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제11회 시인세계 신인 당선작/온몸이 전부 나사다외 4편/하린

자크라캉 2008. 3. 5. 14:04

 

                              사진<3DsMAX초보만!!!!!!!!!>님의 카페에서

 

[제11회 시인세계 신인 당선작]

몸이 전부 나사다 외 4편 / 하린(河潾) 

                                     

하청에 하청을 거듭할수록

본체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사내들이

자취방에 모여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음란비디오를 보던 밤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이 나온다

씨발로 시작해서 좆도로 끝나는 환각제 같은 배설물이

밤하늘 가득 사정되고 서러운 별들은 촘촘해진다

매혹적인 망사스타킹의 여자

아! 신음소리 까지도 친절하다

더 이상 체위는 신선하지 않고

떠난 애인들만 머릿속에서 지쳐간다

그렇게 욕구불만의 밤은 섣부른 발기로 졸아 들고

꿈속에선 CF 속 여자 배우와 자동기계가 되어 섹스를 한다

에어컨을 선전하며 바람을 매번 일으키는 인기 절정의 여자

그녀가 재생시키는 웃음의 값은

이십년 동안 결근 한번 안하고

나사를 박아야 하는 질긴 시간의 값이다

하루 종일 이천 개도 넘는 수나사가 암나사와 만난다

나사들은 화려한 디자인에 갇혀 죽었고

생각은 모두 단순화되어 규격 박스 안에 담긴다

더러는 조인 나사를 풀고 싶어 떠났던 녀석도 있다

조금 더 안쪽의 중심부품으로 살아 보겠다고

차선을 자꾸 변경하다 다시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옥탑방 구석에 버려진 소주병 같은 녀석들

그 녀석들 다 돌아와 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포르노를 본다

온몸이 전부 나사인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청산가리 사내들

신나를 들이 붓고 싶은 밤을 지난다


개를 접다


꼭 생리하는 날 물을 준다 건망증에 걸린 후

물 주는 날을 일일이 맞출 수 없는 여자

한 달에 한번 산세베리아에게 하혈을 권한다

물받이로 내려온 건 30일 동안 쌓인 욕망의 파편일까?

정해진 양만큼만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식물의 본능 앞에 여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전자파에 취한 몸으로 만월(滿月)을 기다렸던 산세베리아

건조한 언어만 되풀이 하는 TV 옆에서

행복과 불행의 조건을 드라마로 세뇌당하고 있다

여자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뉴스가 전한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왔던 남자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지독한 황사가 곧 덮쳐올 거라고 주절댄다

늘 가슴 속에 거대한 설계도를 품고 있던 남자는

정밀한 기계처럼 움직이며

사랑도 오차 범위 안에서만 허용했다

이 화분 좀 맡아 줘 꼭 찾으러 올게

남자의 다짐은 짧은 간결체였다

폐경기에 접어 든 엄마가 욕을 하고 갔지만

여자는 엄마의 싸구려 파마약 냄새에 더 화가 났다

목 안에서 모래 바람이 소용돌이 쳤고

산세베리아는 끝내 꽃으로 둔갑하지 않았다

이파리 끝이 뾰족하게 핏대를 세운다

달의 피를 모조리 마셔버린 기세로

하늘을 향한 아테나가 되어 주려나?

아주 조금씩 달이 날개를 접는다



가운에 대한 기억


 

저 노인이 무슨 일로 1번 국도를 건너 가려했을까?

그런 구차한 질문 따윈 던져서는 안 되지요

낯선 사람에게 알몸을 다 맡긴 배짱 좋은 노인이

저승과 이승이 갈라서는 길목에서

먼 길 가다가 제 몸 확인하러 오기 전에

모든 과정을 냉정하게 처리해야만 합니다

빈틈을 보이다간 울컥 두려움이나 역겨움이 올라와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밤새 뒤척이게 되지요

급속 냉동으로 굳어진 몸을

마트에서 산 냉동 닭이라 생각하며 구석구석 닦아야 합니다

탄력을 잃은 몸매의 암컷이군요

검버섯을 잔뜩 피워낸 얼굴과 깡마른 손

볼품없이 힘줄만 튀어나온 발을 보니 고생 꾀나 했겠습니다

쪼글쪼글 정기를 다 내준 가슴을 보세요

오래 전 가동을 멈춘 폐공장이 같지 않습니까?

컴컴한 사타구니를 보니까 자식을 다섯 이상 낳았고

너무 일찍 영감을 떠나보낸 섹스의 흔적마저 희미하네요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배설을 하는 겁니다

눈을 감지 마세요

사체 앞에 뻔뻔스러워져야 진짜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휘거나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춰놓고

마지막으로 모든 구멍마다 솜으로 틀어막으세요

외떨어진 마을에서 농사나 짓는 과부댁 노인은 이제

일당을 지불받게 될 최고의 물건이 된 겁니다

사연도 없는 고사목이 된 거지요

 

 


신병원이 있는 그림


1.


가까운 숲 속에 정신병원이 있다

병원의 불빛은 밤마다 야광찌처럼 빛나고

하루 종일 울거나 웃는 자들이 그곳에서 늙어간다

의사들은 영혼이 가장 맑아지는 시간을 골라

야생의 이미지로 가득 찬 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준다

동물의 왕국과 공룡대탐험을 보면

3D입체 게임을 즐기는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바보를 흉내 낸 코미디 프로를 가장 좋아한다

 

일제히 소등을 하면 병원은 잠수함처럼 가라앉는다

그 때부터 소문은 산 아래 마을로 번져간다

눈깔 뒤집힌 짐승이 매미처럼 철창에 매달려 울부짖다

진정제를 투여 받고 죽어 간다는 소리

간호원과 은밀한 거래를 하여 탈출한 짐승이

먹을 걸 훔치러 마을로 내려와

어린 아이의 심장을 파먹는다는 소리

두려운 소문이 조무래기의 베개 아래로 와서 웅성거린다

누군가 다년간 흔적이 이불 위에 그려지곤 했다


2.


미칠 일을 처음 경험한 나이는 열일곱 살 때였다

친구 하나가 특이하게 양쪽 손목에 힘줄을 따냈다

붉은 반항심을 폭발적으로 토해 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럴 거면 빨리 죽어버려

소리친 소녀는 전학을 갔고 한 동안 교사들은 진지해졌다

뼛가루가 뿌려진 강물에서는 젖은 비명 소리가 자꾸 울렁거렸고

종일 강가에 앉아 빈 낚시 바늘만 꽂았다

하루는 외제차 한 대가 큰 길을 지나 정신병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자 아이가 코스모스를 잡으려고 차창 밖으로 금간 손목을 내보였다

손목이 금간 아이와 코스모스, 외제차가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낚싯대에서 묵직한 신호가 왔다


 

추한 가족사3

―유리 상자


소읍의 쇠약해져 가는 학교 앞에서

유리를 팔던 어머니는 그 당시

틈을 가장 잘 이용하는 마술사였다

한동안 학교의 유리는 주기적으로 깨어졌고

보수적인 태엽만 돌리던 교장 선생의 훈계는

머릿속에서 이미 파열된 상태였다

어설픈 청춘들이 자해하듯 담뱃불을 자꾸 지졌다

날을 세우고 싶던 아이들은 틈 하나씩 만들고 사라졌고

어머니는 환상의 빈자리가 커지기 전에 새 유리를 끼웠다

포개진 유리 사이로 공업용 다이아몬드 칼이 지나가면

유리들은 모범생 흉내를 내며 일렬횡대로 갈라졌다

그렇게 틈의 배후엔 유리가 있었고

문을 열 때마다 위선(僞善)으로 가득 찬 어머니가 드르륵 거렸다


직접 유리를 잘라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깨진 유리를 가지고

만취한 아버지를 매일 도려내는 일 뿐이었다

화학 물질 가득한 신발공장에서 문득

유리 구두를 신고 날아오르고 싶다던

누이의 유언이 연서(戀書)용 편지지를 타고 날아왔고

어머니는 더 이상 유리를 자르지 않았다

마네킹처럼 변한 내가 자라는 것을 거부한 채 

어머니가 만든 쇼윈도 안에서 박제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작가소개]

하린(河潾)

전남 영광 출생. 1998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시 당선. 현재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시전문지 계간《열린시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