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고 쓴 시다. 수면과 허공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금쟁이에서 매일매일 부딪치는 우리 삶의 위태로운 경계를 발견해 낸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몸의 저울눈’은 푸줏간에서 고기를 썰어 저울에 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쓴 시다. 고기를 저울에 얹는 순간 파르르 떨며 움직이는 저울눈에서 우리 생의 모자람과 넘침,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흔들림이라는 주제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정재영은 부산일보에 ‘붉고 향기로운 실탄’이 당선되기도 했다.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올해 두 곳에서 동시에 당선된 시인이 되어 부러움과 시샘을 함께 받았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영식의 ‘소라여인숙’(강원일보)도 올해 당선작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다.

“어린 물떼새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 해변가 모퉁이 외딴 집 한 채 /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

이 시 속에는 방황하는 시 정신이 있고, 상처 받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눈과 도저한 역동적 힘이 내재되어 있다. 표현과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가락이 있다. 일부러 어렵게 쓰지 않으면서도 삶의 얼룩 같은 것이 묻어나는 좋은 시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잣대로 삼는 ‘서정적 진정성, 언어적 숙련도, 개성의 깊이’를 모두 갖춘 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시인을 키우는 시련·좌절-

그러나 “소박한 차원에서나마 읽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절실함을 간직하고 있는 시,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을 보여주는 시는 의외라 할 만큼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내용, 비슷비슷한 형식의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심사위원들의 이런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선된 시인보다 낙선한 시인들이 더 많다. 다시 시작해야 할 불면의 밤과 시련의 나날이 또 시인들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시련과 좌절이 나를 키우고 영혼을 고양시키며 문학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기다림과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증 그것이 시인을 만든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