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주에누리>님의 블로그에서 캡쳐
뜨개질 / 김대성
-백석의 운을 빌어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시기 때문에
세상에는 눈이 내린다
어머니는 27억 광년을 가야할 거리에 계신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시기에
늘 거실 한쪽 연탄난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신다
한쪽에 초라한 내가 있다
어머니 뒤에는 언제나 새하얀 아침이 있다
눈을 들어 어머니의 손을 보니 손이 차시다
그 찬 손이 쓱 스스슥 움직이며 바늘이 엇갈리니
한 코 또 한 코 세상이 엮어진다
하얗게 타들어가는 연탄처럼
난로 위에 주전자도 숨이 차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쉼 없는 손놀림으로
밤을 밀어내고 계신다
저건 분명히 내 옷일 것이다
하며, 잠이 들었는데
이른 아침 눈을 떠 보니 식은 난로 옆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
커든을 젖히고 밖을 보는 순간
온 세상이 하얀 털실로 덮여 있다
나뭇가지 위에도
벽돌담 철판 위에도
어머니가 밤새 서걱이며 짜 놓으신
소복한 세상
눈 오는 밤은 이승과 저승에 교집합
나는 어느새 27억 광년을 달려온 것이다
출처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