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街 소식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자크라캉 2006. 8. 22. 08:25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⑦ 소설- 은희경 [중앙일보]
곳곳에 복선, 능란한 구성
얘기 속에 또 다른 얘기가 …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예심에서 심사위원 전원 추천을 받았다. "은희경 10년 문학의 요약판"(김형중) "능란한 구성 공력은 역시 은희경"(신수정)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소설은 간단치 않다. 독자의 관심과 안목에 따라 소설은 달리 읽힌다. 암시와 복선이 요소요소 덫처럼 놓여있고, 바깥에 널어놓은 이야기 이면에 생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여 '눈높이 소설읽기 대작전'. 예심위원들의 해설과 작가의 설명 등을 종합해 단계별 소설 독법을 공개한다.



▶Level-1: 다이어트 정보

소설은 일견, 비만 남성이 6주일 만에 12㎏을 감량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 서사의 대부분이 다이어트 얘기고, 곳곳에 배치된 다이어트 정보도 제법 쏠쏠하다. 개중에 몇 가지 정보를 인용한다.

-지방은 탄수화물 없이는 저장되지 않는다.

-곡물은 설탕 다음으로 손쉽게 에너지가 된다.

-뇌는 자신이 쓸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내장에 포도당을 비축하라고 명령한다. 위가 다 찬 다음에도 3분이 지나면 뇌는 다시 명령을 내린다.

흥미로운 정보는 또 있다. 소설에 따르면, 과식은 인간의 몸에 디자인된 유전적인 결함이다. 빙하기의 선조는 오랜 기다림 끝에 먹을 것을 만나면 과식을 했다. 다음번 궁핍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과식하는 것도 살아남는 능력에 해당된다. 꽤 그럴 듯한 설명이다.

▶Level-2: 밥의 철학

감량에 돌입한 나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와 부딪친다. 어쩔 수 없는 갈등이다. 어머니란 본래 자식을 먹이는 일에서 가치를 찾는 존재다. 거기에 어머니의 보릿고개 타령이 더해진다. 이에 따라 모자(母子)의 대립은, 곡기(穀氣)의 생존철학과 영양소의 경제학을 각각 대표한다.

어머니가 "그 시절엔 굶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건 다 했어"라고 따지면 나는 "굶어 죽는 시절은 지났다"고 대꾸한다. 어머니의 절절한 체험에 맞서기 위해, 나는 미국이 1년에 체형관리와 다이어트에 쏟아붓는 돈이 몇 십억 달러가 넘는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뚱보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상도 소설의 주요 테마다. 뚱보의 설움을 드러내는 여러 구절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를 옮긴다. '뚱뚱한 사람은 몸집이 커서 눈에 잘 띄는 게 아니다. 뭔가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선이 멈추는 것이다.'

▶Level-3: 아버지 그리고 나

 소설은 결국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 그러나 품위있는 아버지, 그래서 뚱뚱한 나하곤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다이어트의 원인이자 목표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작가는 한참을 돌아서 온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아버지가 영영 가시기 전에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잘못 태어난 아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떳떳한 자식으로서 당신 앞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막판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반전에 관한 힌트는 앞서 열거한 다이어트 정보 중에 있다. 피붙이는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피붙이는 누가 뭐래도 피붙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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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⑦ 시 - 문정희 [중앙일보]
10년, 20년을 품고 삭혀
자식 낳듯 내보낸 시어들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사법 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전수안 대법관은 지난달 취임사 말미에서 문정희 시인의 시 '먼길'을 낭독했다. 그 어떤 글이 여성으로서 대법관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까. 등단 37년째, 시인이야말로 '먼길'을 걸어왔다.

김수이 예심위원은 "시인은 시적 열정을 평생 고르게 유지하면서 여전히 뜨겁게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은 읽고 쓰는 생활에 모든 삶을 투자했다. 그러다 숨 막히고 답보 상태에 빠지면 외국에 나가 자극을 받은 뒤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제 "굳이 내 몸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충만하다"고 했다. 자식 같은 시들이 대신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곧 독일에서 4권 전집 분량의 시집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두 번째 영역 시집이 나온다. 2004년 뉴욕에서 영역 시집 'Wildflower'를 발간한 뒤 그녀의 시는 각국 언어로 번역돼 읽혔다.

우리에겐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해외 문단에 그가 나서면 늘 한국 최초가 된다. 외국을 펄펄 날아다니는 유능한 시인. 그러나 깊이 패인 상처도 있다. 40대 때 여성의 상징인 자궁과 유방 일부를 절제했다.

'뱀의 비늘같이 차가운 면도날이/스웃스웃/지나간 후/나는 털 없는 여자가 되었다'('거웃'에서)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는 거웃을 깎이던 순간, 시인도 여자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그저 '몸서리친 한 덩어리 고기'였을 뿐.

시인은 10~20년 전의 경험을 이제 와서야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 그는 "너무 바닥으로 가면 언어가 다 달아나더라"고 했다. "언어로 표현되는 세계가 부질없고 부정확해서 못 쓰겠더라"고도 했다. 수술 뒤에 몸의 균형도 무너졌다. 통증이 오는 허리에 넓적한 복대를 두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전투하듯 시를 썼다.

10년, 20년이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패인 가슴에 살이 올랐다. 아픈 허리도 말끔히 나았다. 시인은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줄 알았는데, 몸이 회복되자 정신이 회복됐다"고 했다. 비로소 처절한 몸부림은 시로 태어났다. 생명을 낳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어미는 피묻은 한 마리 짐승이었다. 

'성스러운 순간이라 말하지 말라/하늘이 뒤집히는/날카로운 공포'('탯줄'에서)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지상의 가위로는 자를 수 없는' 탯줄을 '이보다 확실하고 질긴 이름을/사람의 일로는 더 만들지 못하리라'고 당당히 말한다. 같은 이유로 여성으로서 수십 년을 감내한 결혼 제도를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살짝 비틀어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

완성한 시도 한참 묵힌 뒤 발표할 때가 많다고 했다. 오래 품고 있으면서 익히고 보완하기도 하고, 묻어두고 혼자 보며 즐기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절로 성숙해 내보내도 되겠다 싶은 시도 있단다. 이렇게 시인은 생명을 낳듯 시를 낳는다. 시인의 자궁에선 지금 80여 편의 시가 문 열리길 기다리며 발가락을 꼬물거리고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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