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양란>님의 블로그에서
썩은 사과 한 자루 / 류인서
이야기의 시작이야 당연히 한 마리의 잘생긴 망아지였죠 망아지
의 갈기 끝에 핀 흰구름이었죠 흐르는 초록 풀밭의 아침이었죠
망아지와 맞바꾼 살찐 암송아지였죠 우유 한잔으로 맞는 약속의
식탁이었죠
알고 본즉 뿔도 안 난 어린양이었죠 부드럽고 따뜻한 양털 목도
리였죠
뒤뚱뒤뚱 알 잘 낳는 새하얀 거위였죠 암탉이었죠 고소한 에그
프라이였죠 종종종 병아리떼 개나리 노란 텃밭이었죠
사실인즉, 암탉과 자리 바꾼 썩은 사과 한 자루였죠 사과의 썩은
과육을 도려 만든 시큼들큼한 쨈 한 병이었죠
사실인즉, 당신의 발치에 힘없이 널브러진 쭈그렁 빈 사과자루가
전부였죠
어린 시절 책에서 배운 안델센이죠 썩은 사과 한 자루죠
망아지인가 하면 송아지 송아지인가 하면 양이죠 양인가 하면 거
위죠 암탉이죠 바뀌고 또 바뀌는,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농부할아
버지의 이야기
과장 없는 삶의 은유란 걸 오늘에사 겨우 눈치 챈 거죠
<시평>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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