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3회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당선작]
사진<아래아 마을>님의 카페에서 캡처
諺簡文 /
죽음의 꼬리처럼 지하의 시간은 길고 길었습니다.
열두 매듭으로 정한 거처는 다 삭아서, 한 번쯤은 돌아누울까도 생각했습니다
이 몸은 뱃속의 아이를 무덤으로 정한 바 있고
아이는 어미의 마지막 안간힘을 먹고서야 조용해졌습니다.
둘 중 누가 무덤이란 말입니까
세상, 돌아누워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이 땅은 등이 되기도 하고 천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달래지 않으니 아이도 울지 않았습니다. 꽃가루로 참 오랜 세월 요기를 대신했고 얼레빗 한 자루로 여염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누운 마음이라도 일으켜 뱃속의 태아를 뛰어놀게도 하고 싶은 날들, 다만 가물, 기억이라면 기억일 별빛이 그리웠습니다. 이곳엔 그 흔한 窓이나 무너진 천장도 없으니 안락하기로는 별탈이 없겠습니다만 어느 윤달조차 놀러오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나는 몇 겹의 무덤이었습니다.
태중에 닮은 人形을 넣는 서양 소품이 있다지요
서로 무덤이 되어 다행한 세월입니다
병인윤시월 함께 넣어진 슬픔엔 공기도 소진하였고 검은 머리엔 흰 세월이 간간히 섞여 있습니다. 같이 넣은 언문의 글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답니다.
살던 곳, 낯익어야할 테지만 모두 캄캄한 초면일 뿐 낯익은 一家가 모여 있는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습의襲衣에 적힌 날짜도 희미한데
아아, 어느 무덤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태중의 아이와 이 몸, 어느 쪽이 무덤이란 말입니까.
*파평윤씨 모자 미라: 병인윤시월 난산으로 아이와 함께 사망, 언문으로 쓰여진 편지가 나왔으나 훼손으로 판독불가.
출처 : 『문학과 사상』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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