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들

두노이의 비가 / 제9 비가

자크라캉 2006. 3. 17. 23:07

두이노의 비가

 

 

 

R.M.릴케

 

 

 

제 9 비가

 

 

왜, 우리 현존재의 짧은 순간을 월계수처럼
다른 모든 초록빛보다 좀더 짙은 빛깔로,
나뭇잎 가장자리마다 (바람의 미소처럼)
작은 물결들을 지니고서 보낼 수 있다면,
왜 아직도 인간이기를 고집하는가, 운명을
피하면서 또다시 운명을 그리워하면서?....


오, 행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상실에 한 발 앞선 한시적인 누림일 뿐.
호기심 때문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쓰기 위함 때문도 아니다,
월계수에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은 이곳에 있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나름대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더 덧없는 존재인 우리를.
모든 존재는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
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 :
지상에 잇었다는 사실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들어 그것을 수행하려 하며,
그것을 우리의 두 손 안에, 넘치는 눈길 속에,
말문이 막힌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그것이 되고자 한다. ㅡ 누구에게 주려고? 아니다,
그 모든 걸 영원히 간직하고만 싶다.... 아, 슬프다, 우리는
다른 관계 쪽으로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더디게 익힌 바라보기도, 여기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고통을 가져간다. 무엇보다 존재의 무거움을 가져간다,
사랑의 긴 경험을 가져간다, ㅡ 그래,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가져간다. 그러나 훗날,
별들 아래서, 왜 근심할까 : 이들이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결국 방랑자 역시 산바탈에서 계곡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줌의 흙이 아니라,
어렵게 익힌 말, 순수한 말, 노랗고 파란 용담꽃이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는 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 집,
다리, 우물, 성문, 항아리, 과일나무, 창문 그리고
잘해야 : 기둥, 탑이라고.... 그러나, 그대는 알겠는가, 이것들을
말하기 위해, 사물들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재촉하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가운데 모든 것이 황홀해지도록 한다면,
이것은 말없는 대지의 은밀한 책략이 아닌가?
문턱 : 사랑하는 두 사람에겐 무엇을 뜻할까,
오래된 그들의 문턱을 조금 더 닳게 만든다는 것은,
그들보다 앞서간 많은 사람들 뒤에 그리고
앞으로 올 많은 사람들에 앞서서...., 가볍게.


여기는 말할 수 있는 것을 위한 시간, 여기는 그것의 고향이다.
말하고 고백하라. 예전보다 더 많이
사물들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물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모습이 없는 행동이 그것들을 밀어내며 대체하기 때문이다.
껍데기들로 덮여 있는 행동이다, 안쪽에서 행동이 너무 커져
다른 경계를 요하게 되면 금방 깨져버리고 마는 껍데기들로.
우리의 마음은 두 개의 망치질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의 혀가
이[爾]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찬양을 그치지 않듯이.


천사를 향해 이 세상을 찬미하라, 말로 할 수 없는 세상은 말고,
호화로운 감정으로는 너는 천사를 감동시킬 수 없다 ; 천사가
모든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우주공간에서 너는 초심자일 뿐이다.
그러니 천사에게 소박한 것을 보여주어라, 켳 세대에 걸쳐 만들어져
우리 것이 되어 우리 손 옆에 그리고 눈길 속에 살아 있는 것을.
그에게 사물들에 대해 말하라. 그는 놀라워하며 서 있으리라 ; 네가
로마의 밧줄 제조공 옆에, 나일 강의 도공 옆에 서 있었듯이.
사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순수한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편인지,
구슬픈 고통조차 어떻게 순수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 사물로서 봉사하거나
죽어서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지, 바이올린조차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공간으로 넘어가는지 천사에게 보여주어라. ㅡ 그리고 이들 무상함을
먹고 사는 사물들은 알고 있다, 네가 그들을 칭송한다는 것을 ; 죽어가면서,
이들은 가장 덧없는 존재인 우리에게서 구원을 기대한다.
이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ㅡ 오 끊임없이 ㅡ
완전히 우리 자신으로 변용시켜주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 ㅡ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ㅡ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사명이랴?
대지여, 내 사랑이여, 나는 그것을 해낼 것이다. 오 내 말을 믿어라,
나를 얻기 위하여 더 이상의 그대의 봄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한 번의 봄, 단 한 번의 봄도 나의 피에게는 너무 많은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는 그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항상 그대의 말이 옳았다, 그대 자신이 해낸 성스러운 생각이란 친근한 죽음이다.


보라, 나는 살고 있다. 무엇으로? 나의 어린 시절도 나의 미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넘치는 현존재가
내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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