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여명*희망의 빛>님의 플래닛에서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 권정일
그때 나는 세모시 저고리에서 달빛보다 더 선연한 바늘의 등뼈가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열 손가락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화처럼 가지런한이마가 환한 빛을 내던 토방 쪽마루를 보았
다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는 내가 이름 지어준 별들이 내려와 집을
짓곤 했다 못에 찔려 피 흘리던 내 꿈들 우리집 추녀 끝에 밤마다
찾아드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한 채 섬이 된 우리집 마당으로 물방
울처럼 별 하나, 별 둘 똑똑 떨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
가 섬이 되어 떠다니고
푸른 슬레트 지붕이 녹스는 소리마저 정겨운 여름밤이었다 흑싸
리 화투패 같은 빈 껍질의 어머니 가슴에서도 녹스는 소리가 들렸
다 어쩜 그것은 내 가슴팍을 적시는 물살이었다 추깃물 같은 반딧
불이 우리집 낮은 담장 너머에서 몇 번 어둠을 흔들다가사라지고
있었다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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