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자크라캉 2008. 1. 30. 16:14

 

사진<자연과 밀리터리> 님의 블로그에서

 

떼를 베끼다  /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르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갯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
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空中이다, 라고 쓴다



- 시집 :2007년 <새떼를 베끼다> 문학과지성사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진 입들 / 이영옥  (0) 2008.01.31
철길 / 이영옥  (0) 2008.01.31
정육점 여주인 / 진은영  (0) 2008.01.18
나비 / 신용목  (0) 2008.01.14
빈터 / 심재상  (0) 200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