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혁명의 불꽃은 타고 있다
“죽은 게바라가 산 독재자를 물리친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된 지 30년이 된 현재 그가 추진했던 혁명 은 아직 미완일 뿐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바라의 죽 음이 그 자체로서 남미 등 많은 지역의 반독재투쟁의 지표로 오늘날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게바라의 후예들’은 그가 직접 활동했던 아프리 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는 물론 멕시코·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 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
게바라의 후예들로는 우선 그가 <게릴라전>의 저자인 데서도 알 수 있듯 전세계 반정부무장투쟁 조직을 들 수 있다. 올 들어 <체 게바라-그 혁명적 삶>이라는 책을 펴낸 미국 전기작가 앤더슨의 게바라에 대한 관심도 이들 게릴라 무장투쟁 조직들에 대한 취재에서 시작됐다. 앤더슨은 80년대 중반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등 전세계 게릴라 조직을 찾았다. 그때 그는 지역적 차이를 넘어 똑같은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게바라를 존경하고 게바라를 따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시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존경을 받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의문에서 게바라 연구를 시작했다고 당시를 되돌아본다. 이들 전세계 게릴라조직 중 특히 멕시코 농민반군 ‘사파티스타민족해방 군’의 지도자인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게바라와 무척 닮은꼴로 불린다. 지난 94년 1월1일 ‘억압받는’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 원주민을 이끌고 봉기를 주도한 그는 게바라와 같이 중산층 출신의 인텔리겐차다.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39)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을 유학한 뒤 치아파스주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원주민 농민들의 억울한지를 체감하고 ‘혁명가’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그는 정부의 수배 속 치아파스주 라칸돈 정글 속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또 게바라가 지난 65년 해방군을 조직해 싸웠던 콩고(옛 자이르)에서도 올해 그의 노력이 꽃을 피웠다. 당시 게바라와 함께 싸웠던 반군지도자 로랑 카빌라(56)가 지난 5월17일 수도 칸샤사를 점령한 것이다. 이들 반 군은 수십억달러를 부정축재했던 모부투 세세 세코의 32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오는 99년 4월까지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을 약속했다. 결국 65년 당시 게바라의 콩고혁명 노력은 32년이 지난 이제야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러나 사실 9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게릴라 활동이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한때 ‘내전 전시장’으로 불렸던 중남미만 해도 현재는 멕시코와 콜롬비아·페루 등 단 3곳에서만 게릴라 활동이 진행중이다. 또 남아 있는 무장투쟁조직도 콜롬비아의 경우처럼 ‘변질’된 경우도 있다. 콜롬비아의 무장투쟁조직은 이미 마약거래에 관여해 상당한 이권을 챙기 는 등 그 순수성을 비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한 정부관계자는 체의 낭만적인 이데올로기는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혹평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아바나의 역사학자 라사로루이스 곤살레스는 “그의 혁명이론 중에는 시대와 걸맞지 않은 점이 많다”면서도 “현 시대의 게바라 열기는 이런 상황변화 속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당시 체의 무장투쟁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군사통치로 대다수 민중들이 정치과정서 배제된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현재는 그의 이상을 실현할 정치적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게바라의 후예들은 그의 ‘게릴라론’을 따르는가 여부에 따라 결정할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한 ‘인간세상’을 위해 노력하는지로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농민반군만 해도 정당으로의 진출 등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중이다. 이런 광의의 게바라 후예의 예로는 지난 73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67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 군사정권이 무너지는 데 ‘죽은 게바라’가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한다. 당시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학가는 볼리비아 전장에서 숨진 게바라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조국에서 ‘게바라의 후예’로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 이런 이들의 고민은 곧 거대한 힘이 돼서 독재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죽은 게바라’의 영향력은 최근 그의 유해가 발견된 볼리비아에서도 확인된다. 게바라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볼리비아에서는 또다른 사회주의 지도자인 마르첼로 키로가의 주검을 찾는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볼리비아의 마직막 독재기간인 지난 80년 7월 살해됐다. 키로가도 유해가 발견되기 전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어디에 묻혀 있는지, 어떻게 살해됐는지 여전히 의혹에 싸여 있다. 하지만 볼리비아 민주단체들은 “30년 가까이 된 게바라의 유해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17년밖에 안 된 키로가의 주검을 못찾을 이유가 없다”면서 수색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이 아니다. “부자에게 부를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게바라의 목표는 아직도 부익부 빈익빈이 편재한 인간사회에서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변함없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민운동 으로든, 노동운동 혹은 정치행위의 행태로든 이 목표를 추진하는 이들에게 게바라는 이미‘살아 함께 하는 전우’다. 김보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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