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몸 밖에서 몸 안으로 / 이원

자크라캉 2007. 8. 18. 11:31

 

 

사진<베이징 이글스>님의 카페에서

 

밖에서 몸 안으로 / 이원

 

 

새벽은 어둠의 녹슬어가는 몸이다 사람들은 이 몸을 희망이라고 믿는다 믿음은 오해일수록 좋다 믿음이라는 허방은 사방에 널려 있다

 

몸이 닿았던 자리는 썩어 들어간다 남김없이 썩어 들어간 허공을 사람들은 하늘이라고 부른다 높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하늘에 좀더 가까워지고 싶은 몸 썩은 냄새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몸은 죽음이 썩히고 있는 삶이다 무엇이 간절해질 때 사람들은 잊었던 그 냄새를 찾는다

 

길은 낯선 곳으로 못 나간다는 비명이다 사람들은 빈 땅마다 보도블록을 깔고 더 이상 그곳을 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불빛이 아래 더 이상 길인 곳은 없다

 

죽음은 끝가지 관념이다 제 품에서 죽어간 몸도 마지막 숨을 넘기는 제 몸도 관념이다 관념을 벗은 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사람들은 먼저 제 죽음을 만난다

 

몸이 썩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타일을 몸에 붙인다 사람들끼리 몸을 만지면 단단하고 미끄럽다

 

손은 바닥에 지도를 감추어 두고 있다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은밀한 길을 맞대어 본다 그러나 서로의 길이 보일까 봐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든다 몸의 길은 쏟아지지도 뒤엉키지도 않는다

 

뼈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어 살은 어두워지는 법이 없다 살이 어두워지려면 오랫동안 뼈와 함께 흐르는 물에 씻겨야 한다

 

: 몸을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구멍 몸 : 입을 메워버리고 싶은 간절한 무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2007.6)

 

 

<시인 약력>

이원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2년 계간 『세계의 문학』가을호로 등단

2002년 현대시학 문학상 수상

2005년 현대시 작품상 수상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개의 달이 뜬다>

       2007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 지성사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 그림자 / 황지우  (0) 2007.09.14
孔子의 生活難 / 김수영  (0) 2007.08.30
아파트에서 3 / 이원  (0) 2007.08.10
아파트에서 2 / 이원  (0) 2007.08.10
아파트에서 1 / 이원  (0) 2007.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