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도비>님의 플래닛에서
카메라, 키메라 / 강 정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카메라 한 대로 모든 시간을 포획하려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한다
당신의 얼굴을 담으려다가
두 개의 망막을 거쳐 내 심장에 가설된 집에는
당신이 떠난 자리만 휑뎅그레 살아 있는 나보다
더 크고 살갑다
대개 과장법이 잘 통하는 나의 카메라는
사람 여자의 몸에 공룡 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은 내 기억보다 훨씬 먼 시간의 지층 아래
흙과 나무의 처소로
봄마다 아름답게 환생하지만
당신이 꾸역꾸역 이 세상의 멸망을 앞당기며
미래의 생을 즐기는 동안,
찍으면 찍을수록 공기의 보이지 않는 결만 지문처럼 분명해지는
카메라를 들고 나는
당신의 길고 긴 꼬리를 좇아
백 권의 책을 불 싸지르고
소리쳐도 뱉어지지 않는
몸 안의 검은 옹이들을 하복부를 몰아넣으며
당신이 한사코 거절해버린
귀여운 벌레들의 미래도시를 상상임신한다.
2006년 <문학동네>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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