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된 노인 / 고재종
저처럼 금숭어 튀어오르며 그리는 금빛 아치의 순간을 보는 저 노인, 저리는 발 담그지 않을지라도 강물은 이미 노을에 잘 감전돼 있다. 하룻내내 잘 익은 포도주빛 노을, 그 속에 봉우리를 헹구는 병풍 친 산들은 또 검푸러지며 능선들을 미끈히 뽑을 때 저 노인, 거친 노동의 단내 나는 숨결도 이제 강심으로 잦아드는가. 적막강산, 이렇게 흘러도 좋다지만 아직도 허기를 못 면한 소쩍새는 물살을 더욱 흔들어놓는 지금, 저 노인의 가난도 절뚝거리며 강변을 돌아온다. 때마침 백양나무 잎새를 흔드는 바람, 이미 한번 스쳐간 인연들도 우수수거리는 소리만 있어, 그 소리만으로도 저 노인, 온몸 사무치게 물살치곤 한다. 그러니 생은 얼마나 깊고 푸르른 것인가. 어깨에 멘 삽이 몇 십 개 닳도록 평생을 파보아도 그러나 회한과 뉘우침뿐, 다만 강물은 유장하고 산은 우뚝해선 강으로 오늘을 씻고 산으로 내일을 세웠느니. 적막강산, 들어서는 산집 마당에 오늘처럼 또 금빛 노루가 맑은 눈망울로 저 노인 귀가를 기다린 적도 있긴 있다.
< 고재종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중에서 『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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