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어느 건축 일용직의 대출상담기 / 강봉덕

자크라캉 2006. 8. 10. 15:51


 

                           

                        사진<몽구>님의 블로그에서

 

 

 

느 건축 일용직의 대출상담기 / 강봉덕
 
세상으로 향한 회전문 열고 들어오는
구부정한 허리의 윤씨는 건축 일용직공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
지하 단칸방 벗어나려
희망으로 향하는 목도의 길 더듬어 온 것이다

내일의 빛으로 한금한금 엮어
모눈종이 위에 조용히 서 있는 집
상담석에 앉은 그는 소망의 설계도 펼쳐 보인다
행원은 오늘 아침 일어난 곳을 묻는다
일용직 윤씨는 설계도에 문제가 없다는 듯
행과 열을 오르내리며 내일의 창을 여닫는 동안
행원은 그가 지나온 길을 들여다본다. 부르튼 손과
홀쭉한 얼굴에서 험난했던 날들이 열린다
 
낡은 몸 접어 뉘던 지하 방
오래도록 세를 내지 못해 지상으로 내몰릴 몸을
기억 하는지 움찔 세상이 움직인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설계도 안 굴뚝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방향이 운이 좋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집 앞에 당도할 수 있다면
 
상한 몸은 지금 아궁이와 구들을 지나 정초를 세우는 중이다
가족은 지하 단칸방 벗어 나려 한다.
빛으로 향한 길은 멀고 가파르다
그러는 동안
행원은 윤씨의 가난한 가계도 계속 들추고
 
윤씨는 밝은 앞날의 비밀을 캐내는데
행원은 아직도 과거를 읽어 간다. 지금 그의
거푸집 같은 손을 따라가면
툭툭 불거져 나온 강줄기 같은 실핏줄 끝으로
젊었을 때 심어 놓은 푸른 질경이 꽃 무늬를 만난다
그가 움츠릴 때마다 마른 꽃잎 한 무리씩 피었다진다
 
그는 대들보 건너고 있다
나무의 틀어짐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쓰다
나무의 숨결이 들려주는 법문을 읽고 있는
굵은 주름살에 갇힌 눈 들여다보다가 그의
진실을 만난다. 높이의 경계까지 올라온 것일까.
집은 늦어지고 있다
행원은 이제 윤씨의 현실을 트집 잡고 있는데
 
설계도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집은 그의 꿈길을 따라 계속 자라고 있다
촘촘히 서까래 얹고 추녀를 엮어 가며
하늘 행간과 수평을 맞추다 먼
하늘을 본다 상향식을 하듯이
굽은 키의 높이 만큼 하늘은 빈자리 비워 두고
 
이제, 집은 마무리가 되고
다시 건축 일용직공의 항해가 시작된다
용마루 올리자 바람이 분다
설계도 위의 꿈이 와르르 무너진다
윤씨는 꿈을 접어 봉투에 밀어 넣는다
언제 다시 개봉할지 모르는 어두운 가슴 한 편으로

긴 미로 끝 윤씨의 낙인이 그려지고
세상을 향해 나서는 순간
처마 끝 풍경이 하늘의 현 건드리자
겨울비가 내린다
행원이 윤씨의 머리위로 우산을 세우는 동안
멀리서 풍경소리가 내린다
"다시 오십시오,
당신이 희망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당신의 따뜻한 이웃입니다."

 


 

 

2006년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