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시론

슬픔이 시인들 만들다 / 정일근 시인

자크라캉 2006. 5. 9. 18:37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 정일근 시인

  

1.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슬픔"이었다.
그 슬픔에 힘입어 처음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전 해 4월, 벚꽃의 도시 진해에서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 제일 먼저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생몰 연대는 길 위에서 끝이 났다.
그날 아버지는 당신의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태워 마산에 있는 친척 댁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택시가 아버지의 생을 덮치고 뺑소니쳐 버렸다.
의식불명이 되어 안방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계셨지만,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친구는 단호하게 사망진단을 내렸다.
사인은 뇌진탕. 마산에서 진해로 출발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헬멧을 어머니에게 씌어주셨다.
그 헬멧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은 바뀌었다.
두 분 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도로 위로 내동댕이쳐졌지만 아버지의 헬멧이 어머니를 구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푼 마지막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만이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가난도 찾아왔다."빚 갚으러 오는 사람 보다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아버지의 재산은 소위 "빚잔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TV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지고 할아버지의 논과 밭도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모는 남루한 일곱 평 반 홉의 양철지붕 아래로
숨어들었고, 어머니는 연탄 부뚜막에 나와 여동생을 재우며 밤늦게까지 술을 팔았다.
친구들이 TV를 보는 시간 나는 술을 날랐다. 친구들이 고급 양장의 동화책을 읽던 시간
나는 안주를 날랐다. 우리 반 고 계집애가 피아노를 치던 시간
나는 손님들이 술자리에서 부르던 이미자, 배호, 나훈아의 슬픈 유행가나 군인들의 군가를 배웠다.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이 나를 눈물 많은 아이로 만들었고,
그 눈물이 나를 세상에 대해 조숙하게 처신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내가 친구들보다 뛰어난 것은
도박과 교과서에 나오는 시나 시조 외우기였다. 두 장의 화투 "끗발"로 승자로 가리는 도박으로
친구들의 돈을 따면 만화방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야키만두를 사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시나 시조를 잘 외운다는 이유 하나로 담임 선생님에 의해 문예반으로 보내졌다.
문예반 지도 선생님은 나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뜻밖에도 경남도 대회에 참가할 진해시 대표를 뽑는 백일장에서 나는 장원을 했다.
"산"이란 제목이었다.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개근상 외에 처음 "상"이라는 것을 받은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월부로 안데르센 동화전집까지 사주시며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어 서른 초반에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우는 슬픈 어머니의 삶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우리 가족이 해체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시 속에 등장하는 것을 금기했다.
아버지는 그 때 내 손등에 났던 사마귀처럼 감추고 싶은 상처였다.
시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내 시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 일찍 길 위에서 끝나버린 아버지의 생이었다.
나는 시로써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며 "아버지의 달걀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내 달걀 속에서
아버지가 태어난다"고 썼다. 아버지란 큰 슬픔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