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사랑은 / 이승희

자크라캉 2006. 8. 7. 18:38

 

 

                               사진<들꽃향기>님의 플래닛에서

 

랑은   /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속으로만 꽃 피는 무화과처럼

당신 몸속으로 오래도록 저물어가는 일.

그것도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는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 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아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시집『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중에서《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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