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비단 짜는 밤 / 정상하 ( 2003년 <현대시학> 8월호)

자크라캉 2007. 4. 30. 14:47

      

사진<중국여행동회>님의 카페에서

 

        단 짜는 밤 / 정상하


        밤에 빗속을 걷는 것은
        어룽지는 어둠의 날줄에 씨줄 넣기다

        날줄의 생김새
        도랑물 강물 바닷물의 길쭉길쭉한 씨앗
        어둠 속에 눈 뜨고 있는 모든 이름들의 촘촘한 거처
        
        씨줄의 성분
        결이 거친 우울한 영혼의 올
        존재의 추스를 수 없는 나약한 섬유질
        가슴 속 서걱거리는 싸움소리 삿대질 삿대질

        북실처럼 연속으로 들락거리는 자동차 붉은 불빛은
        성근 씨줄 사이사이를 채우는 반짝이는 금속의 올들

        금속의 올
        씨줄이면서 매듭 없는 경쾌함
        체온은 없으나 뜨거워 보임
        번쩍번쩍 돋보이는 무심한 가로줄 무늬
        어두운 비단의 광택을 돋움

        직조 끝나고
        수만 필 비단 위 풀벌레 소리


        2003년 <현대시학> 8월호