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법

詩人들의 지나친 은유가 詩를 망친다.

자크라캉 2007. 12. 18. 11:33

들의 지나친 은유가 詩를 망친다.


글.사진 - 한빛/손현희


시인들이 하는 말 중에,
‘어떤 사물이나 의미를 다른 사물이나 의미에 유추하여 표현하는 여러 가지 비유에 의해 시가 완성되고 또 그렇게 하되,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언어를 가지고 잘 비유함으로써 좋은 시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좋은 시 쓰기에 있어 은유가 너무 많아 시를 어렵게 하고 도대체 무슨 글인지 알아 볼 수 없도록 쓰고 있다. 더구나 어떤 시는, 마치 은유가 시 쓰기의 전부인 것처럼 해서 정말 무엇을 쓰려 했는지 알 수 없도록 해 놓기도 한다. 글 제목과는 전혀 동떨어진 내용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종종 본다.


가장 문제인 것은(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낱말 퍼즐을 맞추듯, 어려운 낱말들만 골라서 시에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누가 더 어렵게 쓰는가? 를 시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때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낱말을 찾아내어 잘도 끼워 맞추어 놓는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말하기를 시를 이해함에 있어 ‘독자들의 몫’ 이라는 말로 덮어 놓으려 한다. 물론, 시를 쓴 사람의 생각과 뜻을 읽는 이가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자들의 몫이라 하면서 오히려 독자가 그 시의 십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다면 과연 ‘잘 쓴 시’ 라고 볼 수 있을까?


흔히 시 쓰기에 도움을 주는 책을 보면,
‘비유를 하되 기성 시인들이 많이 사용하여 이미 상식화가 된 시어를 쓰는 것은 피하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남이 쓰지 않는 낱말들만 골라서 시에 끌어 쓰기 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어떤 시는 마치 사전을 앞에 펼쳐 두고 어려운 낱말을 일일이 찾아내어 쓴 것 같은 시도 있다. 또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 쓰기에 있어서 은유법이라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하고 싶었던 말이나 쓰려고 했던 시의 대상은 오간 데 없고 에둘러 포장해 놓은 은유 때문에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늘 ‘쉬운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든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고 생각한다. 만일 보여주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면 일기로 쓰면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시가 읽기 어렵고 이해가 안 되면 사람들이 즐겨 봐 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요즘은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너도나도 시인으로 등단하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시집을 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시집의 홍수를 이루는데, 오히려 독자는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시집마다 너무 많은 은유와 어렵게 쓴 낱말들이, 읽는 이들의 눈길을 거둬들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시를 읽는 것도 느낌이 있어야 할 텐데, 눈으로 읽어 바로 이해가 안 되는데 무슨 느낌이 있을까? 느낌을 받기 전에 낱말 풀이부터 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이 시집 곁에 사전을 펼쳐 두고 그것을 읽을까?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의 곡조와 가사가 마음을 울려서 느낌이 오듯이, 그런 마음으로 시를 읽기를 원하는데 이건 느낌이 오기 전에 뜻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시인들이여!
쉬운 시를 쓰도록 하자!
쉽고 이해가 잘되는 시를 쓰자!
시를 읽는 이가 없다고 탓하기 전에 읽는 사람마다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우선 이해가 되는 시를 쓰도록 하자!


읽는 사람의 눈을 고급스럽게 높이려 하지 말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의 눈에 맞추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