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외 / 황명강 / 2005년『서정시학』신인상 당선시
사진<우리에겐내일이 있잖아요>님의 플래닛에서
몽돌/ 황명강
어딘가로부터 떠나올 수 있었기에
그들은 바다를 얻었을 것이다
무어라 주절거리는 주전리 바닷가 몽돌
때마침 혼자 서성대던 슬리퍼 한 짝
감싸 안으며 토닥토닥 다독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고
몽돌을 닮아갈 것이다
너그러워지는 달빛 기다려
나는 맨발로 몽돌밭을 걸었다
그들 목소리 닿을
때마다
딱딱한 곳만 가려 다녔는지
아픔 참으려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욕망들이
발목과 무릎과 어깨 위에 떨어진
초저녁별의 뼈마디까지
물어뜯었다
해안선을 따라 세상은 조금씩 둥글어졌다
겨울 강
황 명 강
강은 부글거리는 속 견디며 엎드려 있다
오리배는 길 저쪽 올려다보면서
강의
비위 맞추느라 꼬리를 흔든다
톱날같은 나뭇가지가
혼자 걷고 있는 내 발목을 잡는다
엎드릴 곳 없어 강둑 더듬던
바람은 고단함 견디려고
포플러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
나는 마른 가지 끝에 매달려
몇 시간인가 헝겊처럼 흔들렸다
아마 지금까지 흩날려온 길에서
가장 추웠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실수로 뛰어내린 돌멩이도 강 저편 기슭으로
미끄러져 갔다
겨울을 이 강에 몽땅 옮겨놓은
내 잘못이 크다
군불을 지피다
황 명 강
무슨 인연으로 얽혀든 것일까
길 끊어진 외딴집에서
처음 만난 나무의
다비식을 치렀다
때 기다리던 나무등걸
다음 생을 꿈꾸는 살점들
털어내고 있었다
나이테 사이 눌려있던 햇볕과
바람은
풀려난 기쁨 감추지 못하고
둥실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 동원해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
깊숙한 아궁이는 수없이 많은 꽃송이를
낳고 또 낳았다
전생의 그
무엇이었음을
꽃송이들 중얼거리며 일러주고 있었다
새벽 두 시 기차소리
황 명 강
쓸만한 것들 남겨두고
걷도는 마음 거두어 밀고가는
새벽 두 시 기차소리
부러진 콤파스처럼 절뚝이는 내 詩의 나뭇가지
꼬리 감춘 기차소리에 걸려 넘어진 채
깊은 밤
작약 능소화 봉숭아 해바라기 천인국
배경처럼 놓여진 생을
주인공인 양 꼿꼿이 목 세우고 있다
어둠 소스라치게 바라보며
웃을 줄 몰라 사랑도 못하는 나, 바위처럼
미끈하게
다듬어진 벽 바라보고 있다
깊어가는 詩의 숲 가로질러
기차는 떠나갔다
튕겨져 상처 줍는 자갈돌처럼
레일 깔리지 않은 어느 곳에도 길은 없다
+ + + + +
[당선소감]
풀잎은 풀뿌리의 본능으로 구름은 하늘의 눈으로
황 명 강
당선소식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신라의 三奇八怪에 포함되는 금척리고분이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병을 낫게 하고 죽은 이를 살려낸다는 금자의 전설은 찔레꽃이나 따먹던 어린아이를 까마득한 봉분 쪽으로 유인하기 시작했었다. 꿈속에서조차 대치상태였던 그들과 나 사이 백지와 펜이 머리맡에 있어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풀잎은 풀뿌리의 본능으로 구름은 하늘의 눈으로 살아가듯 정직하게 바라보며 나아갈 것이다.
대구시인학교에 몸 담은지 8년의 세월..... 짧고 긴 시간이었다.
이은림 정이랑 이채운 박이화 임경림 천수호 이동백 서하 정하해 장혜승시인 등
당시 대구시인학교 동료들이 벌써 앞서 가 있는 가운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시에 있어서만큼은 너무나 엄격하시어 일류문예지 등단이 아니면 불호령을 내리시며, 늘 작품과 품행을 강조하시면서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는 확고함의 자세를 16년 넘게 보여오신 서지월선생님. 오로지 실력향상만으로 땀 뻘뻘 흘리는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문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경주신문 동료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예견을 잘 하시며 미래의 일도 잘 알아맞추기로 이름나 있으며, <서정시학>을 소개해 주셨고 그 예견이 그대로 적중된 건 나만의 경우는 아니지만 여느 시인들과 다른 면모도 있는 저희 스승이라는 걸 이 기회에 말해두고 싶다.
나의 호적이 된 <서정시학>과, 당선통보와 함께 전해받은 심사위원이셨다는
고려대 최동호선생님, 서울대 오세영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 1958년, 경주 건천 출생. 본명 황명희.
▲ 한국방송대학교 국문과 졸업.
▲ 현재, 대구시인학교 회장. <사림시> 동인.
▲ 경주신문 영남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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