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시간의 얼굴 - 심은섭

자크라캉 2021. 2. 13. 09:33

 

사진 <라온볼링 카페>에서 캡처

 

      시간의 얼굴

 

 

      심은섭

 

 

 

     분열하는 스물 네 개의 얼굴로 그가 달려온다 그때 꽃들은 징을 울렸으며, 눈먼 시계공은 청동시계의 태엽을 감고 있다 그에게 순종을 선언한 강물은 한 없이 직선으로 흘렀다 마른 소금을 굽던 바다도 어김없이 앳된 해를 출산 중이다

 

    오후엔 그가 들판을 지나갈 거라는 풍문이 나돌았다 사과나무는 각혈로 피워낸 꽃을 입양하기 시작했고, 이마에 화상을 입은 능금은 서둘러 붉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암사자들은 넓은 사냥터를 급매하려고 총잡이들과 협상이 한창이다

 

    저녁의 입속으로 그가 태양을 밀어 넣는다 그때 어떤 사내가 젖은 몸을 달빛에 말리며 마른 장작처럼 가늘어진 아버지의 두 다리 사이로 예순 네 개의 달이 저무는 것을 보고 있다 며칠 전 실종된 크로마뇽인이 끝내 운석으로 발견되었다

 

 

 

-2021년 《상상인》 창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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