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썩은 사과 한 자루 / 류인서

자크라캉 2006. 9. 8. 15:17

 

 

사진<동양란>님의 블로그에서

은 사과 한 자루 / 류인서

 

  이야기의 시작이야 당연히 한 마리의 잘생긴 망아지였죠 망아지

의 갈기 끝에 핀 흰구름이었죠 흐르는 초록 풀밭의 아침이었죠

  망아지와 맞바꾼 살찐 암송아지였죠 우유 한잔으로 맞는 약속의

식탁이었죠

  알고 본즉 뿔도 안 난 어린양이었죠  부드럽고 따뜻한 양털 목도

리였죠

  뒤뚱뒤뚱 알 잘 낳는 새하얀 거위였죠  암탉이었죠  고소한 에그

프라이였죠 종종종 병아리떼 개나리 노란 텃밭이었죠

  사실인즉, 암탉과 자리 바꾼 썩은 사과 한 자루였죠 사과의 썩은

과육을 도려 만든 시큼들큼한 쨈 한 병이었죠

  사실인즉, 당신의 발치에 힘없이 널브러진 쭈그렁 빈 사과자루가

전부였죠

 

  어린 시절 책에서 배운 안델센이죠 썩은 사과 한 자루죠

  망아지인가 하면 송아지 송아지인가 하면 양이죠 양인가 하면 거

위죠 암탉이죠 바뀌고 또 바뀌는,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농부할아

버지의 이야기

  과장 없는 삶의 은유란 걸 오늘에사 겨우 눈치 챈 거죠

 

 

<시평> 2006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