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초이네>님의 플래닛에서
길에도 혀가 있다 / 마경덕
혀가 있었다. 걷거나 달리거나 서있는
바퀴의
지문(指紋)을 끈질기게 핥아먹는
돌아보면 구불텅한 길 하나 졸졸 따라오고 끼익끼익 바퀴에 길이 감기는 소리. 바퀴 속 물컹한 바람이 무거운 세상을 밀고 있었다. 자전거와 수레바퀴들, 종일 휘감아 온 흙길을 뒤뜰이나 문간에 부려놓으며 흐린 지문(指紋)을 읽었다. 느린 구름이 떠다니는 가파른 고개에서 보이지 않는 혀가 바퀴를 핥는 소리. 쉽게 곁을 주는 흙길에서 시나브로 바퀴가 야위어 가고
바다 건너 허공에 길을 내고 세상 끝에 닿은, 완강하고 다급한 길. 집을 덮치고
들판의 배를 가르고 버럭버럭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무 곳에나 바퀴를 털썩 주저앉혀 길이 마음을 열 때까지 서있는 바퀴. 앞만 보고 달리라고
꾸물대지 말라고 걷어차는 길. 친친 꼭대기로 기어올라 산을 넘어뜨리고 길바닥에 껌처럼 달라붙은 산짐승의 홀쭉한 위장, 그 흔적마저 꿀꺽
삼키고
현대시학
(2003년 12월호)
2006년 시집 <신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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