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꽃향기>님의 플래닛에서
사랑은 /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속으로만 꽃 피는
무화과처럼
당신
몸속으로 오래도록 저물어가는 일.
그것도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는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 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아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시집『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중에서《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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