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onyx[post-asone]>님의 카페에서
소립자 2 / 허연
기억은 이미 낡은 것이다.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고 있던 줄무늬 장갑이라든지, 막 잠에서 깨어나 받는 목소리라든지, 술에 취했을 때 눈에 내려 앉는 습기라든지.
낡은 것들이 점점 많아질 때 삶은 얼마든지 분석이 가능하다. 어떤 골목길에 내가 들어섰던 시간, 그 순간의 호르몬 변화, 가로등 불빛의 밝기와 방향, 그날의 날씨와 내 주머니 사정까지...
그 골목에서 이런 것들이 친밀감의 운동을 시작했고 나에게 수정되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 했고, 누구는 그날 파열음이 들렸다고 했으며, 누구는 그날 그냥 날이 흐렸다고 했다.
바람이 분다. 분석해야겠다.
출처 : <시와반시> 2010년 여름호
[약력]
허연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