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시론

오규원의 이론 / 이승훈

자크라캉 2006. 5. 9. 18:20

오규원의 시론


  
                           이승훈



(1) 李箱과 쥘르의 대화



吳圭原은 1965년 [현대문학]지에 [겨울 나그네], 1967년 [우계의 시], 1968년 [몇개의 현상]이 추천되어 시단활동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王者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1981),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는 [사랑의 기교](1975), [희망 만들며 살기](1985) 등이 있다. 그는 시론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우려, 시론집으로 [현실과 克己](1978), [현대시작법](1990) 등의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그의 시는 부르주아적 삶의 위선을 폭로하는 비판정신과, 언어의 한계에 대한 성찰로 요약되는 바, 최근 젊은 시인 이진우는 그의 시적 특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시대의 진리나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오규원이 내세운 믿음은 ‘敗北를 승리로 굳게 읽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敗北는 패배 혹은 패북으로 읽을 수 있다. 敗北를 패북으로 읽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옳은 것으로 배운 많은 일들이 그 반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음을, 또한 그러한 모순이 우리를 항상 좌절시킴을 알고 있다. 이 시대의 교육, 나아가 이 시대의 진리나 믿음을 전적으로 수긍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현실이다. 때문에 오규원이 敗北를 패북으로 읽는다고 해도 엉터리라고 욕을 들을 수 없다. 화를 제대로 내는 사람, 진리를 진리로서 옹호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현실을 오규원은 꼬집고 있다. 그러나 오규원의 작업이 때로 비양거림으로 간주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현실을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오규원의 시가 현실의 背理를 비판하지만, 때로 비양거림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런 지적은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무엇보다도 시인과 현실, 나아가 시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제기된다. 오규원에게는 이런 문제와 관계되는 몇 편의 시론이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시작태도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를 밝힌 것으로는 그의 대표적인 시론 [李箱과 쥘르의 대화]를 들 수 있다. 이 시론의 부제는 ‘또는 自己分析’이라고 되어 있는 바, 여기서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비교적 솔직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과 환상, 60년대 시의 한계, 반추상성, 자기부정의 해체 등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로 그에 의하면 현실이라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李箱과 쥘르가 만나 나누는 대화의 형식으로 된 이 시론에서 현실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인은 쥘르이다. 그의 이름은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쥘르 라포르그  Jules Laforgue 이다. 라포르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으로 근대의 정신적 병폐인 권태와 고독 및 염세주의를 自嘲로 가득 찬 풍자정신에 입각하여 환상적으로 노래했다. 오규원이 현실에 대해 말하면서 라포르그의 입을 빌리는 것은 자신과 라포르그의 관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가 라포르그의 시에서 읽는 것은 단순한 유모어 감각이 아니라 ‘아름다운 自己放棄’이다. 이런 자기방기는 현실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관이 도태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현실관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의 삐에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라포르그의 시 [삐에로의 말]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단지 못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달 耽溺者일 뿐,

그것도 전설이 되려는 것

이외의 딴 목적은 없다.




반항하는 몸짓으로 나의 창백한

중국관리의 소매를 걷어 붙이고서,

입을 원으로 동그랗게 하고서-나는 내뿜는다

십자가의 부드러운 충고를




아! 그렇고 말고, 협잡군의 세기의

문턱에서 전설이 되는 거야!

그런데 어디서 지난해의 달들은 있는가?

그리고 왜 神은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 시에서 특히 오규원을 사로잡은 것은 ‘왜 신은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라는 시행이다. 세기의 문턱에서 라포르그가 읽은 것은 신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신이 사라진 시대의 현실은 이른바 현실의 토대가 상실된 그런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라포르그의 경우 현실이 환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렇게 현실의 원리로 간주되던 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동기로 한다. 이때 우리들의 삶은 ‘전설’이 된다. 여기서 전설이 된다는 말은 삶의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됨을 뜻한다. 남는 것은 ‘아름다운 자기방기’이다. 오규원의 현실인식은, 라포르그의 시를 염두에 두면, 세기말 의식에 토대를 둔다. 그것은 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현실 속에는 우리의 삶이 기댈 수 있는 토대가 상실되었고, 따라서 자아를 방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함축한다. 따라서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규범이나 율법이 존재할 수 없는 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이다.




둘째로 그는 60년대 우리시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60년대 시인들은 내면공간의 객관화라는 영역을 확대시키면서, 동시에 시인에게 개인과 외부 사이에 거리와 위화감을 두게 하고, 시에다 안정감이라는 소극적인 일면을 수용케 한다. 다시 말하면 내면을 형상화한 60년대의 시는 시가 개인을 떠나서도 자유롭고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과, 한편 자유를 양식의 틀에 속박하는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런 주장을 통해 오규원이 관심을 두는 것은 한마디로 개인과 외부, 시인과 작품의 관계이다. 그가 말하는 내면공간을 형상화한 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들은, 비록 그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현대시] 동인들을 겨냥하는 것 같다. 이들의 경우 개인과 외부의 관계, 말하자면 개인과 현실의 관계는 그의 말처럼 거리가 생기고 위화되는 그런 관계로 나타난다. 시인이 개인과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의 시인이 현실 속에서 자기동일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르주아적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사회와 부르주아적 개인의 관계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된다. 부르주아적 개인이란, 사회학의 수준에서는, 이른바 근대화되는 사회 속에 나타난다. 근대화란 두 말할 필요도 없어 모더니티를 지향한다. 이때의 모더니티는, 래쉬 S. Lash 의 견해에 의하면 자율성 혹은 차별성 differentiation 의 개념으로 부연된다. 이런 근대화 과정과 부르주아적 개인의 관계는, 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드러난다.1)




첫째로 초기 근대화의 사회에서는 문화나 미학의 영역에 부분적인 자율화가 나타나고, 따라서 문화는 부르주아적 자기동일성을 구성한다. 둘째로 근대화가 좀더 심화되면 문화는 절대적 자율성을 성취하고, 따라서 사회적 개인인 부르주아적 자기동일성은 파괴된다. 이른바 부르주아적 개인의 위기가 발생한다. 뒤집어 말하면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부르주아적 개인의 자기동일성을 위협하고, 그런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시도로 문화적 미적 모더니즘이 발생한다. 세째로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관심이 다르고, 이 차이가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으로 드러날 때는 벨  D. Bell 이 말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두 가지 모순, 곧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과 문화적 모순은 산업사회와 부르주아의 위화감, 단절감의 지속적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있다. 벨의 경우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모더니즘의 문화와 미적 모더니즘이 반토대주의 antifoundation 을 지향하고, 그것은 크게 ‘거리의 상실’과 ‘질서에의 분노’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2)




결국 60년대의 몇몇 시인들의 시에서 개인과 사회의 괴리현상, 위화관계가 나타난 것은 근대화 초기의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문화적 미적 영역에서의 부분적 자율화와 관계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부르주아적 개인으로서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불안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 위화감을 환기한다. 다음 시인과 작품의 관계는, 위에서 암시했듯이, 시인이 틈입할 여지가 없는 폐쇄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율성 인식은 30년대의 우리시에도 나타났지만, 사회적 필연성을 띠고 나타난 것은 60년대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나는 이 자율성이 사회적 수준에서 좀더 깊이 있게 논의되기를 바란다. 오규원은 60년대 시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일을 그의 시적 방향으로 삼는다. 그것은 작품 속에 시인이 개입하는 일,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연결하는 일로 요약된다. 그의 이런 시도는, 그도 말하고 있듯이, 60년대의 이른바 내면의식의 탐구나 개인을 無化시키는 현대 문명사회의 흐름과 보조가 맞는 추상화 작업이기 때문에 그런 추상성을 부정하려는 노력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셋째로 그는 반추상성을 지향한다. 그가 추상적 세계를 미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것이 추상의 원리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이때의 추상을 미적인 추상의 세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적인 오류라고 본다. 그가 노리는 것은 현실의 추상성이지, 그런 현실을 미적으로 비판하는 모더니즘의 추상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 추상성과 미적 추상성은 동일한 의미를 띠지 않는다. 전자는 이른바 모더니티, 곧 합리성  rationality 의 사회적 실천과 관계되고, 후자는 그런 합리성에 대한 미적 비판인 모더니즘과 관계된다. 오규원은, 남들이야 무어라고 하든, 나는  60년대 시인 가운데 미적 모더니즘을 발전시킨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인이 미적 모더니즘의 한 형식인 추상주의 예술과 사회적 추상성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사태를 다소 소박하게 본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추상적 예술 혹은 자율적 모더니즘에 회의를 느낀 것은 거기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역시 나로서는 지나치게 소박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부르주아적 개인이 위기를 맞고,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개인이 소멸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거대한 추상적 사회적 구조 뿐이다. 이렇게 인간이 소멸한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 다시 인간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모더니스트가 비판하는 휴머니즘을 옹호한다는 그의 입장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의 휴머니즘은 부르주아적 개인의 절대성을 선험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다만 그 자신이 부르주아임을 긍정한다는, 따라서 부르주아로서의 자기비판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규원의 시적 태도를 값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시인으로서의 자신이 부르주아적 삶을 산다는 사실을, 우리 시단의 경우에는, 오규원처럼 솔직하게 긍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는 부르주아적 삶을, 그러니까 부르주아적 위선의 삶을 살면서, 시에서는 무슨 영원이니 초월이니 보편이니, 아니면 민중이니 정의니 하는 말들을 하는 시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대체로 소박한 휴머니스트들과 설익은 교양주의 자들이 특히 그렇다.




끝으로 그는 자기부정을 해체한다. 자기부정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가 감행한 자기방기를 뜻하고, 또한 그것은 자아에 대한 戱化와 자기풍자를 뜻한다. 이런 풍자정신은 부르주아적 개인으로서의 자기비판과 통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부정을 해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그것을 ‘세기의 문턱에서 전설이 되는 것’이라는 말과 관련시킨다. 라포르그가 이 말을 한 것은, 세기의 문턱에서 그가 본 현실의 뿌리 없음과, 그런 뿌리 없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오규원은 뿌리 없는 현실, 말하자면 환상의 환상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런 수용은 예컨대 [환상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에서




利己의 알사탕은 달콤하다

우리가 사는 달콤한 알사탕의 사회

어른이 되어서도 달콤한 알사탕을 달콤하다고 하는 사회

환상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같은 시행들이 암시한다. 그가 라포르그와 다른 점은 이런 환상수용에 있다. 이런 수용은 환상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반휴머니즘의 태도가 아니라, 환상을 수용하는 별도의 주체를 상징함으로써 휴머니즘의 태도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그가 李箱의 자기외출증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환상수용과는 관계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상의 자기외출증이란 부르주아적 개인의 자기동일성 위기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戱化함으로써 희화되지 않는 자기를 구하려는 오규원의 태도와 상실된 자아를 냉정하게 응시하는 李箱의 태도는 다르다. 오규원이 휴머니즘의 태도를 보여준다면 이상은 반휴머니즘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오규원은 관념적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비판적 휴머니스트이고 그런 비판성은 자기풍자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계몽 합리성을 신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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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훈, [전봉건론-625 체험의 시적 극복], [문학사상], 1988. 8.

2) A. Lemaire, Jacques Lacan, trans. by D. Macey, Routledge & Kegan Paul, London, pp.206-211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