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님의 플래닛에서
늪은,
박선희
허공에 부려진 새들의 허다한 울음이
바닥으로 떨어져 자란 것이 늪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썩어
문드러진 소리까지 결 삭여
질척이는 숨소리로 누덕누덕 시침질하고 있는
늪은,
애초에 조금 젖었을 거야 젖는 줄
모르고
젖었을 거야 고이는 줄 모르고 온몸으로
고이게 했을 거야 제가 갇히는 줄 모르고
제가 앓는 줄 모르고 부둥켜 끌어안고
질퍽이는
질척이는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결코 놓지 않아
놓아줄 수 없어 푹푹 빠져들었을 거야
더 깊숙이
곤두박질치는
늪은,
내 몸 속으로 엉겨들었다 긴 뿌리로
축축한 맨발이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구설수인 늪,
벌떡
일어나 떠날 수 없는
추억을 뿌리 채 솎아낼 수 없는
속 깊은 침묵을 가만가만
들려주고
있었다
--시집『여섯째
손가락』중에서
[감상]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늪'은 결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수 천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결코 솎아낼 수 없는 추억을 질컥이고 있다.
허공에 부려진
새울음소리도 결국 '늪'에서 발원한 것이라는 깨달음과 세상의
온갖 썩은 소리마저도 새로운 생명으로 발효시키는
재생장치로서
시인의 인식은 닿아 있다. 그리고 그 '늪'에서 부둥켜 안고
질척이는 너와 나, 온 몸으로 엉겨드는 추억은 늘
맨발이었다.
제목뒤의 쉼표는, 안으로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늪'의 생명성을
상징하고 있다. 흐르는 물소리마저 구설수가 될 수 있는
그 '늪'에서
흐르되 흐르지 않는, 쉬어 있되 결코 썩지 않는 속깊은 침묵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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