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홀로된 노인 / 고재종

자크라캉 2006. 4.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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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D70

 

로된 노인 / 고재종

 

 

저처럼 금숭어 튀어오르며 그리는

금빛 아치의 순간을 보는

저 노인, 저리는 발 담그지 않을지라도

강물은 이미 노을에 잘 감전돼 있다.

하룻내내 잘 익은 포도주빛 노을, 그 속에

봉우리를 헹구는 병풍 친 산들은

또 검푸러지며 능선들을 미끈히 뽑을 때

저 노인, 거친 노동의 단내 나는 숨결도

이제 강심으로 잦아드는가.

적막강산, 이렇게 흘러도 좋다지만

아직도 허기를 못 면한 소쩍새는

물살을 더욱 흔들어놓는 지금, 저 노인의

가난도 절뚝거리며 강변을 돌아온다.

때마침 백양나무 잎새를 흔드는 바람,

이미 한번 스쳐간 인연들도

우수수거리는 소리만 있어, 그 소리만으로도

저 노인, 온몸 사무치게 물살치곤 한다.

그러니 생은 얼마나 깊고 푸르른 것인가.

어깨에 멘 삽이 몇 십 개 닳도록

평생을 파보아도 그러나 회한과 뉘우침뿐,

다만 강물은 유장하고 산은 우뚝해선

강으로 오늘을 씻고 산으로 내일을 세웠느니.

적막강산, 들어서는 산집 마당에

오늘처럼 또 금빛 노루가 맑은 눈망울로

저 노인 귀가를 기다린 적도 있긴 있다.

 

 

 

 

< 고재종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중에서 『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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