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오 파스

태양의 돌 / 옥타비오파스

자크라캉 2006. 5. 19. 13:35

 

 

 

 

                   사진<sydeny man>님의 프래닛

 

 

 

양의 돌   / 옥타비오파스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순간 하나만이
이 밤을 되찾고, 꿈 하나에 대항하며
모아 놓은 이미지들을 꿈꾸며,
꿈에 대항하며 모질게 조각된,
이 밤의 허무, 글자글자마다
일어선 맥박을 뽑아 버린 순간만이,
한편 바깥에선 시간이 풀려져
내 영혼의 문들을 부순다
잔혹한 시간표를 지닌 세계,
다만 순간 하나 한편 도시들,
이름들, 맛들, 살아 있는 것이,
내 눈먼 이마에서 허물어진다,
한편 밤의 괴로움
내사고는 고개를 수그리고 내 해골,
이제 내 피는 좀더 천천히 걸어간다
이제 내 치아는 느슨해지고 내 눈은
흐려지고 하루들과 연도들
그 텅빈 공포들이 쌓여간다,
한편 시간은 그의 부채를 접는다
이제 그 이미지들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순간이 가라앉아 떠돈다
죽음에 둘러싸여, 밤과
그 음산한 하품에 위협 받고,
질기고 가면 쓴 죽음의
아우성에 위협 받고 있다
순간이 가라앉아 흡수된다,
주먹만한 크기로 닫힌다, 자신의 내부를
향해 익어가는 과실 하나처럼
자신에 입맞추며 흩어진다
이제 내부를 향해 무르익는다, 뿌리를 내린다,
나의 내부에서 성장한다, 모두가 나를 차지 한다
몽롱할 정도로 무성한 잎새들이 나를 몰아낸다,
나의 사고들은 다만 그 새들이다,
그의 수은이 내 혈관들, 정신의 나무,
시간의 맛난 열매들을 순환한다,


오! 살아가기 위한 삶과 이미 살고 있는 삶,
하나의 큰 파도로 바뀌어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물러나는 시간,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지나가고 있다
이제 사라져가는 다른 순간에서
말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초석과 돌멩이의 오후
눈에 보이지 않는 칼들로 무장한 오후를 마주보며
해독할 수 없는 붉은 문자 하나가
나의 피부에 글을 쓰고 그 상처들은
하나의 불꽃옷처럼 나를 덮는다,
나는 자신을 소멸함이 없이 불탄다, 나는 물을 찾는다,
이제 네 눈망울에는 물이 없다, 돌이 있다,
이제 네 가슴, 네복부, 네허리는
돌로 되어 있다, 네 입에선 먼지맛이 난다,
네 입에선 썩어 버린 시간맛이 난다,
네 육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우물이다,


반복되는 거울들의 회랑
목마른 자의 눈동자, 항상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회랑,
이제 너는 무작정 내 손을 잡아끌고
저 끝이 가물가물한 통로로
원의 중심부를 향해 데려가서 버티고 서 있다
횃불 속에서 얼어붙은 하나의 광휘처럼,
껍질을 벗기는, 매혹적인 빛처럼
사악한 자를 위한 교수대처럼,
채찍처럼 탄력 있고 달과 짝을 이룬
하나의 무기처럼 화사하게,
이제 날을 세운 네 단어들이 내 가슴을
파내고 나를 황폐하게 하고 텅비게 한다,
하나씩 하나씩 너는 내게서 기억들을 뽑아낸다,
나는 내 이름을 잊었다, 내친구들은
돼지들 사이에서 꿀꿀대거나 벼랑에 걸친
태양에 잡아먹혀 썩어간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길다란 상처 하나뿐,
이미 아무도 거닐지 않는 동굴 하나,
창문들 없는 현재, 사고가
돌아와, 되풀이되고, 반사된다
이제 그 동일한 투명 속에서 사라진다,
눈 하나에 의해 옮겨진 의식
밞음으로 넘쳐 흐를 때까지 돌아봄을
서로 마주보는 의식:
나는 네 지독한 비늘을 보았다.
멜루시나, 동틀녘에 녹색으로 빛나는,
너는 시이트 사이에 동그라미가 되어 잠들어 있었다
이제 너는 깨어나 한 마리 새처럼 부르짖었다
이제 끝없이, 부숴진 창백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아무것도 네게는 남지 않았다 네 외침만이,
이제 세기들의 말에 나는 발견한다
기침을 해대며 흐릿한 시선으로, 오래 묵은
사진들을 뒤섞으며:
아무도 없다, 너는 아무도 아니다,
잿더미 하나와 빗자루 하나,
이빠진 나이프 하나와 깃털하나,
몇몇 뼈다귀들이 매달린 가죽 하나,
이미 말라 버린 꽃송이 하나, 시꺼먼 구멍 하나
이제 구멍 바닥에는 천년 전에 질식해 버린
한 여자아이의 두 눈이 있다,
한 우물에 묻혀 있는 시선들,
태초부터 우리를 보는 시선들,
늙은 어머니의 어린 시선
덩치 큰 아들에게서 보는 한 젊은 아버지,
고만한 여자아이의 어머니 시선
몸집 큰 아버지에게서 보는 한 어린 아들,
삶의 바닥으로부터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이제 죽음의 함정들이다
아니면 반대로: 그 눈 속에 떨어짐이 진정한 삶에로의 회귀인가?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나의 눈짓
태양의 눈짓하나, 움직임조차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
구제할 길은 없다. 시간은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죽는 자는 스스로의 죽음 속에 묶여
다시 달리 죽을 순 없다.
스스로의 모습 속에 못박혀 다시 어쩔 수가 없다.
그 고독으로부터, 그 죽음으로부터
별수 없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지켜 볼 뿐
그의 죽음은 이제 그의 삶의 동상.
거기 항상 있으면서 항상 있지 않은
거기 일 분 일 분은 이제 영원히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도깨비 왕이 너의 맥박을 점지 한다.
그리고 너의 마지막 몸짓, 너의 딱딱한 가면은
시시로 바뀌는 너의 얼굴 위에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삶의 기념비
우리 것이 아닌 우리가 살지 않는 남의 삶.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인 일이 있는가?
언제 우리는 정말 우리인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되어 본일이 없다.
우리혼자는 현기증이나 공허밖에는
거울에 비친 찌그러진 얼굴이나 공포와 구토밖에는
인생은 우리의 것이어 본일이 없다, 그건 남의 것.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남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떠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란 결국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남들이 내게 나의 존재를 충만시켜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남으로 남겨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존재하고 싶은 허기증, 오 죽음이여, 우리 모두의 빵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