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종순>님의 카페에서
꽃 미용실 / 정채원
20년전 다니던 꽃 미용실
내가 지금 딸만 할 때 다니던 꽃 미용실
나중에 엄마꽃과 딸꽃이 함께 다니던 꽃
미용실, 생머리를 놔두어도 마냥 꽃이던
꽃시절, 꽃을 괜시리 들들 볶던 꽃 미용실
실컷 졸다 깬 다섯 살 꽃이
숏컷된 거울 속 자기 머리를 보곤
으앙 울음을 터뜨리던 꽃
미용실, 울음 그치지 않는 꽃을 달래다
나도 함께 울뻔 하던 꽃 미용실
결혼을 며칠 앞둔 딸아이
언젠가 제 딸과 함께 괜시리
머리 볶으러 미용실 찾을 때,
그땐 나도 20년 전 져 버린 꽃
미용실처럼 더 이상 아무도 찾지 못할
숨은 꽃이 될까
숨은 꽃 굳이 찾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마냥 꽃일
딸과 딸의 딸
세상 아무리 섣불리 딸수 없는
꽃과 꽃의 꽃
그래서 세상은 꽃이 지지 않는 나라
[시인약력]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6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나의 키로 건너는 강」등이 있음.
정채원의 「꽃 미용실」을 배달하며
딸은 꽃이에요. 그냥 꽃이에요. 그냥 그대로가 꽃이에요. 여름 화초처럼 싱그럽죠. 때 묻은 데가 없어요. 겉과 속이 다 그래요. 치장이 왜 필요하겠어요. 들들 볶지 말아요. 그냥 꽃인 것을. 무심코 ‘꽃 미용실’에 앉아 깜빡 졸다 깬 후 꽃이 거울을 통해 ‘들들 볶인 꽃’을 본다면 얼마나 속상했을지 짐작되고도 남아요. 딸의 취향대로 있게 해주세요. 꽃 속에서 꽃이 피니 꽃은 점점 더 아름다워요. 세상엔 꽃이 지지 않죠. ‘꽃 미용실’도 문 닫을 일 없어요. 다섯 살 꽃을 또 ‘꽃 미용실’로 데려가는 엄마꽃이 있을 테니까. 물론 ‘꽃 미용실’ 미용사도 딸과 딸의 딸을 두었겠죠. 꽃이 으앙으앙 울어대는 ‘꽃 미용실’. 이런 풍경의 유전을 생각하며 빙긋빙긋 웃는 아침이에요.<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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