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 전순영

자크라캉 2006. 8. 17. 12:09

 

                                        사진<youme>님의 플래닛에서

 

 

간을 갉아 먹는 누에 / 전순영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제 또 초록 뽕나무 한그루
내 앞에 설 것이다  
나는 한 잎씩 깨물어 삼키고
한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고 매일 매일
그 똥의 색깔은 다르다
열두 가지에 매달린 삼백 예순다섯 이파리 퇴비되어
내게로 되돌아올 때
꺼풀을 벗은 누에가 번데기 되듯 그 바깥 둘레에 나를
싸주는 집, 명주실 얼굴은? 몇 개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