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시론

오탁번 시인의 시세계/김강태(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자크라캉 2007. 7. 2. 16:19
 
탁번 시인의 시세계 / 김강태(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2006/10/25 21:41

http://blog.naver.com/w_wonho/60030097351

 

 

 

이름 :오탁번
출생 : 1943년 7월 3일

출신지 : 충청북도 제천

직업 :시인
학력 : 고려대학교대학원

가족 : 배우자 한림대교수 김은자

데뷔 :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경력 : 미국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역임
         육군사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수상 : 1997년 정지용문학상

         1994년 동서문학상

 

시인 오탁번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중등교육을 원주에서 받은 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시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1967년「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하여 그 동안 시집 「아침의 예언」「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생각나지 않는 꿈」「겨울강」을 출간하고, 소설집으로 「처형의 땅」「저녁연기」「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순은의 아침」 등 출간하였다. 소설 「우화의 땅」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시집 「겨울강」 동서문학상, 시 「백두산 천지」로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김강태(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시를 생각하며 새벽잠을 깨고

시를 쓰며 자정을 넘길 때처럼

내 영혼과 똑바로 마주볼 때는 없다

─시집 《겨울강》 自序

 

 

탁, 탁자 위에 무엇이 떨어진다. 순간, 탁자는 아프다. 탁자 위로 난 올라간다. 나는 ‘탁’자字를 만진다. 그렇구나, 순은純銀이 햇빛에 빛난다. 햇빛놀음, 햇살과의 유희, 유리알 유희…… 나는 유난한 빛 한 올갱이를 고른다. 탁자 위 유리, 유리면에서 빛나는 유리 알맹이 위서 붉은 나신으로 서서히 몸을 풀어나가는 발레리나, 그녀다. 나는 오늘밤 요정이다. 햇살들끼리의 부딪침, 아픔이다, 눈물이다, 그리움이다. H. 헤세의 ‘유리구슬’에서 오탁번의 유리알로 전이된다. 문명비판서, 헤세의 책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견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아이에서 시계의 톱니바퀴를 닦던 그의 삶은 아프도록 빛난다. 그의 문학수업은 시계 톱니를 닦는 일로부터 비롯한다(고 말해도 좋다.) 때(=垢)를 촘촘히 닦으며 그는 무얼 생각했을까. 얼마나 열심히 때를 닦았을까. 글 쓰는 일이란 이런 게 아닐까, 라는 독백이 신음처럼 들려온다. 그의 작품이 그래서 순금처럼 빛나는 걸까, 오늘날. 그리고 피아니스트와의 만남, 10년 가까운 연상의 여성, …아내. 그러나 헤세에게도 슬픔이 유리알처럼 알알이 박히기도 했었지. ‘욜랑욜랑’ 떠오르는 슬픔의 아릿한 뭉터기. 1, 2차 대전을 치르는 동안에 엄청난 정신과 육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은 정신분석의 집요한 과정을 거쳐 그 스스로 불행을 이겨 오로지 작가로 성숙할 수 있었던 생애가 불현듯 떠오른다. 문득, 떠오르는 오탁번. 나는 아무래도 시인의 이름자가 재미있다. 오, 鐸藩! 방울 탁, 울타리 번.

턱.

나는 그의 턱을 본다. 모양이 특이하다. 끝이 도톰한, 끝께가 예쁜 주걱 형상을 본다. (만져 보고 싶다.) 도툼, 코끝에 앵경이 걸쳐 있다. 탁, 턱. 탁탁, 턱턱. 탁턱탁턱…… 난 아무 뜻없이 그를 생각하고 지우곤 다시 생각한다. 대체 아내 金恩子는 그의 어떤 모습을 좋아했을까. 그녀의 시집 《떠도는 숨결》(나남)을 읽는다. 속표지를 까집으니 노출을 싫어하는 듯한 얼굴이 촌시악시 같으다. 오탁번의 트레이드 마크, ‘순수’도 엿보인다. ‘시란 인간과 세계와의 본질적 교류이며 본질적 깊이가 망각될 때 시는 힘을 잃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얼마나 가냘픈가. 시여, 나는 얼마나 작은가’라는 서문의 울림이 잔잔하다. 난 질투한다. 이 촌시런 얼굴(?)들이 귀한 신춘문예를 5번이나 제패했다. 김은자·1975년 《한국일보》 시부문/1981년 《동아일보》 평론, 오탁번·1966년 《동아일보》 동화/1967년 《중앙일보》 시부문/1969년 《대한일보》 소설 당선을 거친 것이다. 아마도 기네스북감? 깨끗함을 좋아하는, 대학생으로 글 좀 쓴답시고 껍쩍대는 걸 몹시 싫어한다는 그녀는, 현재는 머언 호수를 만지러 한림대 국문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둘은 부부 교수요, 주말 부부다. 그나마 늙은 대학생 4학년 때, 1학년 김은자와 연애했다고? 얼라꼴라리. 그 ‘탁/턱’의 얼굴이 본디 글을 잘 쓰나보다. 그의 시의 편력은 중학 시절로 올라간다. 그는 이때부터 또래의 예비 글쟁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원지에 투고, 이름을 날린다.  

 

돌층계를 밟고 내려가듯,/나는 도시의 중심부를 향하여 깊숙히 걸어가고 있다./나의 청각을 울리는 970KC 중앙방송,/5개년 경제계획을 방송하고 있는/담뱃재 같은 오후가 권태롭다./나는 걷고 있다./하낫, 두울 나는 상업은행의 흑빛 도어를 열고/후, 후 웃어보고 싶다/아침마다 우리집을 지나는 생선장수가 내 어깨를 친다./(…중략…)/팔목시계 안에서 초침이 할딱거린다./나는 두개골 속에 먼지처럼 이는/현기증에 취하면서 걷고 있다./나는 아무 의사도 없이 진행형을 만드는 Be동사 같다.

─〈걸어가는 사람〉 부분  

 

이 시는 그가 고3 때 학원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오탁번의 위력이 성큼 이는 수작이다. 나는 혀를 끌끌대며 나이든 오 시인을 ‘시카고 불스’에서 만난다. 서울로 올라와 자신을 혹독하게 추궁하며 썼다는 ‘어린 것 오탁번’의 놀라운 시 〈걸어가는 사람〉, 그의 말대로 ‘절망의 깊이’가 무섭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아 오늘은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다. 개운한 여름날, 물고기의 미끈한 질주처럼, 질풍의 쾌속정처럼, 아슴히 부서지는 머리 위 햇살처럼. 나의 기억은 여지없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이어달린다. 대학 3학년 때의 쾌거다! 조지훈·박남수·김종길 시인이 심사위원.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겨울 아침의 행인들.//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천년 동안 땅에 묻혀/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발굴되어 건강한 탄부의 손으로/화차에 던져지는,/원시림 아아 원시림/그 아득한 세계의 運搬소리.//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發言./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겨울 저녁의/無邊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은빛 날개의 작은 새,/작디 작은 새가 되어/나무가지 위에 내려 앉아/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눈을 뜬다./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번째 눈을 뜨듯.(…하략…)

─〈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부분

 

그리고 시인 김종해의 권유로 이어진 ‘현대시 동인’. 그때, 나는 어땠던가. 온통 〈현대시 동인〉들의 작품 흉내로 마치 문학의 한 전범인 양, 우리 문청들은 그들을 몇번이고 탐독했지. 그들은 항시 우릴 압도해나갔고 항상 먼저 저편에 가있었다. 부러웠다. 나와 토요문학동인들은 열심히 그들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이때 만난 그의 〈굴뚝 소제부〉 〈라라에 관하여〉, 이수익·정진규, 마종하의 〈첼로〉 등은 나의 속내를 강타했다. 오직 크롬옐로우딥 색깔의 ‘현대시’ 동인집을 옆구리에 끼고 댕기며 나는 카피가 허얘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때의 내 친구 은상이 징걸인 어디갔지, 허경진이는 목원대 국문과에 있는데.

이남호는 말한다. ‘오탁번의 문학은 낭만과 절망, 그리고 순수와 현실이 교차되어 있다. 거기에는 기성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유년의 치기만만함 그리고 과거와 고향에 대한 집착이 있으며, 아울러 무엇보다 세계에 대한 선험적 기준이 작용하고 있다. 이 기준은 순수이다. 오탁번의 문학에서 이 순수가치는 절대적으로 신봉되고, 그것은 세계의 척도로 사용한다. 이때 순수는 왜곡되기 이전의 순수이다.’1) (이상하다, 그렇다면 왜곡된 순수는 무엇? 글쎄……) 이어서 이남호는 오탁번의 낭만성에 의미를 크게 두면서 시인의 ‘순수/낭만성’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모티프를 던져준다고 전한다. 물론 그는 소설도 쓴다. 내가 보기엔 소설이 여기餘技일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해선 안 될 것 같다. 소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형의 말. 그래선지 소설에 더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솔직이 이게 싫다, 무조건 싫다. 시에 대한 열정은 많이 남아 있어, 시험지나 노트지에 시를 쓰고 정리한다는 그의 표정에서 시의 그리메가 진하게 어른거리는 듯. 세계사에서 나온 시집 《겨울강》 이후, 발표한 60여편을 묶어 곧 5시집을 낼 예정이라고.

그의 시 작업은 매우 독특한 걸로 소문나 있다. 시창작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시를 출품, 여지없이 난타하고 당한다. 사물에 적합한 적절한 시어 찾기도 끈질긴 작업 중의 하나다. 그는 시작업을 완전히 터놓고 한다. 그래선지 요즘 형의 시가 재미있어졌다. 남의 눈치를 전혀 살피지 않는 그로선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라. 슬몃 웃음이 감돌게 되는 시 〈또 애기똥풀〉(전문)을 보자.

 

기저귀 빨래하는/젖이 불은 엄마에게/애기의 똥은/똥이 아니었다/애기의 숨이/새록새록 잠든 사랑이었다/새끼 붕어들도/도랑 물풀 사이에서/욜랑욜랑 헤덤볐다//1만달러 소득을 뽐내던 시절/애기의 예쁜 똥은/엄마의 눈길 한번 못받고/일회용 기저귀에 싸여/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재활용도 안 되는/쓰레기가 되어/멀리멀리/엄마 품을 떠나갔다//이제/IMF 바람이 불어/다시 천 기저귀를 쓴단다/봄 여름 아직 멀었지만/집집마다/눈부시게 흰 기저귀에는/애기똥풀 빛/동글동글한 애기똥이/담뿍담뿍 피어나겠다

 

‘욜랑욜랑 (헤덤볐다)’이 단연 눈에 띈다. 국어사전은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이나 ‘자꾸 촐싹거리는 모양’으로 적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현진건 소설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는데, 이것도 송하춘 교수 등에게 어렵게 어렵게 상황 설명을 통해 얻은 단어라고. 실제로 경상도에선 까부는 아가씨를 보고 아직도 ‘왜 욜랑거려?’ 한다고. 이 시는 완곡한 풍자(=풍유)로 일관하지만, 눈물이 있고 생생한 말씀이 있고, 교훈과 사랑이 하나의 용기容器에 차 있다. 1만 달러의 허풍쟁이 지난 해, 그리고 200만 명의 실직자가 예고된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허세를 팍팍 쑤시는 뼈아픈 시다. (웬수놈의 아예메프!) 애기똥은 냄새도 안 나지만, 냄새 나도 이쁘지 않은가, 애기또끼 똥처럼. 전통적인 흰 기저귀의 엄마 품으로의 회귀…… 기똥차다. 엄마의 애기사랑이 퐁퐁. ‘집집마다/눈부시게 흰 기저귀에는/애기똥풀 빛/동글동글한 애기 똥이/담뿍담뿍 피어’난다는 시구에서 ‘눈부시게 흰 기저귀’는 단연 끝내주는 맥점이다. 탁번 형, 눈부신 기저귀라고? 순 생거짓뿌렁! 그런디 맞긴 맞는 말씀이구먼유∼. (형의 모친과 나의 어머닌 똑같은 광산 김씨다.) 오탁번의 시인적 감각과 역량은 이 ‘눈부시게 흰 기저귀’에 숨어 있다, 나는 믿는다. 형과 나는 하나의 인연이 있다. 첫시집 《물의 잠》을 청하출판사에서 냈을 때, 그 해에 형도 시집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를 거기서 출간한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초기시 〈굴뚝 소제부〉를 문제삼는다. ‘수은주의 키가 만년필 촉만큼 작아진 오전 여덟시/씽그의 드라마를 읽으려고 가다가 그를 만났다./나는 목례를 했다./그는 녹슨 북을 두드리며 지나갔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소제부가 마치 사제처럼 경건히 건강히 감지되는 폼나는 작품이다. 여기서 소제부는 ‘그녀’를 떠올리는 동기 유발의 존재다. 시적 자아가 ‘그냥 무심히’‘그녀’를 떠올리게 만든 그와의 만남. 화자의 진행(걸어감)에 ‘제기동의 겨울 안개’가 자꾸만 가로막는다, 모든 것은 이처럼 화자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한다, 그런데 이때 ‘그냥 무심히//은이후니.’ 화자는 ‘비극’─‘죽음’─‘겨울 안개’─‘말을 타고 바다로 내달리는/슬픈 사람들’을 환상적으로 침울히 목도하면서 (깊고 어두운) ‘코오피잔을 저으며 슬프고 가난한 시간 속으로 내달려’ 간다. 분위기는 마냥 어둡다. 귀가 중에 다시 만나는 석탄빛의 그, 그의 행위란 ‘길고 깊은 암흑을 파내’는 일! 왼종일 ‘골목을 내달리는/그에게 나는 (경건히) 목례를’ 한다. 왜? 비밀은 마지막 연에 있다. 그 소제부로 인하여 ‘내 전신에 쌓인 암흑의 기류를 파낼/그녀를 (퍼뜩) 생각’한 것이다, 징(북)소리의 의성음 ‘은이후니’가 결국은 둘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흔들어 깨운다. ‘은이+훈이’는 대결합을 상징한다. ‘둘은 만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절대적 명제의 반문인 셈이다. 그는 욕심쟁이요 응큼쟁이다. 이 작품은 ‘두드림’이란 사전 행위가 중요한데, 실상 두드림으로써 모든 갈등의 내외가 전면 해소되지 않았는가. ‘겨울 저녁의 안개를 모호한 우리의 어둠을 (비로소) 두드’린 행위로. 문득 그가 굴뚝소제부 같네. 고대신문에 이 시가 처음 실린 것으로, 김종해(문학세계사)가 동인 제의를 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

(또 내 눈에 비치기를) 그는 스스로 시적 화자가 되어 묵묵히 징을 담담히 당당히 쳐나가는 야전군일 수도 있다.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꼿꼿한 굴뚝소제부 오탁번. 신문이나 책에서는 그의 턱만 부각되었다. 그것만이 그였다. 시구 중의 ‘은이후니―’란 구절. 무려 30년 만의 궁금증이 탁 풀린다. 연애할 때 김은자의 ‘은이’와 자신의 예명/필명인 ‘훈이’의 글자모음이란다. 이들을 연철시켜 만든 복합글자. 그토록 뜨겁게 연애했으면 됐지 하마나 모질게 밝히기는, 참. 요것두 샘난다. 아무튼 둘은 ‘은이’와 ‘훈이’의 만남체다. 그런 그들이 요즘은 주말 부부. (부부란 좀 떨어져 살기도 해야 하느니, 경험 많은 성님의 고견高見. 그런…가. ‘으니’가 ‘후니’의 이 말을 강원땅에서 호젓이 들으면 괜찮을라나. 부부싸움 한번 안 할라나.) 김재홍도 처음으로, 오탁번의 초기시편이 순수/신선한 이미지와 섬세한 감각이라고 밝힌다. 〈라라에 관하여〉(전문/한자는 한글로 바꿈)도 돋보인다. 이십 젊음 때 난 이 시가 좋아 줄줄 외웠다. 라라같은 여자와 연애하고 싶었다. 나도 소싯적에 라라를 만났을까? 비밀이다.

 

① 원주고교 이학년 겨울, 라라를 처음 만났다. 눈덮인 치악산을 한참 바라다 보았다./② 7년이 지난 2월달 아침, 나의 천정에서 겨울바람이 달려가고 대한극장 이층 나열 14에서 라라를 다시 만났다./③ 다음날, 서울역에 나가 나의 내부를 달려가는 겨울바람을 전송하고 돌아와 ‘고려가요어석연구’를 읽었다/④ 형언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 바람소리에 깨어난 아침, 차녀를 낳았다는 누님의 해산 소식을 들었다./⑤ 라라, 그 보잘것 없는 계집이 돌리는 겨울 풍차소리에 나의 아침은 무너져 내렸다. 라라여, 본능의 바람이여, 아름다움이여.

 

①은 책 《닥터 지바고》를 감명깊게 읽은 것을, ②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혹시 그녀 恩이와 같이 봤을까?), ③은 사랑의 기쁨/그리움을, ④는 (독해 의문!) ‘누님의 해산 소식’이 외려 불운으로 자리한 걸까, 가슴 속 라라가 훌쩍 떠나간 걸까, 아니면 ‘부푼 꿈─부푼 누님의 배─해산(=꿈의 현실화?)’로 유추해보아 헤어질 것 같은 무슨 조짐? ⑤는 ‘형언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 바람소리’ 따라 켜내던 러브 스토릴 자꾸 꺼버리는 ‘겨울 풍차소리’에 속이 상한 ‘나’. 그녀는 소식 없이 사라지고, ‘나’의 내면은 그리운 ‘본능의 바람’이 계속 일고. 사뭇 그립고 아름다운 기억이여. 그래서 끝까지 그녀를 추적, 좇아간다…… 이런 풀이가 가능할까.

‘라라’는 《닥터 지바고》의 그녀, 김은자의 별칭이다. 형이 아내에 대한 집착/애착(?)은 볼썽사나울 정도다. (질투심의 발로니깐, 뭐.) 여기서 연애 얘길 아니할 수 없군. 1967년 1월 신춘문예가 당선됐을 때, 그는 송신자 이니셜만 있는 편지(서울대 표기)를 받는다. 오탁번은 당시 고대신문 편집국장, 관심이 간 그는 후배 견습기자를 통해 서울대 《대학신문》을 뒤진다. 드디어 이니셜의 주인공은 불문과 신선한 1학년 김은자, 마침 시 한 편이 실려 있어 답장을 득달같이 보낸다. 결국은 착한 1학년, 뭘 몰르는 후레쉬맨을 슬쩍 꼬신거구먼. (말쑥한 대학생 은자가 그땐 워낙 순진했다니까.) 그녀는 부산여고를 나온 입주 가정교사로 있었다. 그러나 수줍기만 한 그녀가 집을 옮겨도 몇달째 엽서만 보내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자 애가 탄 오탁번은 또 만만한 후배 기자를 시켜 주소만을 가지고 전화번호를 정신없이 찾게 하여 마침내 찾아낸다. 지독한 남자.(이런 자를 조심하라.) 가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서울특별시 구역이지, 흠. (그녀에겐 정숙한 입주 가정교사라는 직함도 꽤 부담으로 작용했으리.) 아니면 자유분방한 남자친구 오탁번의 행각(?)이 싫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그의 아내 김은자에게 직접 들어봐야 하는데. 그녀야말로 문정희·강은교·이명자 또래니까 여성시인들의 중심이 아닌가. (다만 시인/평론가인 그녀의 왕성한 문필 활동이 현재로는 무척 아쉽다. 시도 과작이니까. 그녀의 생각도 남편과 같단다. 인세 및 원고 청탁, 원고료 지급 등을 ‘깨끗이’ 처리하는 풍토가 문단에 깔끔히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부부 모두 자존과 순수와 염결이 강하다. 아내는 남편 오씨에게 아직도 그냥 이상형일 뿐이다. 부부는 이 시대의 가난한 시인들에 대한 애정이 두텁다. 왠지 나는 〈시낭송회에서〉 끝 행에 닿은 눈길을 슬그머니 멈춘다. 시선을 꽂는다.

 

겨울비 피할 우산 하나없이

가난한 시인들 몰래 울지 싶었다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나도 울고 싶다. 그는 본디 사랑의 시인이다. 그의 뜨거움은 근본적인 ‘사랑 감싸기’에서 노출된다. 왜 그랬을까, 별안간 형의 가신 어머니가 떠올랐음은…… 그의 산문은 ‘어머니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내 눈썹 가에 살아계신다. 내가 어머니에 대하여 지니는 마음은 단순한 효도의 범주에 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 삶의 지침이면서 동시에 내 문학의 원형적인 신화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명경처럼 우리에게 보였다. 난 이 시구가 오탁번의 비밀한 정체이므로 드러내라고 드러내라며, 지나가는 소나깃발처럼 양철북을 마구 두들긴다. 속 깊은 곳에서 낭만이 띠를 에두르며 엉거주춤하고, 순수가 순백으로 윤들윤들 빛난다, 맨들맨들 빛 뿜는다. 좋게 말하면 서정의 지성미 짙은 중진이라 하겠고, 나쁘게 말하면 앞으론 그냥 중늙은이 될 확률도 꽤 있(많)다. 아무래도 영화 한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노변의 예술가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강태, 이담에 늙어서 영화 한 편 딱 찍고픈 거 있지. 또 주책, 또 왕자정신.  

천신만고, 이러구러 연애를 시작했지만 문제는 결혼하기까지 처가댁(?)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그게 만만찮았다. 그래서 부산으로 함께 달려간다. 당시 경성사범 출신인 현재의 장모님 말씀, ‘그래, 자네 이 다음에 뭐가 될라나?’ ‘예, 아무리 못되도 고대 교수정도는 안 되겠습니까?’ 이때 예비 장모님, 예비 사위 행색과 말투를 보곤 손을 내젓는다. 저렇게 허황된 사람에게 딸애를 맡겼다간 큰일나겠다, 싶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난관을 헤치고 드디어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학생인지 기자인지 모를 신분으로 강의를 거의 몽창 빠지며 다닌 대학신문쟁이가 감히 상아탑의 표징이 될 법한가. 안 봐도 본 듯해. 분명히 편집과 술로 밤샘, 학점은 형편 무인지경일 걸.(이상허다, 어떻게 선생이 됐지?)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엔 이처럼 이해 못할 혼인도 있는 법이야, 라고 쓰다가 아무래도 부인 김은자의 결벽에 켕겨 겁나서 다시 고쳐 쓴다. ‘세상엔 참 멋진 결혼도 다 있구먼그려!’ 군대 문제로 쫓긴 그는 신혼여행지에서 아내 은자의 도움을 받아 졸업논문을 작성한다. 도대체 형은 할 일은 안하고 뭘했지? 두 사람은 신혼여행, 하면 석사 논문에 관한 기억밖에 없다. 씁쓸? 행복? 어쨌든 그는 영문과에서 대학원 국문과로 옮겨, 지금 국어과 교수가 돼 있지 않은가. 아내 김은자의 길도 다사다난했다.2) 불문과 석사를 다니던 그녀는 결혼한 후 석사를 다니다가 학점을 다 딴 후 아이들을 키우느라 휴학. 몇년 지나자 복학을 하러 갔더니 휴학기간이 초과되어 모두가 무효가 된다. 그녀는 대학원 입학시험을 다시 치르고 국문과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문제는 학비와 학점. 오탁번·김은자는 당시 서울대 국문과 교수 4인방, 전광용·정한모·장덕순·정병욱 교수에게 등록만 할테니 학점을 지난번 것을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당돌하게 요구한다. 고대 은사 정한숙 교수(전광용 교수와 절친)도 참석한 자리에서 지난 학점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아들 정록, 고대 법대 댕기다가 군에 갔다. 이젠 형이 16대 대통령에 나와도 문제 생길 게 없다. 딸 가혜는 고대 심리학과 4학년, 전형적인 호랑이(고대) 가족이다.

 

오탁번은 정신적으로 미당을 숭배한다. ‘숭배’란 낱말에 악센트를 넣는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당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영원/최대의 시인이며, 우리 시사의 전부에 이른다며 감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월은 너비에, 지용은 높이에, 만해는 육사·지훈과 아울러 깊이에 해당한다는 대위적 구조로 평가하는 그는 오늘날의 생존세대는 미당만이 이 모두를 아우른다는 절대 평가를 내린다. ‘미당이라는 큰 그릇’을 우리가 소유했음은 너무나 큰 행복이라고. 개중에서 시집을 통해 일찍 체험한 《질마재 신화》는 너무 기막힌 전율이었다며 혀를 내두르는 그. 여기서 〈未堂을 위하여〉 1부를 보자. ‘(당신은) 빛바랜 습작노트 갈피에 있는/향나무 냄새나는 몽당연필‘로 ‘껌정거북표의 고무신짝’이라뇨?/기러기표 옥양목’이라뇨?/이 기막힌 브랜드가/내 前生의 습작노트에 적혀 있던/지상과 천상의 이미지라는 것’이란 용틀임을 하더니, 그만 ‘용용 몰랐죠?’란 카운터 블로를 날리며 끝을 맺는다, 낼름낼름. (1부에는 미당이란 큰 시인의 면모로 접근해가는 시적 화자의 비원悲願을 볼 수 있다.) 미당의 브랜드는 지독히 신라적新羅的이고 독보적이다. 비상한 머리의 오탁번도 도리질하는 그의 통쾌무비한 시 발상법. (나도 ‘용용 몰랐지?’ 하고 흉내낸다. 그러나, 이 놀림은 이미 미당에게 간파당한 것임을 어이하랴!) 이 브랜드야말로 진정 미당식式이 아닌가. 절창 〈未堂을…〉 2부에 우리의 몸마음을 폭 빠뜨리자꾸나.

 

까마득한 新羅의 하늘 아래/옛날 옛적 당신의 姨母 한 분이/우리 同福 吳氏 잘생긴 男丁네한테/꽃가마에 놋요강 싣고 시집을 왔을까?/당신의 멀고먼 堂叔 한 분이/우리집 밭 부쳐먹고 賭地도 안 내고/마늘쫑보다 싱싱한 사랑의 혓바닥으로/내 아득한 姑母의 몸을 홀려냈을까?/당신은 왕겨빛 그리움이죠?/피어오르는 저녁연기― 맞죠?

 

‘賭地’란 땅세같은 거로 해마다 농사 짓고 무는 벼를 이름한다. 시적 화자는 어떻게든 미당의 혈血과 자기 피를 접붙이려 애쓴다. 자기 가계가 미당 집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그 옛날 ‘당신의 멀고먼 당숙 한 분이/우리집 밭 부쳐먹고 도지도 안 내고/마늘쫑보다 싱싱한 사랑의 혓바닥으로/내 아득한 고모의 몸을 홀려냈’다고 으쓱, 뱃폼 재며 뻥 깐다. 허지만 이건 완연한 반대어법으로 미당을 향한 위대한 질투심이고 컴플렉스다. 그 다음 노림수 또한 솔찮다.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바둑용어)이라던가. 수퍼맨 컴플렉스? 아니다, 미당을 향한 상대적 진솔한 마음이 능청스런 그리움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 해답은 바로 ‘당신은 왕겨빛 그리움이죠?/피어오르는 저녁연기― 맞죠?’에 있다. ‘용용 몰랐죠?’의 앙증맞음과 ‘맞죠?’의 안타까움 사이에 숨어 있다. 마치 어머니 치마끈을 잡고 칭얼대는 개구장이 모습이다. 오형엽은 그의 작품론에서 ‘서정과 풍자 사이, 순수를 향한 도정道程’이란 폭넓은 개념으로 철한 바 있는데,3) 급기야 난 이 시만큼은 ‘뻥 까는 시인(용서하소서) 오탁번의 호기好奇의 노작勞作’으로 정리한다.

시인(또는 명작)지상주의인 그가, 산문쟁이들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시 쓰기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건 결코 빠뜨릴 수 없다. 그의 지론. 그들의 소설과 평론까지 위태스럽게 보인다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동안 각종 ‘빽’(교수 빽/탤런트·유명세 빽?)을 동원하여 산문을 써왔을까, 하며 그는 직접 Y·C와 작가 H를 들먹인다. 시야 누구나 쓸 수 있지만, 필요 이상의 평가로 인해 참문학이 골병 들고 비평안에 혼선이 생긴다. 그들의 지면을 가난하고 좋은 시인들에게 넘겨주자는 논리를 그는 주저없이 강경하게 펼친다. 말끝마다 허세, ‘그냥 밝혀요, 밝혀. 이 오탁번이가 그렇게 (쓰라구) 했다구 그래―.’ 성님, 나중에 그 말씀 워찌 책임질려구 하시는가. 쓰라구 해서 쓸 나도 아니지만.  

다음이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정지용 연구〉. 소월까지 다룬 논문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었으나 해금이 되면서 각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발호하자 외려 불쾌할 정도라고. 지용의 순결성이 훼손될까봐서다. 그에게 영향 받은 시 〈백두산 천지〉 〈1m의 사랑〉을 구상하는 동안 그는 여러 백과사전을 찾아보며 정갈한 언어를 취택한다. 가만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 시 속에서 순수/생명력있는 우리말을 찾아 쓰라―. 〈1m의 사랑〉에 눈을 던져 보자.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지는, 100만 분의 1의 ‘사랑의 오차’도 허용치 않으려는, 지독한 애절한 사랑의 시다.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그리움의 거리는/베틀 위의 팽팽한 눈썹줄이 잉아에 닿을 때/북에서 풀리는 비단실의 떨림이라도 되는지,/(…중략…)/미리내를 건너는 그리움이 金빛으로 물들 때

그는 자유분방하다. 그 말로도 모자라다. 절친히 지내는 동국대 한용환·고대 서종택 교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셋은 《학원》을 통해 만난 친구다. 한용환은 둔포중, 서종택은 장흥중, 오탁번은 원주중 출신이었다. 나는 평소 가까운 형님 한용환댁에 전화를 건다. ‘오탁번이가 허세는 많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촌놈’이란다.(후환이 두렵지 않으신가?) 이때부터 자기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고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않아서 오죽하면 담임선생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셨다고. 5번이나 군 입대를 기피한 인물인데, 체재 밖으로부터 안으로 철저히 자신을 끌어들이려 노력해왔다며 이렇게 외친다, ‘나는 국가를 상대로 건방졌었다’고. 어려운 시대라고들 하지만 국민소득 1만불시대에서 5천불로 떨어졌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자는 주장이 호소력있게 들린다. 옛날 《문장》지나 《청록집》 《문예》지 등이 창간된 시절, 소득이 50불/100불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우린 버티며 살아왔다는 그의 끓는 말이 끝없다. 참, 천재화가 이중섭은 은지銀紙에 그림(은지화)을 그렸지…… 그래도 시인들이여, 옛날로 돌아가자. 진정코 문학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자꾸나. 그는 날카로운 언어를 가슴에 장전, 문학인들의 심장부를 겨냥한다. 문예지를 운영한다면 정식으로 원고료를 주고 정식으로 좋은 시인을 대접하는 풍토를 개척하라. (이것도 만해정신이 아닌가.) 이윽고 그는 준비된 발언을 의연히 구사한다. 올 가을에 詩전문 리뷰Review지를 창간(계간지 ☏3452─0978/☏3462─0978/강남구 역삼동 770번지 덕성빌딩 402호/역삼역과 계몽문화센터 중간지/오탁번·김은자 댁)하겠다고 천명한다. 약 200여쪽짜리. 분명한 것은 사재라도 털어 일정 수준의 원고료를 반드시 지급, 시인들의 긍지를 살리겠다고. 참 멋지다. 가장 중요한 내용―부인 김은자 씨도 O.K. 싸인―도 해결되었다. 그는 단호해진다. 줄 거 주고 받을 만한 작품을 받겠다고. ‘쉼표(,) 하나 빠져도 찾아낼 줄 아는 놈이 진짜 시를 쓰는 법이 아니요?’ 거침없다. 즉, 드러누워 있다가도 깜짝 놀라 일어나 다시 읽게 만들 정도의 시를 쓰자고 주문한다. 그는 미당시를 화장실에선 읽지 않는다며 거의 종교적 절대성 위에 얹힌다. 또 후대에 남는 작품과 문예지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충만하다. 정치가시인 모윤숙이 죽어서 남았는가? 누구누구, 누구도 지금은 전혀 없다. 방인근 씨는 당시에 대단한 작가였는데, 《동아일보》 기사에 ‘고뿔이 걸려 (직장에) 출근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고. (증말 부럽구려.) 대학 교수를 한 25년 지낸 좋은 시인 오탁번답다. 그는 또 ‘패거리’ 문학을 정말 싫어한다. 해방 전에 경성사범 교수였던 조윤제의 《조선시가사강》같이 이 시대에 남을 만한 저서를 쓰겠다는 거침없는 다짐.

 

에피소드

한두 가지 일화. 대학생 때 그는 1년 내내 군복같은 걸 입고 다녔다 한다. 쉽게 빨 리도 없고, 그러니 냄새가 진동할 게 뻔한 이치. 소문난 소문(?)에 의하면 저 멀리 100m 전방에서 그가 오면 퀴퀴한 냄새가 교정을 흔들었다고. 고대 국어과를 나온 나의 제자가 긴히 들려준 1급 비밀이다. 신춘문예 당선 직후, 오탁번은 권오운·윤상규(=윤후명) 등과 함께 《주간한국》에서 대담이 있었다. 대담자는 마침 박성룡 시인으로 당시 그곳 기자였다. (처음엔 그인줄 몰랐다.) 진행 중에 어느 시인이 가장 좋으냐, 고 묻기에 오탁번이 대번에 ‘〈處暑記〉를 쓴 박성룡……’ 해버린다. 난감해진 박 시인, 나중엔 제 이름을 신문에 올리지 못했다고. 이처럼 그는 ‘아둔했다’고 적는다.4) 시험문제 출제도 독특하다. 보통 미리 문제를 주고 생각해와서 시험 중에 쓰라 한다고. 어떤 강의시간에는 10대들의 연예인에 대한 광기에 대해 ‘전생에 다 무당이었을 사람들’이라며 웃었다고. 바둑을 꽤 좋아한다. 현재 3급(고무줄 늘어나듯 짱짱한 급수가 바로 3급)으로 언제 한번 나와 두기로 약속했는데, 만만찮은 호적수일 것 같다.

이어령·이태동·조정래를 좋아하며 시는 역시 〈현대시 동인〉들 작품을 친다. 그가 밝히는 오늘의 최대 비평가는 김종길 교수. 김재홍·권오만 등을 아끼며 특히 이숭원 비평의 정직성을 꼽는다. 40대가 되니 사물이 다시 보이고, 50대가 되니 사물 읽는 그대로가 새롭다. 시는 독서량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앞으론 사라지는 농촌 풍경을 찾아 야생화, 짐승, 곤충을 그대로 그리고 싶다고. 기대주 시인으로 최정례·이동백·안도현, 그리고 이인원을 든다. 특히 사소함을 대소함으로 바꿔 쓰는 안도현은 시의 눈을 가진 좋은 시인이란다. 요즘 시는 너무 산문적인 게 문제. 이럴 때일수록 엄격한 정형이 요구된다고 강조하는 오 시인. (이상허다. 자기 시의 빈번한 산문성은?) 시인아, 오만할 정도의 자존심을 갖으라. ‘너무 구닥다리말 아녜요?’ 물으니 고개를 완강히 젓는다. 상상력이 점점 무시되고 문학의 여러 갈래(장르) 중 최고인 시가 요새 와서 너무 가볍게 만져지는 건 사실이다. 거듭 찾아보고 묵혀내고 되들춰내고 닦아 우려내는 게 절대적이라고. 당대의 최고지 《문장》에 김유정은 장가도 안 가고 3, 4년간 오직 작품만 쓰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정지용의 《산문》,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아직도 필독서다. 다만 많은 시인들의 편협성은 깨끗이 일소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걱정도 있다. 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핑글(아직은 돌진 않지만), 이제 딸이 시집갈 때가 되었다. 어떤 놈이 데려갈 텐가. 나처럼 불한당 같은 녀석이 나타나 ‘딸 주쇼!’ 할 터이니. 그는 딸의 말에 항시 힘을 얻는다면서, 시집갈 땐 미국에나 가있을란다고. (눈물이 앞을 가리워서. ‘임프imf’ 시대라 어쩐다……) 장성한 고것들이 요즘 눈에 이상히도 잘 짚힌다나. 이를 두고, ‘눈에 작신작신 밟힌다’던가…… 이 말은 나도 새로워 겉살이 찡, 아파진다. 나도 딸만 둘인디. 쩌그, 요것덜이 한창 애먹이면서도 사랑스러운디.

형은 1983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와그너 교수 초청으로 1년간 미국을 다녀온다. 이른바 객원교수. 아내도 휴직하고 아이들도 데려올 수 있었다. 각종 도서관 미술관 구경, 옌칭도서관 드나들기…… 마침 〈시창작법〉 강좌가 있어 담당교수인 마이클 블루멘탈에게 허락받고 청강하기로 한다. 적극적인 문학교수가 되고 싶어서. 그런데.

 

사무실을 나오면서 보니까 복도의 게시판에 별로 크지도 않은 공고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수강 허락자 명단이었다. 예비수강신청을 할 때 시를 3편씩 제출하도록 한 다음, 교수가 미리 학생 작품을 읽어보고 수준 미달인 학생은 탈락시키고 일정 수준 이상인 학생만 수강할 수 있도록 한 제도(pre-test)였다. 그러면 그렇지. 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한국의 영문학 교수들이 대부분 시나 소설에는 그 근본부터가 까막눈인 점이 이상했었는데 그들이 외국학생 신분으로 무슨 수로 창작시를 제출하여 시창작 강의를 신청하고 수강 허락을 받을 수 있었으랴.(《오탁번 시화》, 126쪽.)

마이클에게 오탁번은 어머니를 그린 자작시 〈下棺〉(전문)을 번역해서 보인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1980년 지은 그의 소설 〈해피 버스데이〉와 함께 읽으며 우는, 여린, 바보같은 탁번이다. 그러나 블루멘탈이 이 시를 제대로 알겠는가, 저쪽 코쟁이가. 완전 독해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승은 한줌 재로 변하여/이름 모를 풀꽃들의 뿌리로 돌아가고/향불 사르는 연기도 멀리 멀리/못 떠나고/관을 덮은 명정의 흰 글자 사이로/숨는다/무심한 산새들도 수직으로 날아올라/무너미재는 물소리만 요란한데/어머니 어머니/하관의 밧줄이 흙에 닿는 순간에도/어머니의 모음을 부르는 나는/놋요강이다 밤중에 어머니가 대어주던/지린내나는 요강이다 툇마루 끝에 묻힌/오줌통이다 오줌통에 비치던/잿빛 처마 끝이다/이엉에서 떨어지던 눈도 못 뜬/벌레다/밭두럭에서 물똥을 누던/어머니가 뒤 닦아주던 콩잎이다 눈물이다/저승은 한줌 재로 변하여/이름모를 뿌리들의 풀꽃으로 돌아오고

 

권오만은 이 시를 인용하면서 중요한 지적을 한다. ‘한 개체의 태반이라고 할 어머니를 그리워 찾는 작품’이며 ‘오탁번의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의 근원 탐색이 그를 낳고 감싸 기른 어머니, 곧 모성 회귀 지향의 작품들에서 출발’(《시와시학》, ’97. 여름호, 124∼144쪽 참조)했다는 점이 뜻깊다고 가필한다. (참고로, 그의 다른 작품평은 대체로 튀는 편이다. 어제와 오늘의 시가 확실히 다르다. 이숭원은 ‘〈백두산 천지〉론’에서 ‘참회와 속죄 의식’의 시라 했고, 이남호는 〈미친 것들에 대한 순수 사랑〉 제하에서 ‘특히 오탁번의 경우, 시인의 진실과 참된 시는 不二’라고 못질해버렸다. 그러나 이는 오만이며, 지나친 나르시시즘이거나 비범한 자의 정직함이라고도 얄상궂게 옮긴다. 그러나 많은 작품을 보면 ‘야유’도 심하다는 실토도 병행시킨다.)

 

미당/블루멘탈

지금 생각해도 블루멘탈M. Blumenthal은 괜찮은 시인이었다. 시론가는 우선 좋은 시인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그의 신조인데 그가 준 시집 《교감주술Sympathetic Magic》을 꼼꼼히 읽은 결과 참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 중 〈교감주술〉5)은 단연 뛰어났다. ‘…I take your hand and lead you to the fields. …’ 이야말로 ‘들판적으로 누인 여성’(전원책의 시구) 이미지 아닌가. 그는 여자를 ‘들판적으로’ 뉘어봤을까. 그래선 무얼 했지…? 나는 이런 부류의 ‘야생野生 이미지’에서 용솟는 힘을 얻는다, 힘살 뻗고 힘줄이 솟는다. 오오오 오호. ‘이미 지나가버린 달콤한 사랑의 밤을 떠올리며 밭고랑으로 아내를 데리고 가는 농부의 모습이 선하면서도 매미, 귀뚜라미, 메뚜기, 개똥벌레와 아이들을 동일 심상으로 제시하는 솜씨가 동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는 환상의 정경이다(《시화》, 128∼129쪽). 이 작품에서 형이 놀라는 장면은, 서양인들의 성적 이미지 묘사체로 식물이나 과일을 등장시키는 일로서 그의 돌출된 상상력은 줄을 잇는다. ‘나는 여자의 성적 이미지의 무늬가 있는 매재로 잉어, 붕어, 진흙, 항아리, 삼겹살 등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129쪽)는 점이 독특하다. 근데 ‘삼겹살’이라? 너무했다. 술집에서 구워지는 삼겹살에서 여자의 성적 이미지 무늬가 느껴진다? 그건 좀 그렇다. 억지로 상상력을 펼쳐 보자. (삼겹살의) 질펀스런 몸집은 아닐 것이다. 모양은 칼질된, 잘 건사한 형태리라. 양푼에 친구와 잘 누워, 2겹 3겹 함께 있는 모습일까 아닐까. 굽히기 전의 긴장된 형상일까. 앗, 뜨거! 할 때의 한쪽 모멘트일까. 이미 익어 기름져 안으로 오그라든, 말간 군겹살의 오돌도돌한, 맛깔나는, 씹기 전에 아그그 떨리는 바로 그 형태일까. 아니면 남은 형해인가. 나는 고개를 떨군다. 아무튼 질펀스레 누운 홍등가의 50대 여인상은 아닐 터…… 이상했던지 형도 뒤에 이렇게 토를 달았다. ‘삼겹살?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홀연히 〈화사〉를 떠올린다. 그냥 바깥에 내동댕이쳐도 미당은 마냥 빛나지. 독백하자마자 소리의 빛알이 유리알에 떨어져 나뒹구는, 나뒹굴다 스러져도 빛나는, 탁, 소리. 탁탁탁, 타닥 탁탁 소리. 홀연한 황홀.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나는 환각에 빠진다. 어디로 스며? 배암이. 스르르, 스르륵 미끄러져가서 어디로 스며? 우리 순네의 곱고 뜨거운 입술 속으로? 사향 방초길의 끝은 이내 숲 속의 뒤안길로 이어져 사라진다. 오탁번의 시와 산문에서 미당의 체감을 맡는다. 미당은 내게도 절대 신비주의다. 미당 시는 내가 늘상 겪는 오르가즘이다. 보라, (어두운) ‘뒤안길’과 (어두운) 순네 입 속의 절묘한 병치倂置. 나는 미당의 시 〈花蛇〉에서도 ‘순수(절대) 성욕’을 느낀다. 이건 불치不治의 중병이다. 그런데, 성욕이 순수하다니까 누군가 웃긴다며 웃는다. 나도 웃는다. 하지만 난 시청오미촉視·聽·嗅·味·觸(오감五感) 모두를 속임없이 진심으로 사랑해. 오감으로 나누는 사랑법 모두를. 참말이야. 그러면 모두들 섹스를 떠올리데. 섹스가 순수치 않고 불결하다고? 점잖은 네가 웃겨, 또 웃겨. 병신. (당신, 어디 홀로 가서 외로이 오나니나 하구 와.) 미당의 시 〈화사〉를 나는 이렇게 분석한다. 뱀은 남근이고 쫓기는(좇아가는) 화사는 성난 남근이며, 그렇다면 순네 입술은 자궁 문이고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 속은 여성기의 질膣에 해당한다고. 재단적 비평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 작품은 묘하게도 이런 분석이 가능해진다. 줄리어스 시저의 애인이기도 했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남편 안토니우스가 전쟁에서 죽자 독사로 몸의 어딘가를 물어뜯게 해 자결했다지. 스며라 배암! 어디로? 스며라, 배암! 오오, 성적 번뇌의 극치. 번뇌는 농염이다. …번뇌로 활활 타오르는 관능미, 〈화사〉여. 나는 구원한 생명을 본다. (그러나 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사랑을 흠뻑 받은 미남 목동 엔디미언Endymion은 아니야.)

나는 그의 시인·작가·교수·평론가 일에 놀란다. 경악이다. 소설의 좋은 점은 노동미가 있어 괜찮은데, 가끔 다른 장르는 새참처럼 다가와 쓰게 된다는 고백이다. 소설이 안 좋은 점은 그것이 시간과의 철저한 노동싸움이라 무척 힘들기 때문. 그 자신 소설에 대한 동기 부여가 없으면 안 쓰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90년대에 들면서 시의 성향이 강해졌다. 그는 자부한다. ‘시인으로서 소설을 써왔다’고. 교정지에서 빠진 쉼표 하나를 찾아낸다는 그가 웃으며 말한다. ‘이러니 내가 무슨 소설을 쓰겠는가.’ 이제는 코드 전환을 해서 시도 아닌 동화를 쓰고 싶다는 덧붙임이다. 내가 본 오탁번은 초기시에 비해 호흡이 늘어지고 너무 일상사에 집착한 듯. 그리고 총체적 미학이 점점 모자란 듯. 특히 4시집(셈하기에 따라 3시집) 《겨울강》은 산문성이 너무 강한데 그는 이를 짙은 ‘서사성’이라고 반박한다. 서사성만으로 시가 될 수 있는가. 내용을 나누기 전에 요새 형의 시가 늘어지는 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좀더 솔직하시지. 이야기 시詩인가, 서사시인가, 하나의 시적 담론형태인가. 그의 말과 행위가 일치되는 것 같지 않으니 털어놓는 말, 투덜투덜이다.

 

오탁번의 최근 詩

시 〈메롱메롱〉을 보자. 발표지의 ‘시작 노트’에서 그는 고향을 ‘운명의 공간’이라고 쓴다. ‘내 운명의 공간 앞에서 나는 아직도 밤송이 소년’이라면서 ‘이 날 입때까지 이렇게 문학적으로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고 독백하고 있었다. 1연 끝은 오탁번식 결구. ‘용용 쌤통이지?’로 이미 매듭지었다.

 

내 유년의 꿈을 실은 장수잠자리가/투명한 헬리콥터 타고/커다란 겹눈 반짝이며/꿈결 속 하늘로 날아온다/호작등본에나 남아있는 줄 알았던/추억의 비행장에서는/까망 파씨와 종종종 병아리와/금빛 송아지와 별별 장수잠자리가/날마다 꿈마다 뜨고 내린다/밤송이 머리에 중학생 모자 쓰고/떠나온 고향 길섶에/심심하게 피어있는 민들레도/홀씨 하얗게 하늘로 날리며/메롱메롱 나를 부른다 (부분)

 

시의 실험은 이미 李箱이 실시했음. 그 이상이 아니면 그만 둘 것. 술이 입에 밴 형의 일갈이다. 동행한 평론가 K형, O형도 ‘오탁번 무드’에 젖었다. 시 〈영희 누나〉는 ‘중학교 입학금 대출’에 대한 사실적 기록을, 〈요즘 시인들〉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은 대강 사는 이들을 그려 우리들 가슴을 뜨끔케 한다. 〈우리 시대의…〉는 가히 충격적이다. ‘시답게 쓸 것 없다/시답잖게 써야 한다/껄껄껄 웃으면서 악수하고/이데올로기다 모더니즘이다 하며/적당히 분바르고 개칠도 하며/똥마려운 강아지처럼/똥끝타게 쏘다니면 된다’며 이 세상의 위악적 권위를 단칼로 후려친다.  

그는 시인 친구 중에서 박의상·마종하와 알고 지낸다. 허나 마종하는 대단한 칩거 중이라고. 동료들과 가끔 청계산 등짝으로 산책/등반을 나가는데, ‘알프스 샬레’라는 곳에서 주인에게 수세미를 달래어 배낭에 넣기도 했다는 오, 탁번.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참 구엽다.) 이를 그린 시 〈수세미외〉(전문)는 미당의 서늘히 아름다운 응큼성도 엿뵈는 황홀한 작품이다. ‘수세미외’의 ‘외’는 ‘오이’같은 걸로 생각하자. 숨은 이야기. 1)은 어느 홀로된 여성시인 C를, 2)는 상처한 친구 박의상을 모델로 그린 것? 아니, 아니어도 좋다. 흐, 탁번형다운 가창력이 대단해. 거듭거듭 재밌다. 그래, 이처럼 제멋부린 시에 무슨 빌어먹을 놈의 시론이 필요한가…… 필요한가? 나도 덩달아 덩달이가 되고 싶어.

 

① 청계산 등산로 가에 있는/찻집 알프스 샬레의 토요일 오후/베란다 난간의 수세미외 넝쿨에서/수세미외 하나 뚝 따서/눈빛 서늘한 여인에게 주었다/“수세미외가 무슨 상징일까”/여인은 대꾸를 하지 않고/청계산 가을 나뭇잎들만/뺨 붉히며 웃어댄다/“암 암 알고말고”/정말 쓸쓸한 마음이 되어/수세미외 하나 뚝 따서/쓸쓸한 여인에게 건네주는 일이/썩 괜찮다는 듯

② 밤마다 지아비의 그걸 꼭 잡고 자던/하늘가로 날아가버린 어느 아내가/예쁜이 수술받고 입원했을 때/폴라로이드 카메라 받혀놓고/입원실에서 지아비와 사랑을 나누었것다?/”아파? 아파? 안 아파?”/지아비의 말에 배시시 웃던/한쪽 젖이 작은 그 아내는/이젠 폴라로이드 천연색 사진 속에/사랑의 추억으로만 남았다/”안 아파요 안 아파”/저승으로 간 예쁜 그 아내의/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에/아주 크고 잘 생긴 수세미외가/눈물 뚝뚝 흘리고 있다

 

시적 화자는 문우로 가까이 지내는 ‘눈빛 서늘하고 쓸쓸한 여인’을 위해 진정한 선을 베풀고 싶다. 그 마음은 누구도 몰라. 마음을 남성기 형상의 ‘외’를 주려는 행위는 숭고한 정신의 베품, 곧 시정신일 수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그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고 사랑한다. 이 문장엔 목적어가 없어야 한다. 그에겐 그냥 무너지는, 서로의 마음이 무너져 합일하는 가슴이 있다. 속엔 뜨거움이 용광로 쇳물처럼 상비되어 있다. 내 친구 최인호가 정형외과의醫인 것처럼 형은 ‘사랑의醫’다. 아닌가…… 그나저나 형의 남성징은 여직까진 잘 보수하시는지 한번 ‘쎄─’, 물어봐야겠네. 혜화동 대학로 샘터사 옆으로 돌아들면 찻집 〈쎄〉가 있다. 요 음성상징이 또한 요물스럽네.  

쪼물락, 쪼물락.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정엉큼한 시적 화자는 하라는 산행은 마다고 알프스 샬레란 별볼일 없는 찻집에, 홀로여성 시인을 포함한 일행을 끌고 가 볼끈거리는 남성기 모냥의 수세미외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론 그 ‘외’가 별로 힘들어뵈던데.) 그러다가 문득 자기 껄 쪼물거렸을지도 몰라. 볼 것 없이 캐낼 것도 없이, 수세미외는 남성 성징인 남근(곧 男性機. 여성은? 女性器!)을 의미하고도 남는다. 대학시절, 선생 징걸이나 인호(지금은 셔블대 아이병동 정형외과장이다. 시인 아이가 뼈를 다치면 거길 가라. 강태 이름 대고 최인호 독터Doctor를 찾으라. 허지만 치료비는 타인과 동同)에게 보내는 엽신 글에서 ‘初志一貫’을 ‘조지일관(좆이 한 관의 무게)’으로 풀이해줬더니 그 풍만한 이미지에 한동안 엄숙해 있었다던데. 축, 뭉툭한 끝이 기일게 늘어진 수세미외의 모양. 모양의 흔들거림, 흔들거림의 진폭, 한 층 한 층 진폭의 경천동지―, 이 뇌동이 종국은 한스런 큰 울음이리.

후자는 너무 좋아서 뭐라고 설명할 재간이 없다. 박의상 스토리, 그러면 박 시인이 싫어할까. 무에, 어떨꼬. 이미 가슴에 묻은 내자를 생각함이 이처럼 곡진할진대, 그가 어찌 할 건고. 이 연은 눈으로는 읽어도 내사 부끄러워 소리 높일 수 없을 에로티시즘의 초超 극치다. 미당 선생께서 ‘허, 그 놈!’ 하며 뺨을 이쁘게 뽀뽀하실 것만 같다. ‘밤마다 지아비의 그걸 꼭 잡고’ 잤다고? ‘카메라 받혀놓고/입원실에서 지아비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성교하면서 ‘아파? 아파? 안 아파?’ 물었다구? ‘한쪽 젖이 작은 아내’라구? 에구, 부끄러라 남부끄러. 그런데 이 시가 진가를 발한 곳은 ‘아주 크고 잘 생긴 수세미외가/눈물 뚝뚝 흘리고 있다’는 행이다. 이 ‘눈물’이야말로 곧 시적 화자가 긍휼히 바라본 화자의 화자가 아니겠는가. 한쪽은 한쪽이 없고, 다른 한쪽 또한 한쪽이 없다…… 아프디 아픈 양자 사이에 시적 화자인 오탁번과 수세미외가 대룽대룽 서있다/늘어져있다. 오, 죽음은 수세미외를 낳고. 그래서 어쩔시고. 암튼 오탁번은 사랑의 눈부신 전도사다.  

 

·문학적 연보─1962·〈걸어가는 사람〉으로 학원문학상 당선/1966·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동화)/1967·고대신문 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시)/1968·〈현대시〉 동인(초기동인·민응식 허만하 주문돈 김영태 이수익 정진규 이승훈 황운헌 이유경/후기동인·정진규 이승훈 오탁번 오세영 이건청 마종하 이수익 박의상 이유경 김종해)6)/1969·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1973·제1시집 《아침의 예언》(조광)/1974·제1창작집 《처형의 땅》(일지사)/1976·평론집 《현대문학산고》(고대 출판부)/1977·제2창작집 《내가 만난 여신》(물결)/1978·제3창작집 《새와 십자가》(고려원)/1981·제4창작집 《절망과 기교》(예성)/1985·제2시집(1시집 합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청하), 제5창작집 《저녁연기》(정음사)/1987·제12회 한국문학작가상(〈寓話의 땅〉/한국문학사) 수상, 소년소설 《달맞이꽃 피는 마을》(정음사)/1988·논문집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고대 민족문화연구소)/제6창작집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문학사상사)/1990·평론집 《현대시의 이해》(청하)/1991·제3시집 《생각나지 않는 꿈》(미학사), 산문집 《詩人과 개똥참외》(작가정신)/1992·문학선 《純銀의 아침》(나남)/1994·제4시집 《겨울강》(세계사), 동서문학상 시부문 수상/1997·제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1998·산문집 《오탁번 詩話》(나남)  

·삶의 연보─《시와시학》(1997. 가을호)/純銀의 아침(오탁번), 나남, 1992. 참조/1943·충북 제천군 백운면 평동리 169번지에서 아버지 同福 吳氏, 어머니 光山 金氏 사이의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남/1951·피난 직후 돌아와 백운초등교 입학/1954·기억에도 새로운 은사 권영희 선생을 만나 배움/1957·원주중 입학/문예반에서 《학원》지에 작품 투고, 실림/1960·원주고 입학, 가난해서 3학년 2학기를 못 다님/1964·고려대 영문과 입학, 고대신문사 기자/1967·고대신문 편집국장, 고대 〈응원의 노래〉 작사/1969·대학원 국문과 입학/1970·10/28 결혼/1971·대학원 졸업(정지용 시 연구), 육사 교수부 국어과 교관(중위)/1973·전임강사(대위)/1974·아들 정록 출생, 군 제대, 수도여사대(세종대) 전임강사/1976·딸 가혜 출생, 고대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1978·고려대 사대 국교과 조교수/1983·정지용 김소월 연구로 문학박사, 하버드대 객원교수/1984·북미와 유럽 여행/1990∼1997·러시아, 독일,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등 10여개국 여행.(《시와시학》 1997년 여름호/ 純銀의 아침, 나남, 1992. 참조)  

치악산 근방에서 그는 중학 시절부터 시를 썼다. 고2 때는 ‘무성한 발자욱으로 나를 부르던 태양은/광주리 속에 담아논 세잔느의 풍경화’(〈오후〉)에 젖기도 한다. 이 시를 소개한 송하춘의 감탄처럼, 그는 이미 ‘숙성했달까,’ 아니면 ‘진짜 황금깃털같은 등소평’처럼 보였는가. 애초부터 그는 이렇게 징그러웠다. 대학 때는 예이츠W. B. Yeats나 딜런 토마스Dylan Thomas를 즐겨 읽었다니까. 그런데 한 가지 짚을 게 있다. 연보를 살펴 보면, 소설 창작에 쏠린 느낌이 강하다. 소설집과 시집 발간 품목을 살펴보면, 형이 얼마나 시에 소홀했는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형의 시는 적어도 ‘과작’이라고 상찬(미화?)해선 안 된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형의 소설이 얼마나 남을 터인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진단키로는 형의 시는 분명히 한 개(죄송!) 정도는 남을 것 같다. 형의 2천년대가 문제다. 나는 형이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고 또 가쁘다. 사실 나의 수상소감은 이것이 다다’라고 싶었다던 〈지용문학상〉 수상소감처럼, 지금처럼 형식과 체면과 권위를 영구히 멀리하시길 바란다. 탁번 형, 언제 미당에게 ‘성님’ 할라요. 내사 부탁 드리는 건데, 소설 고만 쓰고 시 써요, 시를! 나는 형의 ‘산문성/서사성’에 바짝 주목한다. 시의 산문화는 어쩜 그의 전매특허일 것이다. 이를 좇아 살핌이 매우 요긴하다. 다만 나는 형의 문학적 코드가 ‘서정성과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시의 이야기가 씨니컬하고 패로디를 지향하는 점은 시사할 만하다. 그가 곧 제2의 질마재를 완만히 등정할까.

그렇다. 그에겐 시가 있다. ‘툇마루에 엎드려/몽당연필에 침발라가며 쓴/단기 4287년 가을 어느 날의 일기도/마분지 공책에/깨알같이 그냥 그대로 있는가’(〈그 옛날의 사랑〉)나 ‘아빠 아빠 쉬도 마렵지 않은데 왜 여자애를 보면 꼬추가 커지나?’(〈꽃모종을 하면서〉)를 읽으면서 형의 시는 딸 가혜이며, 라라이고 恩이이고 아내이며, 장모님이고 이상理想이고 未堂(또한, 아직 못 다 지은 집)이며, 나아가 생의 전부가 될 것임을 나는 감히 확신한다. 동료 교수 황현산은 ‘오탁번은 성충이 되어서도 유충시절의 기억이 또렷한 벌레’(시집 《가을강》 해설)라던데, 기막힌 말이다. 끄물끄물, 그는 사물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주위를 기어댕기다가 갓 변태한 순진한 숫것, 수컷벌레인가. 그는 가끔 시간을 가로질러 와 혼돈하기도 한다. 딸더러 ‘여보’라 부르고 아내보고 ‘장모님’ 할 때가 있다. 몸의 전지약이 다 닳았나. 아니다. 내게 보낸 편지글에서 ‘자궁 속 아기를 CT촬영에서 보는 기분으로 (자기) 시를 보’라던 형. 그처럼 사물과 사물과의 동일시 현상이거나 시와 사람과 사물의 흔연한 어우러짐이 아니겠는가. 그가 정말 미당을 닮아가려는가. 그럴지도 몰라, 지켜보는 우리도 인내심이 필요해. 끝을 황현산이 대신 정리한다, ‘그는 또 다른 시인이 되려 한다. 그것을 우리는 오탁번의 세번째 선택이라고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