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리재>님의 카페에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을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상처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닳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드는 거 좀 보세요.
출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코리아
[약력]
- 경남 남해 출생
- 1993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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