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사평역에서

자크라캉 2006. 7. 8. 16:14

 

 

 

 

 

 

 

 

 

 

 

          사진<詩人의 ☆>님의 블로그에서

 

   

 

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 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시


         

      

  


 ☆ 프로필

 

곽재구 http://penart.co.kr/literature-library/figure-korea/%B0%FB%C0%E7%B1%B8.jpg [JPEG], 92×120, 3 KB, 24 Bit

 

시인 곽재구

 

 

1954년 광주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당선

<5월시> 동인

시집으로 『사평역에서』(1983),『전장포 아리랑』(1985),

『한국의 연인들』(1986), 『서울 세노야』(199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