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산 갈매기>님의 블로그에서
오징어 / 고경숙
여자는 오전내 손톱정리를 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귀퉁이 뜯겨진
시커먼 궤짝 위 열 손가락 해동한 후
긴 손톱으로 흐르는 먹물 찍어 치장하고 있다
물건 정리 하는 야채가게총각
구성진 트롯트가 이따금 박자를 놓친다
이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메, 징한 놈!
번쩍이는 불빛에 홀려
캬바레 몇 번 드나들었건만 인정사정없이
옆구리에 시퍼런 꼬챙이를 꽂던 생각나
심장이 가늘게 뛴다
하긴 콸콸 쏟아지는 검은 피를 찍어
주절주절 써댄 각서만도 벌써 여러 장이니
행인들 손가락질도 이젠 예사다
겨울해가 가게 안에서 성큼성큼 빗겨나가고
비린 물이 바닥에 흥건해져 붐비는 시간
언 동태궤짝 메다꽂아 떼어주는 이 없어
그일 시급하긴 하다만
어차피 혼인묵계* 지키는 년놈 몇이나 될까?
빨판 힘껏,
지나다니는 치마폭 감아쥐고 호객하다가
땅거미에 하나 둘 집어등 불 밝히면
미끄러지며 시선 따라가는,
오! 징한 여자
계간 <정인 문학> 200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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