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밀월 / 박무웅

자크라캉 2010. 12. 5. 13:05

 

사진<후기로니>님의 카페에서

 

 

/ 박무웅

 

사랑 하나 훔치고 싶다

 

능소화 핀 후원 담장을 몰래몰래 넘어가

정지문을 밀치고

심장의 숨소리를 죽이고

오동나무에 걸린 달 하나

훔치는 밤을 갖고 싶다

 

어둠의 보자기에 달빛 환한 사랑을 서리해서

바람소리도 풀빛소리도 그친 지름길로 돌아와서

추억의 귀밑머리를 풀어

오동나무 꽃씨 같은 기쁨을 터뜨리고 싶다

 

별당에 황촛불 펄럭이는 그림자 아래서

사랑과 천년 가약을 맹서하는

어리석은 사내가 되고 싶다

 

내 전생과 후생에서

사랑의 소문 하나 훔쳐 이름을 감춘

임꺽정이 되고 싶다

 

 

 

출처 : 2010, 『애지』,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