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시인

이것은 시가 아니다 / 이승훈

자크라캉 2007. 10. 26. 19:42

 

사진<사전과 육혈포>님의 카페에서

 

 

것은 시가 아니다 / 이승훈

 

 

 

한양대 교수로 직장을 옮긴 1980년대 초 밤이면 김일성
이 자신의 집을 폭파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지붕
위엔 낯선 비행기가 떠 있다고 편지를 보낸 제자가 있었
다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하고 결혼에 실패한 그는 대학 시
절 서울 집으로 간다며 철길을 계속 걸어간 적이 있지 어
느 날은 그의 시집을 영국에서 출판하게 되었으니 선생님
이 평론을 쓰셔야 한다는 편지도 보냈다

  그 무렵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연구실 문을 열고
웬 낯선 남자가 을어왔다 나이는 서른 정도 나을 보더니
대뜸 선생님이 불쌍해요 그가 한 말이다 잠바 차림에 무
언가 들고 있었다 그는 전라도 광주에서 시를 공부하는
청년으로 선생님 생각이 나서 도시락을 싸 왔다며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풀었다 그때 조교들이 들어와 그는
조교들과 함께 나갔지 1980년대 초엔 왜 이런 일들이 많
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훈 열다섯번째 시집…이것은 시가 아니다


“나는 시가 싫어서 시를 쓴다. 쓸 것이 없는 시, 시 되기를 거부하는 시.”

우리 시대, 독보적인 모더니스트인 이승훈 시인(사진·65·한양대 국문과 교수)이 열다섯번째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세계사)를 펴내며 들려준 시론이다. 다소 알쏭달쏭한 이 말에는 시의 본질이 없는 바에야 시인이 시에 갇히기보다는 차라리 시를 해방시키자는 숨은 의미가 새겨져 있다.

어떻게 해야 시도 시인도 함께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이런 시. “
김춘수 선생님 전화야요 난 아내가 준 전화를 받는다 (중략) 이상해 돌아가신 선생님이 어떻게 전화를 했을까? 아마도 누군가 김춘수 선생님이라고 속였을 거야요 아내의 말이다 아니야 선생님 목소리가 맞아 도대체 알 수가 없군 돌아가신 선생님이 전화를 하다니! 난 오늘도 꿈을 꾼다.”(‘바람 부는 날’ 일부)

그는 꿈에서 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꿈에는 어떤 논리도 필요치 않다. 거리도 시간도 상황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지워지고 없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꾼 꿈이었기에 내가 꿈을 꾼 주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꿈에 의해 꿈을 꾼 ‘모르는 주체’와 만날 뿐으로, 그 ‘모르는 주체’가 가끔 현실에 구멍을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순수도 서정도 폭력이다 (중략) 서정시가 끝난 시대에 서정을 주장하는 건 불순하고 순진하고 천진하고 시가 갈 길은 무수히 많다 갈 데가 없으므로 많고 그러므로 갈 곳이 없고 지금 책상에 날아와 앉는 파리처럼 갈 곳이 없고”(‘서정시’ 일부)

그는 삶을 초월하는 어디 머언 곳에 이슬처럼 순수한 진리가 있다고 믿는 시인들을 위선자로 치부하며 이렇게 강변한다. “시 따로 놀고 인생 따로 노는 위선자들은 순수도 서정도 폭력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우리 시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하기야 이런 인간이 어디 시인들 뿐이랴? 시인들 가운데 가짜도 많고 물론 나도 가짜지만 나는 최소한 내가 가짜라는 건 안다.”



<약력>

 강원 춘천 출생
· 한양대 국문과 및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현대문학상·한국시협상 수상

. 2007년 <김삿갓문학상> 수상

. 2007년 <심현수 문학상> 수상
· 시집 『사물 A』『환상의 다리』『당신의 초상』『사물들』
『당신의 방』『너라는 환상』『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밝은 방』등
· 시론집『시론』『모더니즘 시론』『포스트모더니즘 시론』
『한국현대시론사』『한국 현대시 새롭게 읽기』등
· 편저 『문학상징사전』등
·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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